[休-전남 곡성] 가지마다 내려앉은 하얀 매화 "봄이 맺혔네"
경찰 승전탑 주위엔 뭉게구름 닮은 매화 자태 뽐내
태안사 진입로에 우거진 숲과 계곡도 또 다른 절경
겨울잠에서 깨어나 섬진강을 달리며 재잘대는 물줄기를 따라 곡성군 오곡면 압록리로 향했다. 압록리는 곡성군의 남단에 위치해 올라오는 봄을 먼저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범한 사람들은 ‘한 지역 안에서 봄이 빨리 오면 얼마나 빠르겠느냐’고 코웃음을 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람보다 감각적인 나무와 풀들은 한 마장의 차이로도 꽃이 먼저 피고, 열매를 먼저 맺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찻길에서 승전탑까지는 인공 조림한 매화나무가 밀집해 있는데 멀리서 바라볼 때는 뭉게구름 같던 것들이 가까이 다가가 보니 나뭇가지마다 하얀 매화꽃을 팝콘처럼 달고 있다. 매화밭 복판에 자리 잡은 경찰 승전탑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 7월24일 압록교를 통과하는 북한군 603기갑연대를 곡성 경찰 300명이 기습해 섬멸한 공적을 기리는 구조물이다. 손민호 해설사는 “곡성 경찰은 북한군 사살 50명, 생포 3명의 전과를 올렸다”며 “이 승리로 적의 남하를 1주일 이상 지연시켜 서울수복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옷에 묻은 매화향기를 털어내지 않은 채 우리 둘은 태안사로 길을 틀었다.
동리산 자락에 위치한 태안사는 신라 경덕왕 원년인 742년에 개창됐다. 이후 문성왕 9년인 847년 혜철국사에 의해 선종사찰로 거듭났고 불교는 이곳에서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파를 형성했다. 이후 고려 태조 때 광자대사가 머물면서 132칸의 건물을 짓고 동리산파의 중심도량이 됐다. 태안사는 고려 초까지만 해도 송광사·화엄사를 말사로 뒀을 만큼 거대한 절이었다. 고려 중기에 송광사가 독립했고 태안사는 조선 시대 이르러 배불정책으로 쇠퇴했다. 후대에 와서는 전쟁 중 대웅전이 불타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경내에는 보물 273호인 혜철국사 사리탑, 274호 광자대사탑 등 보물 5점이 있어 눈길을 끈다.
진입로가 끝나는 곳에서는 계곡 위에 걸쳐 있는 희한한 누각이 모습을 드러낸다. 능파각이라고 이름 붙은 이 누각은 ‘850년(문성왕 12)에 혜철선사가 창건했고 941년(태조 24) 윤다(允多)가 중수했다’고 안내판에 적혀있다. 팔도에 은둔하는 여러 사찰을 둘러봤지만 물 위에 세워진 누각은 처음이라 이름을 눈여겨봤더니 ‘능파(凌波)’라는 글자 중 앞의 ‘능’자는 미끄러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군청에서 얻어 온 가이드북을 들춰 보니 ‘능파’의 속뜻이 ‘아름다운 여인의 걸음걸이’라고 적혀 있다. 청정한 도량에 이 관능적인 이름이라니!
하지만 조금 더 읽어보면 피가 늦게 돌아 두뇌 회전이 느린 세속의 글쟁이라도 그 깊은 뜻을 알 수 있다. ‘금강문, 누각을 겸한 이 다리를 건너는 순간 세속의 번뇌를 던져버리고 불계(佛界)로 입문한다’는 뜻이니 이 건축물은 산 아래 인간들을 향해 바라보고 던지는 마지막 작별인사인 셈이다.
곡성에는 맛집이 여러 곳 있지만 그중에서 추천하고 싶은 곳은 제일식당이다. 이 지역에는 한우 전문점을 비롯해 고급 식당들도 꽤 있지만 가격 대비 만족도로 따지면 이만한 곳이 없다. 팔도를 누비고 다니는 기자가 경험한 전국의 1만원 이하의 맛집 중 세 손가락 안에 꼽을 만한 집이다. 기자가 맛을 본 메뉴는 그저 평범한 8,000원짜리 백반인데 10여가지 반찬 중 대충 만든 것이 없었고 정갈했다. 오곡면 기차마을로 143. /글·사진(곡성)=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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