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대한민국서 혐오·차별 퇴출.. 文대통령 선포 이끌어 낼 것"

이근아 입력 2019. 3. 18. 03:36 수정 2019. 3. 18. 10: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사건건]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단독 인터뷰

[서울신문]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5일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집무실에서 서울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 위원장은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우리 사회에 전면적으로 퍼져 사회적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며 혐오·차별 문제 해결을 임기 중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국가인권위원회는 그런 비판하라고 존재하는 곳이다.”(노무현 전 대통령)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이라크 파병 결정에 맞서며 반대 성명을 내자 일각에서는 “항명행위”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인권위를 감쌌다. 태생적으로 싫은 소리를 해야 하는 기관이라는 이유였다.

이명박·박근혜 정권(2008~2017년)을 거치며 제 목소리를 잃었던 인권위가 요즘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9월 최영애(68) 위원장이 취임한 뒤부터다. 인권위 초대 사무국장과 상임위원을 맡았던 그는 직원들의 든든한 ‘뒷배’ 역할을 하며 적극성을 강조하고 있다. 낙태죄 위헌 의견이나 난민보호 정책 재정비 요구, 동성혼에 대한 정책적 논의 촉구 등 소수자를 위한 인권위의 결정은 이 배경 속에서 나왔다.

서울신문과 지난 15일 서울 중구 집무실에서 진행한 단독 인터뷰에서 최 위원장은 임기 중 가장 집중할 의제로 혐오·차별 문제 해결을 꼽았다. 그는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우리 사회에 일상적이고 전면적으로 퍼지면서 사회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며 전면 대응을 선언했다. “혐오는 말로만 끝나지 않는다. 어느 순간 어떻게 터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민자 혐오 범죄로 50명이 숨진 뉴질랜드 총격 테러가 발생한 시점에 우리도 심각하게 볼 문제다. 최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설득해 ‘대한민국은 혐오·차별을 더이상 수용하지 않는다’는 범정부적 선포를 이끌어내는 것이 인권위의 올해 목표”라고 강조했다.

-혐오차별대응기획단을 구성하고 특별추진위원회를 출범한 것이 위원장 취임 이후 가장 큰 성과로 꼽히는데요.

“혐오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자 공격입니다. 지금 바로잡지 않으면 결국 사회통합을 가로막아 다양한 구성원이 인권을 보장받기 어렵죠. 그래서 취임 때 우리 사회에서 혐오와 차별을 해소하는 것을 첫 번째 책무로 꼽았던 것이었어요. 올 초 출범한 혐오차별대응 특별추진위원회는 위원장 직속 기구입니다. 그만큼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뜻이에요.”

-혐오의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사회·경제적으로 변동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 혐오가 많이 생겨나죠. 인권위가 주목하는 것은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차별로 이어지는 지점입니다. 혐오와 차별은 별개가 아니라 서로의 원인과 결과로 상호작용하면서 구조화됩니다. 혐오에 따른 위협이 기득권에게는 가해지지 않아요. 타깃은 언제나 소수자나 약자죠. 이들을 공격하는 혐오표현은 표현의 자유 범주에 들어갈 수 없어요. 혐오표현의 발화자가 누구인지, 이 말이 어떻게 확대 재생산되는지 그 맥락을 인권위 차원에서 분석해보려 합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

-두드러지게 혐오 대상이 되는 집단은 어디라고 보시나요.

“실태조사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혐오의 주요 대상은 여성이나 이주민, 성소수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대표적인 것으로 나타났어요.”

-일각에선 ‘2019년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사회적 약자인가’라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여전히 약자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소수자란 사회적으로 지닌 힘(권력)이 상대적으로 적은 집단을 의미합니다. 예컨대 기업에서 관리자급 여성의 숫자 등 여성이 사회적으로 지닌 권한의 척도를 보면 여전히 한국 사회는 실질적인 성평등 국가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사회에서든 소수자 집단의 지위를 확장하는 과정에 (이를 막아서려는) 사회적 저항은 있었어요. 지금 한국사회는 그런 시기를 겪고 있다고 봅니다.”

-혐오차별 해결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떠한 준비를 하고 계신가요.

“우선 올해 안에 대통령이나 국무총리께 범정부 차원에서 혐오·차별 대응을 하기 위한 대국민 정책선언을 해달라고 설득해보려 합니다. 노르웨이에서는 이미 법무부나 여성가족부, 교육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7개 부처가 함께 이러한 선포를 했어요. 정부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혐오와 차별을 더이상 받아들이지 않는 사회를 만들자’는 지향점을 함께 보여준 셈이죠. 이게 우리의 롤모델입니다. 두 번째는 사회적 공론화 작업입니다. 대중들에게 혐오 표현이 차별로 이어지고, 결국 공존을 해친다는 것을 알리는 게 중요합니다. 혐오차별에 대한 국민의 인식전환이 필요합니다.”

-혐오·차별 행위가 정말 위험한 일이라는 국민적 공감대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끌어낼 생각인지요.

“최근 영국을 방문했다가 한 비정부기구(NGO) 단체의 슬로건을 봤는데 ‘미워하지 말고 희망하라’(Hope not hate)이더라구요. 배제가 아닌 포용의 방식으로 혐오·차별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달 말에는 스웨덴, 영국, 스위스 등 7개국 주한대사들과 2개의 해외기구 관계자를 초청해 간담회를 열어요. 각 사회가 혐오차별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왔는지, 또 왜 극복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거죠.”

-인권위가 헌법재판소에 낙태죄 폐지 의견을 공식적으로 제기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낙태를 형벌로 처벌하는 건 여성의 기본권 침해라는 의견을 담아 헌재에 표명했습니다. 국제사회에서는 오래전부터 낙태죄를 형법으로 처벌하는 것을 폐지하라는 권고를 여러 차례 냈습니다. 대표적인 가톨릭 국가인 아일랜드 역시 얼마 전 ‘낙태를 했다는 이유로 여성 스스로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건 옳지 않다’는 이유로 낙태죄를 폐지했어요. 우리 인권위도 ‘낙태죄에 대해 어떠한 예외 사항도 두지 않은 채 전면 금지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입장을 낸 거에요.”

-2002년 인권위 초대 사무총장을 맡았을 때와 비교해 현재 한국 인권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인권감수성이 오히려 퇴보했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과거에 비해 사회적 약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진전입니다. 작년 ‘미투’(#Me Too·나도 피해자다)만 보더라도 놀랍습니다. 제가 90년대에 성폭력 상담소를 운영할 땐 성폭력 피해에 대한 어떤 데이터도 없었어요. 심지어 국회에 성폭력특별법을 제정해달라고 촉구했을 땐 ‘성폭력 공화국이라고 전 세계에 알릴 참이냐’고 꾸짖는 의원들의 반대에 부딪혔죠. 하지만 이젠 국민들이 ‘미투’에 ‘위드유’라고 응답하면서 사회적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연대를 표시하고 있어요. 이건 국민들의 인권감수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고 봐요.”

-여전히 난민·성소자 등 인권위의 일부 결정에 대해서는 호응만큼 반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많습니다.

“인권은 우리가 처한 사회현실 속에서 치열한 논쟁을 통해 발전했습니다. 그 과정을 통해 이전엔 인식하지 못했던 많은 문제들을 인권적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측면이 있죠. 위원회의 활동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진 분들도 계실 겁니다. 앞으로는 위원회의 활동과 결정에 대해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더 해야겠죠. 또 중요한 인권사안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더 다양한 사회적 의견을 청취하고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인권위의 권한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일선 부처나 민간 기관이 권고를 받아도 강제가 아니니 받아들이지 않으면 속수무책이라는 것인데요.

“유엔 역시 권고 기능만을 가졌지만 상당한 권위와 위상을 갖고 있습니다. 권고가 제한적으로 보이겠지만 포괄적이고 유연한 개념이라 더 많은 것을 포섭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예로 시정명령은 강제력이 있지만 법적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어요. 인권위가 다른 부처와 행정소송에만 매달릴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권고 사항을 강제로 이행하게 할 순 없지만 대신 언론에 공표하고 대통령에게 특별보고하는 권한이 있어요. 최근 인권위의 다양한 권고와 결정은 사회적 수준보다 반 발 앞서는 것으로, 사회적 이슈를 공론화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권위 권고 수용률을 기관 평가에 반영하는 비율을 높이는 등 구체적인 권한 확대 방안도 찾을 것입니다.”

-우리 정부가 큰 그림의 인권비전을 가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인권위는 2006년부터 ‘인권증진행동계획’이라는 3개년 중기계획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2018년부턴 제5기 인권행동증진계획을 수립해 진행하고 있는데요, 큰 방향은 양극화와 차별을 넘어 누구나 존중받는 인권사회를 실현하겠다는 겁니다. 미래지향적으로는 인권을 확장하고 다원화하려고 합니다. 인권의 개념을 북한인권개선, 정보인권보호, 군인권 등으로 확장시키고 공론화시키는 것이지요. 이 모든 것을 담아내기 위해선 인권기본법, 인권교육기본법,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보고 진행 중입니다.”

-취임 때 임기 중 최종 목표를 ‘차별금지법 제정’이라고 말씀하셨었는데요.

“이 목표는 변함없습니다. 차별금지법이 여러 번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통과되지 못했죠. ‘차별금지법은 곧 성소수자를 지원하는 법’이란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건 어떤 특정한 집단의 권익을 위한 게 아니에요. 모든 구성원들의 평등권과 인권을 보장하는 사회로 나아가자는 의미이죠. 혐오는 말로만 끝나지 않아요. 그 증오와 대립이 어떤 폭력과 위협으로 나아갈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예컨대 1923년 관동대지진 때도 당시 한국인들은 일본 사회에서 소수자이자 난민이었죠. 지진 발생이 한국인과 전혀 관련이 없음에도 일본은 국민 불만을 돌리기 위해 ‘한국인이 폭동을 일으키려 한다’며 거짓 소문을 내기도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평등하고 존엄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는 것이지요.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쌓여가고 있는 국민적 공감대와 공론화를 기반으로 제도적 기반을 차근차근 만들어가겠습니다.”

이창구 사회부장 window2@seoul.co.kr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최영애 국가인권위원장은

▲1991~1994년 성폭력특별법제정특별추진위원회 위원장 ▲1991~2001년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2002~2004년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 ▲2004~2007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2010년 여성인권을 지원하는 사람들 대표 ▲2012년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이사 ▲2013년 한반도평화포럼 공동대표 ▲2015년 경기도교육청 성인권보호특별대책위원회 위원장 ▲2016년 제2기 서울시 인권위원회 위원장 ▲2018년 9월 제 8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첫 여성·비법률인 출신 위원장)

▶ 부담없이 즐기는 서울신문 ‘최신만화’ - 저작권자 ⓒ 서울신문사 -

Copyright © 서울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