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석가가 본 SKY캐슬.."부모에 복수한 영재는 실화"

정현목 2019. 1. 1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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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아들로 산 세월은 지옥"..SKY캐슬 영재는 실화
부모와 갈등을 빚던 영재(왼쪽)는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뒤 잠적해버린다. [사진 JTBC]
화제의 드라마 ‘SKY캐슬’의 아이들은 하나같이 마음 한구석에 어둠을 안고 산다. 엄마와 입시코디네이터가 짜준 스케줄에 따라 공부기계로 살아가는 예서, 스파르타식 훈육을 서슴지 않는 아버지 밑에서 숨막혀하는 쌍둥이 서준·기준, 편의점 도둑질로 학업 스트레스를 푸는 예빈, 가짜 하버드생 세리 등 각자 환경과 증상은 다르지만, 모두 부모의 과도한 욕망에 짓눌려 병들어가고 있다.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뒤 가출로 부모에 잔인한 복수를 한 영재처럼, 이들이 어느 순간 무너지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무엇이 SKY캐슬 아이들을, 아니 우리 아이들을 병들게 하는지, 정신분석가 이승욱 원장(닛부타의 숲 정신분석 클리닉)에게 물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대에서 정신분석ㆍ철학을 공부한 그는 상담교사ㆍ대안학교 교감ㆍ뉴질랜드 병원 심리치료실장 등 24년의 다양한 상담경력을 갖고 있다.
「대한민국 부모」

「 상처 떠나보내기」

등 10권의 책을 썼다. 드라마를 흥미롭게 보고 있다는 그는 영재 얘기부터 꺼냈다.

정신분석가 이승욱 원장(닛부타의 숲 정신분석클리닉)


의대수험생 아들방에서 3년간 매일 백팔배한 엄마
Q : 영재의 복수와 엄마의 자살이 충격적이었다. 실제 있었던 일이란 얘기도 있다.
A :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엄마의 소원대로 의대에 진학한 아들이 인턴을 마치고 엄마에게 전화해 ‘당신의 아들로 산 세월은 지옥이었다. 더 이상 연을 이어가고 싶지 않다’고 선언한 뒤 잠적했다. 엄마는 미쳐 날뛰다 거의 죽기 일보직전까지 갔다. 엄마는 아들이 고3 때부터 삼수할 때까지 3년간 매일밤 아들방에 들어가 아들이 자는 옆에서 백팔배를 했다고 한다. 아들이 미치도록 숨막히지 않았겠나. 영재처럼 엄마가 가장 기뻐하는 순간에 잔인한 복수를 한 거다. 부모의 강권에 못이겨 적성에도 안맞는 의대에 진학한 수학천재가 있는데, 그 친구는 마지못해 의대 공부를 하고 있지만, 나중에 수학학원을 열겠다고 벼르고 있다. 영재는 현실에도 많다. 이런 친구들이 과연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부모와 갈등을 빚던 영재는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뒤 잠적해버린다. [사진 JTBC]
Q : 세리가 가짜 하버드대생으로 드러나며 SKY캐슬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A :
"들통난 뒤 세리가 아빠에게 ‘아버지가 실망할까봐 말할 수 없었다. 아버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언제 터질지 몰라 매일매일이 감옥이었다’는 문자를 보내는데, 정말 그런 상황의 사람이 할 법한 대사다. 아버지의 사회적 욕망이 거대하거나, 아버지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과도한 동일시 심리가 있는 친구들이 그런 거짓말을 한다. 아버지의 사회적 명성과 체면에 부합하고 싶어서다. 하지만 항상 두려움 속에 산다. 레포트 하나 표절했다 걸린 게 세리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가짜 하버드대생으로 드러난 세리 [사진 JTBC]


유학가서 멘붕된 공부기계들, 정신상담 받는 사례 급증

Q : 공부기계로 자라난 아이들이 유학갔다가 표절해서 망신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들었다.
A :
"상담업계에선 6,7월이 가장 바쁘다. 방학때 들어와 상담받는 유학생들 때문이다. 대부분 강남 출신 아이비리그 재학생들이다. 상담받는 이유는 지도교수가 한국가서 상담받고 확인서를 갖고오라고 요구하기 때문이다. 우울증·공황장애·불안장애 등을 겪고 있기 때문에 교수 입장에서도 학생들이 불안해보이는 거다. 초·중·고 12년을 관리받으며 기계처럼 공부만 했던 아이들이 유학가서 멘탈이 무너지는 이유는 주관 있고 창의적인 현지 학생들과 경쟁이 안되기 때문이다. 유치원 때부터 모든 게 관리됐던 애들은 토론수업에서 한 마디도 못하고, 자기 의견이 담긴 레포트도 못쓴다. 예전엔 학원이나 과외선생에게 물어보면 됐는데 이젠 그럴 수도 없지 않나. 그러니 멘붕이 오고 , 표절까지 하기도 한다."
가짜 하버드대생으로 드러난 세리 [사진 JTBC]


학업 스트레스를 이지메, 성관계로 푸는 아이들도 있어

Q : 중학생 예빈이 편의점에서 도둑질을 하며 학업스트레스를 푸는 장면이 있다. 이런 일이 실제로도 많은가.
A :
"그 정도는 일탈 축에도 안든다. 교사 시절, 절도로 붙잡힌 학생들 중 아버지가 교수 또는 회사임원 등 잘사는 집 애들도 많았다. 요즘 강남애들은 학원 쉬는 시간 10분 사이에 진짜 매운 떡볶이를 땀을 뻘뻘 흘리며 먹는다고 한다. 그렇게 스트레스를 푸는 거다. 그런 식으로도 못 풀면 예빈이처럼 도둑질을 하거나, 왕따나 폭력적인 이지메(집단괴롭힘)를 한다. 수임(이태란)의 교생시절 제자 연두처럼 자해 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성관계로 스트레스를 푸는 애들도 있다. 예서처럼 엄마의 밀착관리를 받는 여중생이 임신해 집안과 학교가 발칵 뒤집힌 경우도 있다."
학업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편의점 절도까지 하는 예빈 [사진 JTBC]


엄마의 통제, 아빠의 부재…아이는 어른돼도 심리적 유아

Q : 한서진(염정아) 같은 엄마 밑에서 자식은 어떤 심리적 압박을 받나.
A : "강 교수(정준호)나 우 교수(조재윤)처럼 우리 사회에서 아버지의 가족 내 포지션이 굉장히 애매하다. 대부분 아이교육을 엄마가 주도하면서 아버지의 설 자리가 없어졌다. 자식교육이란 명분하에 가족구조가 바뀌어버렸다. 교육은 학원이 담당하고 관리는 엄마가 한다. 아버지는 돈 벌어오는 역할 밖에 없다. 아버지가 엄마와 아이의 결탁관계에 개입해 엄마와의 관계를 분리시키고 아이를 사회적 인간으로 성장시켜야 하는데, 아버지의 포지션이 모호해지다보니 결탁관계가 끝나지 않고 아이는 20살, 30살이 돼도 신생아 상태로 남아있게 된다. 자발성의 씨앗이 발아돼 성장해야 하는데 엄마가 모든 걸 통제하니까 스스로 성장하지 못한다. 그런 상태에서 마주치는 난관·시험·갈등 등 사회적 자극은 아이의 정서 상태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유학 가거나 직장인이 되면 정신적으로 위축되고 퇴행한다. 신경증·강박증·공황장애 같은 증상도 발현된다. 히키코모리가 되기도 하고, 자해하는 경우도 있다. 자해하며 살아있다는 걸 느낀다는데, 바꿔 말하면 정신적으로 죽어있다는 거다. 기저귀를 누가 먼저 떼나를 놓고 엄마들끼리 경쟁하는 게 한국 사회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숨막힌다."
수임(이태란)의 교생 시절 제자인 연두는 학업스트레스로 인해 자살한다. [사진 JTBC]

Q : 자식이 대학생, 직장인이 돼도 매니저 역할을 하는 엄마들도 많다고 들었다.
A : "몇년 전부터 20대 초반 남자들이 상담받으러 많이 온다. 엄마가 자식의 상담신청을 한다. 자식이 성인이 됐는데도 상담까지 엄마가 관리하는 거다. 그런 엄마들이 상담진에 꼬치꼬치 묻는 거 보면 숨막힌다. 아이들이 저 엄마 밑에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애처로워진다. 엄마의 통제에 짓눌려 숨쉴 구멍 없이 자란 아이들이다."


'어차피 내 재산'… 부모의 관리틀에 안주하는 아이들

Q : 쌍둥이 서준과 기준은 아빠에 짓눌려 살지만, 다른 아이들에 비해 순하고 배려심 있어 보인다.
A :
"그렇게 보이지만, 본질적으론 집안 체제에 순응하는 대표적인 강남키즈다. 그들의 마음속 기저에는 부모의 자원을 그대로 물려받을 것이라는 생각이 있다. 그러니 부모가 시키는대로 공부해주고 예의바르게 행동해준다. 굳이 부모가 만들어준 삶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그럴 수도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다. 반면 ‘어차피 부모 재산은 내 것인데, 왜 어렵게 공부해? 내 맘대로 살거야’라며 반항하는 애들도 있지만, 순응파보다 많지는 않다. 국내 대학에 진학 못하고 유학가서 놀다가 낙태하러 부모 몰래 들어오는 학생이 그런 경우다. 영악해지는 연령이 점점 내려가는 건지, 사립초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아버지 차교수로부터 엄격한 관리를 받는 쌍둥이 서준과 기준 [사진 JTBC]
아버지 차교수로부터 엄격한 관리를 받는 쌍둥이 서준과 기준 [사진 JTBC]


어른들의 정글세계 그대로 옮겨놓은 사립초교

Q : 얼마나 심각하길래.
A :
"모든 아이들이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사립초 애들은 어른만큼이나 사악한 면을 보이기도 한다. 괴롭힘과 집단 따돌림을 하는데, 대상으로 지목된 아이를 몸에 상처 하나 안입히고 정신적으로 망가뜨린다. 가해집단 서열에는 부모의 사회적 명성이 작용한다. 대상을 바꿔가며 괴롭히는데, 피해자가 되지 않기 위해 가해집단에 가담한다. 한 유명사립고에선 졸업할 때 친구가 성적 최우수상을 받게 되니까, 예전에 찍어놨던 술자리 사진을 공개해 차점자인 자신이 상을 받은 경우도 있다. 어른들의 정글세계를 그대로 옮겨놨다고 보면 된다."
엄마에 의해 철저히 공부기계로 관리받는 예서 [사진 JTBC]
Q : 예서는 자라서 어떤 사람이 될까.
A : "목표대로 서울대 의대 진학해서 의사가 된다면, 의사윤리 보다는 처세를 중시하는 아빠처럼 되지 않겠나. 어릴 때부터 배워왔던 익숙한 세계니까. 법조계 얘기를 들어보면, 공부 기계로 관리돼온 아이들이 판검사가 되면 사회적 맥락과 정서에 부합하지 않는 구형과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폐지 줍다가 실수로 남의 물건까지 가져온 노인에게 훈방을 줘도 되는데, 법리만 따져 절도죄 형량을 내리는 식이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상참작 같은 건 안중에 없다. 반면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계급문화, 상명하복에 익숙하기 때문에 권력의 속성을 잘 알고 적극적으로 순응하기도 한다."
엄마에 의해 철저히 공부기계로 관리받는 예서 [사진 JTBC]


아이가 부모 욕망의 꼭두각시로 살아선 안돼

Q :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야만의 정글’에서 벗아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A : "입시제도만 바꾼다고 달라지진 않는다. 임금구조ㆍ복지제도 등 사회시스템이 변해야 한다. SKY캐슬 아이들 뿐 아니라 우리 사회엔 부모 욕망에 잠식된 아이들이 너무 많다. 예서는 부모 욕망에 할머니의 욕망까지 이식됐다. 자기는 사라지고 욕망만 남은 아이다. 부모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아이를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가 정신분석학자로서 내 화두다. 부모의 욕망이 아이에게 최대한 덜 이식돼야 둘 다 행복해진다. 아이가 부모 욕망의 꼭두각시로 살아가선 안된다. 그러기 위해선 부모가 먼저 자신의 욕망을 알아야 한다. 사회 전체가 고민해야 할 문제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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