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거니까 귀찮으시죠?" 택시 기사는 구청장이었다
[경향신문]
“말 거니까 귀찮으시죠?”
지난 20일 오전 9시쯤 출근길에 올라탄 택시. 기사 분이 말을 걸어왔다. 서울 종로구 집에서 목적지인 서울 중구 경향신문 사옥까지는 택시로 10여분이 걸린다. 늦잠을 자고 일어날 때면 출근길에 택시를 탄다. 택시 기사 분들이 종종 말을 건넬 때가 있다. 이날도 그랬다.
“아, 아닙니다.” 쪽잠을 자기 위해 눈을 감고 있다가 잠시 실눈을 떴다. 다시 잠을 재촉하던 차, 기사 분이 뒷쪽으로 몸을 틀어 명함을 건넸다. 얼떨결에 받은 명함에는 ‘유동균 마포구청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봉사하려고 나온 거예요. 한달에 하루 택시 기사로 운전해요. 그것 밖에 못하는 건 휴가를 쓸 수 있는 기회가 (1년에) 20일 밖에 없어요. 한달에 한번 휴가를 써서 1년에 12일 택시를 모는 거죠. 10년째 됐어요.”
번뜩 놀라 눈을 비비고는 기자라는 신분을 밝혔다. 유 구청장도 잠시 놀라더니 말을 이어갔다. “말 걸면 귀찮아하는 분들도 계세요. 다른 기사들처럼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12시간을 일해요. 택시 회사와 협의했어요. 저기서 세워드리면 되죠?” 요금은 4700원이 나왔다. “카드만 대시면 돼요. 아이고, 추가요금은 안 찍었네.”
유 구청장은 한때 ‘진짜’ 택시 운전사였다. 1995년 처음 서울 마포구의회 의원을 시작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일하다 중간에 한번 떨어졌다. 생계를 위해 2005년 8월부터 2008년 2월까지 2년 반 택시를 몰았다. 그는 “택시 운전 자격증이 있기 때문에 당장 봉사할 수 있는 게 운전이라 생각했다”며 “이날 번 돈은 장학재단에 기부한다”고 했다.
유 구청장에게 최근 불거진 택시업계와 차량공유서비스업계를 둘러싼 갈등을 물었다. 유 구청장은 “사회가 겪어야 할 시기인 것 같다. 경제성장이 급속히 되면서 사회 전반에 정립돼 있지 않은 분야가 정립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고 운을 뗐다. 그는 “택시 기사 입장에서는 카풀(차량공유서비스)을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봤다. “택시도 남아 돌고 손님도 없는데 카풀까지 운행하면 손님이 분산되니 수입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유 구청장은 차량공유서비스를 도입하기 전 택시 기사 처우 개선이 우선이라고 했다. “택시 기사로 일할 때 굉장히 어려웠어요. 사납금 등으로 하루 12시간 일해도 수입이 적은 게 첫번째고요. 손님에게 무시 당하고 손님이 택시 기사를 굉장히 천한 직업으로 보는 문제도 있어요. 모멸감을 못 참겠다는 기사 분들이 많거든요. 또 버스 기사는 어느 정도 지원이 있지만 택시 기사에게는 전혀 지원이 없어요. 어느 정도는 보조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마포구청 차원에서 택시 기사를 지원할 정책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유 구청장은 “조례를 만들 수 있는 명분, 법 조항이 없다”고 했다. 그는 “구 같은 기초자치단체는 위임사무단체로, 창의적으로 정책을 펼칠 수 있는 단체가 아니다보니 택시 기사에게 수당을 줄 수 있는 예산 몫이 없어 어렵다”고 덧붙였다. 다만 마포구 개인택시조합에 ‘마포브랜드 택시’라는 브랜드를 붙이면서 의류 등 물품을 지원해주는 방안을 협의 중이다.
유 구청장은 택시 관련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다같이 상생하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했다. “택시를 이용하는 시민 편의만 보기 때문에 카풀이 도입된 것이다. 안을 들여다보고 이용자와 운전자가 같이 상생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상대에게 충분히 설명해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택시에서 내리기 직전 ‘기자가 몇번째 손님이느냐’고 물었다. 유 구청장은 말했다. “많이 했어요. 하나 둘 셋 넷… 일곱번째네요. 미터기로는 총 3만5000원. 그런데 어떤 손님은 8500원을 더 줬어요. 장학재단에 기부한다고 하니까요.” 유 구청장이 돈을 더 낸 시민이 보내준 문자 메시지를 보여줬다. 문자에는 “‘깜놀’(‘깜짝 놀라다’라는 의미)할 충격이었다. 앞으로도 많은 깜놀 부탁드린다”고 적혔다. “재밌습니다. 이거 하면. 시민들이랑 얘기도 할 수 있고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이보라 기자 purp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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