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日王 즉위 기사를 쓰는 이유

이하원 도쿄 특파원 2019. 5. 1. 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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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원 도쿄 특파원

나루히토(德仁) 새 일왕 즉위와 관련한 기획 기사 연재 도중 한 독자가 조선일보사에 전화를 걸어왔다. "이 기사를 게재한 의도가 궁금하다. 우리나라가 일본을 롤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말인가. 객관성을 잃은 기사라고 생각한다."

본사 독자서비스센터가 보내준 이메일을 통해 독자의 항의를 접하고, 29일 자 1면에 쓴 '전후 세대 국왕의 등장… 일본 미래로 리셋' 기사를 다시 읽어보았다. 5장 분량의 기사는 레이와(令和·새 일왕의 연호)시대를 맞아 일본이 새로운 미래를 준비 중이라는 내용이었다. "새 일왕 즉위와 올림픽 개최로 상승세인 국운을 이용해 '일본 리셋'을 이룸으로써 국제사회에서 비상"하려 한다는 게 핵심이었다.

이 독자의 메시지는 도쿄 특파원 출신의 언론인 S씨가 이전에 쓴 글을 떠올리게 했다. 20년 전 도쿄에 부임했던 그는 2017년 "한·일 문제는 유일하게 남은 보도의 성역"이라고 했다. "일본에 우호적인 기사를 쓰면 친일파라는 낙인이 찍히지 않을까 스스로 조심한다는 뜻"이 그 이유라고 했다.

고쿄(皇居·일 왕궁)를 마주 보는 사무실에 출근한 지 1년도 채 안 됐지만, S씨가 한 말을 여러 차례 반추할 기회가 있었다. 최근 반일 감정이 최고조인 상황에서 '일본 때리기' 프레임에서 벗어난 기사를 쓰는 것은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말 한·일 관계가 불빛 하나 없는 지하실로 처박힐 무렵엔 "넌 일본 사람이냐"는 말을 듣기도 했다. 알고 보니 타사(他社) 특파원 중에도 비슷한 경험을 하지 않은 이들이 드물었다. 모든 언론사가 일본 기사는 다른 기사보다 몇 배는 더 '자기 검열'을 해가며 보도하는 것이 한국적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조선일보가 레이와 시대 관련 기사를 1면부터 쓰며 주목하는 이유는 일본에서 이는 레이와 바람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86세 아키히토(明仁)의 생전(生前) 양위 결정은 국가 지도자로서 대단히 현명한 결단이었다. 요즘 일본엔 30년 전 히로히토(裕仁)의 사망으로 암울한 분위기에서 헤이세이(平成) 시대가 시작될 때와는 달리 새로운 기운이 넘쳐 흐른다. 20년간의 불황을 겪고 다시 살아난 경제를 꺼트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 분위기를 내년 도쿄올림픽까지 끌고 가 국가 업그레이드를 실현하겠다는 구상이 번뜩인다.

일본이 한국 사회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롤모델이 될 수는 없다. 다양성보다는 여전히 획일성이 커보이는 나라를 그대로 따라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상징에 불과한 일왕의 교대식을 통해 내부 갈등을 최소화하고, 미래 담론을 발산하는 것에 대해서는 주목하는 것이 좋다. 과거에 얽매여 갈등을 확산시키는 나라와 앞을 내다보며 달려나가는 국가 간에 차이가 벌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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