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코리아와 불금파티? 2019년인데 이런 행사 하나요

입력 2019. 5. 22.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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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단체, '규수 선발대회' 등 행사 개최..여성단체 "시대착오적"
경남 밀양에서 열린 아랑규수 선발대회의 모습. 밀양시 블로그 갈무리.

#1.

오는 24일부터 3일 동안 대구시 동구 율하체육공원에서는 지역 축제의 일환으로 ‘2019 내고장 사랑 대축제’가 열린다. 대구시와 대구 한국일보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축제다. 일정 중에는 24일 저녁 열리는 ‘미스코리아와 함께 하는 불금파티’가 있고, 25일 저녁 열리는 ‘미스코리아 대구 선발대회’도 있다. 미스코리아 대구 선발대회는 지상파 민영방송사인 티비시(TBC)가 중계를 맡기로 했다. 한국일보사가 주최하는 ‘미스코리아 대구 선발대회’는 2012년부터 지역 축제 부대 행사로 열려왔다. 대구시는 ‘우수상품 판매 촉진 사업의 일환’이라며 보조금도 지원하고 있다. 대구시 관계자는 24일 열리는 ‘불금파티’에 대해 “대구·경북 미스코리아 대회 예선 진출자들이 행사 부스를 돌며 상품 홍보 등을 하는 행사”라고 설명했다.

#2.

경남 밀양에선 매년 시가 주최하는 ‘아랑 규수 선발대회’가 열린다. 올해도 지난 16일부터 나흘 동안 ‘제61회 밀양 아리랑 대축제’가 열렸고, 축제 행사 가운데 하나로 ‘아랑 규수 선발대회’도 함께 열렸다. ‘아랑 규수 선발대회’는 설화가 바탕이 된 행사다. 밀양에 부임한 태수의 딸 아랑이 성폭력에 저항하다 피살된 뒤 그 원혼이 신관 태수들에게 밤마다 나타나 억울함을 얘기하자 한 신관 태수가 아랑의 억울함을 풀어주려 가해자를 잡아 처형했고, 원혼이 그 뒤부터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밀양시는 고장의 전통 예절이 아랑 규수 선발 기준이라며 △필기 100점 △절과 예절 100점 △다과상 차림 100점 △발표 100점 △장기 자랑 100점 등 총 500점 만점으로 규수 15명을 뽑아 밀양 홍보대사로 선정한다고 밝혔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축제의 일환으로 매년 진행해온 각종 ‘미인 대회’들이 여성을 성 상품화하는 시대착오적 행사라는 거센 비판을 사고 있다.

서울 종로구는 지난달 15일 만 15~20살 여성 지원자들을 대상으로 ‘정순왕후 선발대회’ 행사를 기획했다가 비판을 받고 행사를 취소했다. 애초 대회에는 ‘솥뚜껑 밟으며 입장’ ‘부친 성함 한자 쓰기’ ‘다과 먹기’ 등 왕후 간택을 재연하는 행사가 예정됐는데, ‘미성년자 여성을 모아놓고 60여년을 수절한 조선시대 정순왕후를 기리는 행사는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앞서 대구 중구청도 지난 9일 동성로 축제 개막 행사로 주부 모델 대회인 ‘미즈 메이퀸 선발대회’를 계획했다가 “여성의 성 상품화”라는 여성단체의 반발로 행사를 취소한 바 있다. 지역에선 이 밖에도 새만금벚꽃아가씨선발대회, 김천포도아가씨선발대회, 풍기인삼아가씨선발대회, 영양고추아가씨선발대회, 단양마늘아가씨선발대회, 제주감귤아가씨선발대회 등이 열렸거나 여전히 열리고 있다.

경북 영양에서 열리는 영양고추아가씨선발대회 모습. 영양고추아가씨 선발대회 운영본부 누리집 갈무리.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은 대구시가 ‘미스코리아 대구 선발대회’ 등을 통해 여성을 지역 특산품 판매 활성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단체는 “즐거움을 제공하는 존재로 여성을 규정하고 있어 듣기만 해도 불쾌한 데다 여성을 인격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외모로 평가하는 명백한 성 상품화까지 조장하는 행사”라며 “이런 행사에 대구시가 예산까지 편성했고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예산을 사용했다니 분노와 실망을 금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은 21일부터 대구시청 앞에서 “성 상품화를 조장하는 행사에 예산 편성을 즉각 철회할 것을 대구시에 요청한다”며 1인 시위를 시작했다. 강혜숙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표는 “지역 축제에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데 여성이 왜 도구가 돼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남여성단체연합도 지난 16일 밀양시가 주최한 ‘아랑 규수 선발대회’에 대해 성명서를 내고 “여성의 상품화를 넘어 여성의 순결을 미덕으로 포장하는 행사가 지금 현재에도 지역 축제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며 “여성에게 정순을 아름다운 미덕으로 강요하는 대회를 진행하는 것은 밀양시장을 비롯한 밀양 공무원들의 성인지 감수성이 턱없이 낮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남여성단체연합은 아울러 “아랑 설화는 성폭력 살인사건을 다룬 설화”라며 “또 다른 아랑을 만드는 ‘밀양 아랑 규수 선발대회’를 즉각 중단하라”고 밝히기도 했다.

강혜숙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대표가 22일 대구시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강혜숙 대표 제공

대구시는 여성단체의 비판을 수용하지만 올해 예정된 행사 취소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대구시의 보조금 5천만원이 모두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진행에 쓰이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대구시의 공적인 업무에 미스코리아 선발대회가 활용된다는 비판에 대해 충분히 공감한다. 내년부터는 부대 행사의 진행 방식을 바꾸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밀양시는 “아랑규수 선발대회는 61년째 이어져 온 전통적인 행사”라며 “교양과 인품, 지역 관광지에 대해 소개하는 역량 등 홍보대사의 역할을 평가함으로써 아랑 낭자의 정순을 본받자는 취지로, 미인 대회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은 “미투 운동 이후 성인지 감수성이 중시되는 지금도 여전히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행사들이 기획되고 있다”며 “행사 기획자들의 성인지 감수성이 낮은 탓”이라고 지적했다. 정 사무국장은 “특히 특산품 홍보는 그 상품이 얼마나 좋은지에 집중하기보다 미인 대회 방식으로 뽑힌 사람들의 이미지로 판매를 한다는 점에서 그 대회의 취지와는 맞지 않는다”며 “지역 주민 등의 이같은 문제 제기에 대해 지자체가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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