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스크-침몰된 잠수함, 살아남은 자들의 사투 [시네프리뷰]

2019. 1. 9.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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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심 150m 아래에서 생존은 쉽지 않다. 쿠르스크호와 함께 기동훈련을 하고 있던 러시아 해군은 인근 해역의 다른 나라 구조팀의 도움을 거부했다.

제목 쿠르스크

원제 Kursk

감독 토마스 빈터베르그

출연 마티아스 쇼에나에츠, 레아 세이두 콜린 퍼스 외

수입 조이앤시네마

배급 ㈜제이앤씨미디어그룹, TCO(주)더콘텐츠온

러닝타임 117분

관람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국내개봉 2019년 1월 17일

조이앤시네마
포스터에 속지 말자. 영화의 주인공은 킹스맨의 양복쟁이 비밀요원, 콜린 퍼스가 아니다. 그는 이 영화의 조연일 뿐이다. 상식적으로, 그가 역을 맡은 영국 해군 준장이 러시아에서 벌어진 이 잠수함 침몰사고에 얼마나 큰 역할을 했겠나. 그의 시점에서 본 스토리 전개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영화의 총체적 시점은 그 잠수함에 있던 러시아 군인 아들의 관점이다.

그 잠수함? 쿠르스크호다. 실재했던 잠수함이다. 2000년 8월 침몰했다. 덴마크 북쪽 인근 바렌츠해에서 합동 군사훈련 중이었다. 어뢰 폭발사고였다. 사건 직후 전체 승무원 118명 중 최소 23명이 생존했다. 살아남은 승무원들은 침착하게 움직였다. 최상급자(대위)가 지휘를 맡아 대응팀을 만들었다. 수심 150m 아래에서 생존은 쉽지 않다. 물은 차오르고, 산소는 부족하다. 격벽을 닫아 추가 침수를 방지해야 한다. 펌프도 돌려 물을 퍼내야 한다. 산소발생기도 가동해야 한다. 모두 시간과의 싸움이다. 쿠르스크호와 함께 기동훈련을 하고 있던 러시아 해군은 인근 해역의 다른 나라 구조팀의 도움을 거부했다. 자존심 때문일 수도 있고, 군사기밀 때문이라는 실제적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다.

여러 번 밝힌 것처럼 시사회를 갈 때 사전 정보를 거의 갖지 않고 간다. 나눠준 보도자료도 리뷰 쓴 직후 팩트체크 차원에서만 읽는다. 앞서 이 사건이 실제 사건이라고 했다. 그 남자들, 살아남기 위한 승무원들의 싸움은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 꽤 볼 만하지만 괴롭다. 천안함과 세월호 트라우마에 노출된 대한민국 국민의 입장에서는 강 건너 불처럼 보이진 않을 것이다. 사건이 전개되는 잠수함 속과 교차편집돼 있는 밖의 승무원 가족들의 움직임에서 2014년 4월 16일 당일 세월호 사건과 그날 이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세월호 유족들의 투쟁이 겹쳐 보일 것이다. 또 군사기밀이라는 허울로 포장된 자존심 따위가 사람 목숨과도 바꿀 만큼 소중한 것일까. 흔히 사회주의권 영화들이 선동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까지 내용·결말 언급 없는 리뷰 끝. 이하는 스포일러다. 영화 스토리의 사전 발설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아래는 읽지 않는 것이 좋겠다.

군사기밀 때문에 해외원조 거절?

앞서 영화가 러시아 군인 아들의 관점을 취했다고 했다. 영화에서는 이 사건이 언제 벌어졌는지 언급하지 않는다. 영화 속 해군 부대원들은 잠수함 속에 반입한 모니터를 통해 TV 중계되는 록 공연 실황을 보는데,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진 지 얼마 안되는 시점이라는 설정만 알 수 있다. 영화가 끝난 뒤 보도자료를 보니 실제 사건 발생시점은 2000년이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졌으니 그 후 9년이 지났다. 푸틴은 이때도 집권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시 영화가 만들어진 것은 18년이 지난 시점이다. 침몰 원인에 대한 설왕설래부터 군 당국의 늑장대응에 대한 의혹, “부대가 우리를 속이고 있다”고 외치는 할머니에게 ‘여론을 통제하고자 하는 어떤 세력’이 마취주사까지 동원했다는 목격담은 푸틴이 반체제 인사 제거에 사용했다는 ‘방사능 홍차’ 이야기처럼 증명하긴 쉽지 않다. 남은 유족들 사이에 도는 이야기 중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도 있고, 황당무계한 음모론에 해당하는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감독의 선택은 영리하다. 우리에겐 〈더 헌트〉(2012)의 감독으로 유명한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이다. 이를테면 누군가의 손에 쥐어진 주사기가 어지러운 기자회견장 소란 속에 불쑥 나타나는 장면은 때때로 헛것과 진짜를 구별하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목격담으로 둘러댈 수 있다.

영화가 아이의 관점을 취한 이유

스포일러를 직접 언급하자면 결국 잠수함 속 ‘수병들의 사투’는 실패했다. 안팎의 희망은 곧 절망이 됐다. 그런데 그런 결말을 보면 떠오를 의문이 있다. 잠수함 안에서 임시 대응조직을 만들고, 어떤 영웅적인 군인은 ‘제2의 체르노빌’ 참사를 막고자 멜트다운 징후를 보이는 잠수함에 장착된 원자로 조절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며 자신의 부인에게 안부를 전해달라고 말한다. 이걸 어떻게 알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답은 영화 후반부에 나온다. ‘미샤’라는 애칭으로 불린 미하일(마티아스 쇼에나에츠 분)은 필기구를 빌려 아내와 아이, 그리고 아직 뱃속에 있는 둘째아이에게 유언장을 남기는데, 사건이 나고 23명이 생존해 있었다는 것은 이 ‘메모’에서 확인된 것이다. 다른 군인들에 관한 전언도 아마 이 유언장에 담겨 있을 것이다.

영화는 원작이 있다. 유명 탐사 저널리스트 로버트 무어의 책 〈어 타임 투 다이: 쿠르스크호 비극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A Time to Die: The Untold Story of The Kursk Tragedy)〉다. 감독의 출신국인 덴마크나 사건이 벌어진 러시아, 북유럽에서는 익히 유명한 사건이라 책 제목에서부터 노골적인 스포일러다. 제목이 단순하게 잠수함 이름으로 바뀐 까닭인지도 모르겠다.

한국 세월호 사건과 ‘판박이’인 부분

2000년 8월, 노르웨이 북쪽 바렌츠해에서 합동훈련 중 침몰한 러시아 해군 핵잠수함 쿠르스크호. / 경향자료 사진

판박이다. 사건 기록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우리가 겪었던 사건들이 떠오른다. 소비에트 연방이란 이름이 사라지게 된 지도 10년가량 흘렀지만, 사건에 관한 정보는 여전히 통제되고 있었다. 유족들이 모인 기자회견장에 참석한 해군 고위 장성은 구 소련 시절부터 쌓아온 북해함대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읊고, ‘영국이나 유럽국가들보다 더 진보한 기술을 가진’ 구조선이 나서고 있다는 공식 워딩만 나열한다. 자연스레 2014년 세월호 침몰당시 함정 수백 대에 항공기 수십 대를 동원해 민·관·군이 합동으로 지상최대의 구조작전에 나섰다는 보도가 오버랩된다.

더 가관인 것은 정부 당국 인사가 나서서 직접 ‘음모론’을 제창한다. 사건 발생 이틀 후 우리나라엔 법상으로만 존재하는 계급, 원수(元帥)격인 블라디미르 쿠로예도프 제독은 “쿠르스크함은 비밀 실험 중이던 나토의 잠수함과 충돌해 침몰했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이 음모설은 그 후 2년 동안 러시아 당국의 공식 입장이었다. 제독에 이어 군 당국도 8월 말에 이르면 ‘스스로 동력을 가진 존재에 의한 강한 외부 충격 가능성’, 이른바 ‘외력에 의한 침몰설’을 내놓는다. 사건이 벌어지던 날, 푸틴은 흑해의 휴양지에서 캐주얼 차림으로 여름휴가를 즐기고 있었다. 그는 구조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스스로 말하길, “전문가가 아닌 자신이 가서 보는 것이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라는 핑계였다.

푸틴과 유족들의 만남 자리는 사건 열흘 후 마련됐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유족들의 거친 요구로 아수라장이 됐지만, 이 간담회는 6시간 동안 이어졌다. 결국 그 해 말 유족들은 1인당 1000루블을 보상받는다. 이 돈은 당시 미국 돈으로 환산하면 겨우 37달러. 나중에 푸틴은 가족들에게 ‘추가 보상’ 명목으로 7000루블을 제공했는데, 그건 수병들의 10년치 봉급에 해당했다고 한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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