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근 칼럼]제주2공항, 여론조사를 한다는데

이중근 논설실장 2021. 1. 13. 03:0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대한민국은 확실히 서울공화국이다. 전 국민에게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지방 현안도 웬만해선 서울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않는다. 아예 모르고 지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금, 제주에서 추진되고 있는 제2공항을 둘러싼 여론조사가 딱 그렇다. 제주2공항 국책사업을 주관하는 국토교통부는 반대 여론이 커지자 제주도민의 뜻에 따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도민의 뜻을 묻기 위해 여론조사를 하기로 제주도와 도의회가 합의했다. 이 절차가 제대로 진행된다면 그 결과가 사업의 운명을 결정할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이런 중요한 조사를 대한민국은 모르고 있다. 여론조사에 응할 도민 2500명이 이 조사의 심각성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도 의문이 든다.

이중근 논설실장

2공항 사업의 찬반을 도민 중 일부가 참여하는 여론조사로 묻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대선에서 여론조사로 후보를 결정한 경우도 있으니 도민의 뜻을 여론조사로 묻는 것을 안 된다고만 할 수도 없다. 문제는 도와 도의회 간에 합의된 여론조사 방식이다. 우선 도민 2000명과 성산읍민 500명을 대상으로 하는 조사로 이원화돼 있다. 두 결과가 서로 엇갈리거나 오차범위 내에서 팽팽하게 나오는 등 다양한 경우의 수가 예상된다. 결과와 그 해석을 놓고 일대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 실제 원희룡 도지사는 여론조사 결과를 ‘참고사항’이라고 하는데, 한쪽에선 이것으로 사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답답한 것은 설문 응답의 양상이다. 당장 2공항 예정지로 돼 있는 성산 지역은 찬성이, 나머지 도민들 사이에서는 반대가 우세하다고 한다. 더 들어가면 가관이다. 따로 진행되는 성산읍민에 대한 조사 중 공항 시설이 들어서는 성산읍 5개 마을 중 4개 마을은 반대, 1개 마을은 찬성이란다. 제주시내와 제주 서부권도 반대가 우세하다. 제주시내 주민들에게는 현 공항의 위상이 추락하는 게 걱정거리이고, 서부권 주민들은 신공항이 거주지와 멀다는 게 반대 이유라고 한다. 여론이 갈가리 찢긴 채 2공항을 어디에 건설할지 등 본질적인 부분은 다 묻히고 있다. 대한민국 국민 전체는 물론 해외 관광객들이 주로 써야 할 공항이 이렇게 재단되어도 되나 싶다.

가덕도와 경북권 신공항처럼 제주2공항도 도민들의 숙원사업이었다. 처음에는 찬성론이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하지만 오래 유지돼온 찬성 우세 흐름은 최근 급속도로 약화되고 급기야 역전됐다. 중국인 등 관광객이 급증하면서 주민들 사이에서 피로감이 커진 게 원인이다.

2공항 반대론자들은 이 작은 섬에 공항이 두 개씩이나 있을 이유가 있느냐고 한다. 난개발에 따른 환경 파괴가 가속화될 것이라고 걱정한다. 누구도 그들의 섬 사랑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치 않는다. 문제는 2공항 반대가 과연 섬을 깨끗하게 지키는 방법이 되느냐는 것이다. 2공항을 짓는 대신 현 제주공항을 확장하면 제주 관광객이 늘지 않을까. 지금 전남도에서는 해저터널을 이용해 제주와 고속철로 연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안공항에 내린 중국인 관광객이 해저터널로 제주에 가면 어떻게 할 것인지도 한번은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20년 전, 제주는 우주센터 유치 문제로 몸살을 앓았다. 정부는 당시 제주도 서남부 대정읍 해안을 그 최적지로 꼽았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우주센터는 고흥 나로도로 갔다. 정부는 뜻밖으로 신속하게 제주를 포기했고, 우주센터를 놓친 책임론은 한동안 제주를 휘감았다. 이 사업을 주관했던 항공우주연구원 관계자들은 지금도 “우주센터가 제주도로 갔어야 했다”고 한다.

2공항 여론조사 1차 시한은 지난 11일이었지만 법적·기술적 문제로 연기됐다. 이번 조사가 선거에 대한 조사가 아니어서 안심전화번호를 제공받을 수 없다는 선관위의 유권해석이 나와 다시 방법과 시점을 논의하고 있다. 당초 합의대로라면 향후 10일 이내에 조사를 실시해야 하지만 이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이왕 여론조사로 도민의 뜻을 묻기로 했다면 제대로 조사를 설계한 뒤 실시해야 한다. 도민들도 이번 여론조사의 의미를 무겁게 인식해야 한다. 제2공항의 필요성에 대해 더 심도 있게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 그동안 뒷짐만 져온 중앙 정치권도 이제는 나서야 한다. 2공항 건설을 제주도와 여론조사에만 맡긴 채 슬그머니 결정해선 안 된다. 제주 공동체를 파괴한 제주해군기지와 같은 비극은 피해야 한다.

이중근 논설실장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