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일수 채우기 바빴을 뿐, 학력 그 이상을 잃었다

최원형 입력 2021. 1. 20. 05:06 수정 2021. 1. 2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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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세계 대유행][코로나19와 싸운 1년] ②원격수업이 남긴 공백
집에서 수업 힘겨운 계층 학생
관계 단절 외 무상급식도 멈춰
불안·우울 높지만 대책은 구멍
서울 시내 한 고등학교에서 선생님이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3학년생 ㄱ군은 지난해 1학기 때 진행된 원격수업에 거의 참여하지 못했다. 스마트폰이 고장났는데, 6학년생 누나의 스마트폰을 나눠 쓰기도 쉽지 않았다. 학교에서 “스마트 기기를 무상으로 대여해준다”고 알려줬지만, 유일한 보호자인 엄마는 대여를 원치 않았다. “대여했다가 망가뜨리면 더 골치 아프다”고 여겼다. 엄마는 ㄱ군에게 “스마트폰을 새로 사주겠다”고 말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아침 일찍 나가서 밤 12시는 되어야 돌아오는 등 엄마는 늘 일에 치여 살았다. 결국 원격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종일 집에 단둘이 남겨진 남매는 점심과 저녁 끼니를 대충 때워가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이런 상황은 지난해 9월께 ㄱ군의 담임교사가 “원격수업 기간이지만 그냥 같이 공부하자”며 ㄱ군을 학교로 불러낼 때까지 계속됐다. ㄱ군은 이때 누나와 함께 왔다. 이유를 물으니 “외로워서 같이 왔다”고 했다.

코로나19라는 태풍에 휩쓸린 2020년, 4월이 되어서야 초유의 ‘온라인 개학식’으로 문을 열었던 학교는 끝내 ‘온라인 종업식’으로 문을 닫았다. 추석 연휴가 끝난 뒤 등교수업이 확대되면서 평소처럼 학교에 학생들이 붐비는가 싶었지만, 곧이어 3차 유행이 들이닥치면서 학교는 다시 학생들이 없는 공간이 됐다. 최근 각자의 집에서 꽃다발을 들고 얼굴을 영상에 비춘 졸업생들의 졸업식 모습처럼, 원격수업 등 모든 자원을 총동원한 덕분에 지난해 교육과정과 학사일정이 예정대로 진행은 됐다. 하지만 이른바 ‘케이(K)-에듀’가 학교의 빈자리를 제대로 메울 수 있었다고 보는 학생과 학부모, 교사는 많지 않다.

‘학력 손실’보다 더 컸던 학교의 빈자리

ㄴ양은 중학교 때 부모의 이혼을 경험한 뒤 극단적 선택을 떠올렸을 정도로 마음에 큰 상처를 입었다. 지난해 고등학교 진학을 계기로 ㄴ양과 가족들은 새로운 환경에서 새 출발을 해보자고 마음을 다졌다. 그러나 학년 초 시작된 원격수업이 길어지면서 ㄴ양에게 ‘새로운 환경’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러자 ㄴ양은 “고등학교 자체가 이렇게 힘든 건가”라고 자책하더니 급기야 “나는 대인 관계에 실패한 사람”이라며 우울감과 무력감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교사가 “모든 사람이 겪는 문제”라고 말해줘도, 이 말을 체감할 수 있는 관계를 직접 겪을 수 없으니 충고를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몇번의 상담을 거치고, 등교수업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관계를 쌓고 나서야 ㄴ양의 상태는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이런 얘기도 했다. “공립고등학교에선 학교가 단순히 교육받는 장소이기 이전에 일종의 도피처인 아이들이 있어요. 집에서 견디기 어렵기 때문에 거길 탈출해서 잠시 학교라는 공간에 몸을 맡기고 다른 친구들처럼 보통의 삶을 지낼 수 있는 그런 공간이 되는 거죠. 그런데 학교가 멈추면 그 기능도 멈추는 거예요. 갈 데가 없어지는 거죠. (집에서) 그런 상황을 혼자 견디다 보면 우울감으로 치닫게 되어요. 어떤 아이들에겐 부모로부터 받지 못하는 응원과 지지, 정서적 도움을 유일하게 받을 수 있는 장소가 학교인 거죠.”

원격수업이 도입됐을 때 가장 먼저 우려가 나왔던 것은 ‘학력 손실’이었지만, 실제 학교의 빈자리는 학력 손실의 범위를 넘어섰다. 원격수업으로 학습은 어느 정도 때울 수 있지만, 생활, 건강, 관계, 정서 등 종합적인 차원에서 학생을 보살피고 발달시키는 학교의 역량은 대신할 수 없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계획에 따라 규칙적인 시간을 보내는 것부터 시작해, 또래 친구를 만나 관계를 맺는 것, 영양 균형을 이룬 급식을 먹는 것, 부모가 아닌 어른을 보고 배우는 것 등 그동안 학교를 통해 가능했던 학생들의 성장에 일제히 제동이 걸렸다.

교사와 교육복지사들은 “학생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도 내가 모르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 1년 내내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다”고 입을 모았다. 학생들을 직접 볼 수 없으니, 예년 같으면 학년 초에 어렵지 않게 발견했을 문제들도 좀처럼 찾아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방임이나 학대 등 가정 내에서 벌어진 지속적인 문제를 2학기 중반이 되어서야 발견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경기도 지역에서 일하는 노경은 교육복지조정자는 “‘발굴’ 자체가 힘들어서, 지난해 학교 내 아동학대 의심 신고는 예전보다 줄어들었다. 그런데 극단적 선택과 시도가 늘어나는 등 그 양상은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고 말했다.

핵심 문제는 격차…취약계층은 속수무책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학교의 빈자리가 끼치는 영향이 학생이 속한 가정의 사회경제문화적 배경에 따라 격차를 보인다는 사실이다.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되면서 중산층 이상 계층은 사교육이든 가정학습이든 가정을 기지 삼아 사적인 자원을 총동원했다. 그러나 집이 학교보다 더 불리한 취약계층은 속수무책이었다.

지난해 화상수업으로 이뤄진 체육시간 동안 중학생 ㄷ군은 스마트폰 화면을 그저 멀뚱멀뚱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체육교사가 체조 동작을 먼저 보여주면 학생들이 이를 뒤따라 하는 수업이었는데, ㄷ군의 집은 너무 좁아서 몸을 움직이는 등 교사의 동작을 따라 하기 어려웠다. 학교 수업 때엔 나타나지 않았던 격차가 주거환경에 따라 나타난 사례다. ㄷ군의 열악한 주거환경은 단지 수업을 제대로 듣지 못한 데 영향을 줬을 뿐 아니라 ㄷ군의 건강에도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은 지난해 7월 코로나19 영향을 살펴보기 위한 설문조사를 하면서, 경기도 지역 학생 2만여명에게 ‘평일 등교수업하지 않는 날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을 꼽아보라고 했다. 가정의 경제적 수준이 ‘상’에 속한 학생들은 52%가 ‘보호자’를, 15%가 ‘혼자’를 꼽았다. 반면 ‘하’에 속한 학생들은 35%만이 ‘보호자’를 꼽고 28.6%가 ‘혼자’를 꼽았다. 등교수업이 없는 평일에 점심을 전혀 먹지 않거나 거의 먹지 않는다는 대답은 ‘상’ 학생들이 9.7%였지만 ‘하’ 학생들은 24.5%에 달했다. 가정의 경제적 수준이 낮거나 낮 시간에 보호자 없이 지내는 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교하지 않는 날의 우울감 등이 다른 집단보다 높게 나타났다.

이에 교육당국은 “방역·학습·돌봄 안전망을 강화하겠다”며 취약계층 지원을 약속했다. 인공지능(AI) 학습을 도입한다거나, 실시간 쌍방향 수업을 활성화한다거나, 필요한 학생들에게 소그룹 맞춤형 대면지도를 강화하는 등의 방안이 담겼다. 다만 실제로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을 시스템과 연결해주는 ‘다리’는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2학기부터 도움이 필요한 학생들에게 자발적으로 대면지도를 해주는 ‘학습결연119’ 캠페인에 참여해온 서울 지역 한 교사는 “학생들을 직접 만나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파악하고, 학교 안팎의 자원들을 연결해주는 구실을 하는 ‘지원 교사’의 배치가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말했다.

원격수업 일상화하면 교육의 기능도 확장돼야

코로나19 1년이 교육 현장에 가져온 또 다른 변화 가운데 하나는 학생들 사이에서 “매일 학교에 간다”는 인식 자체가 희미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원격수업이 수업일수에 포함됐고, 가정학습 등 출석으로 인정해주는 체험학습 허용 범위도 넓어졌다. 전면 원격수업을 하지 않을 때도 방역 때문에 ‘징검다리’ 형태로 등교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해 초중등학교의 법정 수업일수는 예년보다 10% 줄어든 171일이지만, ‘매일 등교’가 원칙이었던 고등학교 3학년을 제외하면 대부분 학생들의 실제 등교일수는 3분의 1가량에 그칠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코로나19 유행이 심각했던 수도권은 이보다도 적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 지역 한 초등학교 교사는 “실제로 학교에 나온 날을 따져보니 1년 동안 30일이 안 넘는다. 20일이 안 되는 학생도 있다”고 말했다. 1학기 때까지의 통계만 봐도, 서울 지역 초등학교의 평균 등교일수는 11.6일에 그쳤다.

학교 현장에서는 학교에 대한 학생들의 인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세종 지역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한동안 전면 등교를 하다가 거리두기 단계가 올라가며 ‘일주일에 한번 등교’로 바뀐 적이 있는데, 아이들 대부분이 ‘일주일에 하루인데 그걸 꼭 나와야 하느냐’는 반응을 보이더라”고 전했다. 그는 “원격수업을 ‘미래교육’의 계기로 삼는다는데, 그 말 속엔 앞으로 학교에 꼭 나가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가 포함된 것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울 지역 한 고등학교 교사는 “학생들이 가끔 학교에 오더라도 밀린 평가를 수행하느라 바쁠 뿐 방역 때문에 이야기도 제대로 못 나누고 다양한 활동도 하지 못했다”며 “점차 학교에 가야 할 이유가 희미해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그동안 지식 전달과 평가만을 강조해온 공교육의 누적된 문제가 이번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지적한다. 학교의 구실과 의미를 단지 학습에만 가둬둘 것이 아니라 코로나19를 계기로 삼아 아동·청소년을 위한 보편적인 복지의 제공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현 서울 신현고 교사는 “앞으로 지식 전달에 디지털 도구 등의 힘을 빌릴 수 있다면, 교육의 본질은 아이들을 잘 먹이고 돌봐주고 정서적으로 지지하며 서로 이야기하게 만드는 등 종합적인 ‘돌봄’으로 자리 잡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애 한국교육개발원 교육복지연구실장은 학교 밖에도 취약계층이 기댈 수 있는 ‘강한 연대의 소규모 집단’을 구축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김 실장은 “그동안 가정 배경 등과 관계없이 학교에서 동일한 교육을 제공하는 ‘교육 복지’를 추구해왔다면, 코로나19 이후에는 학생이 학교에 있지 않더라도 동일한 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학습생활복지’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지난해 우리 사회는 수업일수와 학사운영을 맞추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이런 공동체를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다”고 짚었다.

최원형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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