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내가 정인이 엄마,할머니다"..재판에서 울부짖은 시민들
생후 16개월 입양아 정인이를 학대해 숨지게 한 양부모의 첫 재판이 열린 13일, 법원 앞에는 수많은 ‘정인이의 엄마’들이 모였다. 전국 각지에서 100명 안팎의 시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법원 앞에서 피켓 시위를 했다. “정인아 미안해 사랑해”를 외치기도 했고, 일부는 재판에서 방청을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날 오전 8시부터 법원 앞에서 “입양부모의 살인죄 처벌을 원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든 김효정(36)씨는 어린 두 자녀를 생각하며 법원에 왔다고 했다. 김씨는 “11개월 된 둘째 아이를 볼 때마다 정인이 생각이 나서 한동안 밥도 잘 먹지 못하고 잠이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시는 정인이와 같은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들과 함께 오늘 이 자리까지 오게 됐다”고 말했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등에서 모인 시민들이 법원 정문 앞에서 “양모를 살인죄로 처벌하라”는 구호를 외쳤다. 오전 9시20분쯤 양모를 태운 호송차가 법원으로 들어가자 감정에 북받쳐 오열하는 시민도 있었다.
이날 일반인에게 할당된 법정 방청석은 총 51석이었다. 추첨에는 813명이 몰려 경쟁률은 15.9대1에 달했다. 이들은 방청 신청을 통해 본 법정과 중계법정에서 정인이 양부모의 첫 재판을 함께 지켜봤다. 앞서 남부지법은 “아동 학대 사건에 대한 높은 국민적 관심을 고려해 공개재판 원칙을 확대 적용했다”며 본 법정 외에도 별도의 법정 2곳에서 중계 방청을 허용했다.
중계법정에서 재판을 지켜본 정모(65)씨는 “손자를 키우는 할머니의 입장에서 정인이 사건이 너무 가슴 아파 직접 두 눈으로 재판을 지켜봐야겠다 싶어 방청을 신청했다”며 “운이 좋게 당첨이 돼서 첫 재판을 지켜봤지만 정인이가 췌장이 끊어질 정도로 고통스럽게 죽었음에도 혐의를 부인하는 양부모의 모습을 보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고 말했다. 양부모의 재판이 진행될 당시 검사가 공소사실을 읽으며 양부모의 학대 사실을 하나씩 진술할 때마다 법정 곳곳에서는 탄식이 쏟아졌다. 일부 방청객은 눈물을 흘렸다.
오전 10시 30분에 시작한 양부모의 첫 재판은 40여분만에 끝났다. 이후에도 법원을 떠나지 못한 시민들은 1시간 가까이 시위를 이어갔다. 서울 광진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한다는 정모(53)씨는 이날 휴가를 내고 법원을 찾았다고 했다. 정씨는 “지난해에 이런 사건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가 최근 뉴스를 보고 정인이를 알게 됐다”며 “방청을 신청했다가 떨어졌지만 정인이에게 힘이 되고 싶어서, 오늘만큼은 정인이의 할머니라도 되고 싶은 심정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가람 기자 lee.garam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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