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소문 붙이자 '주거침입' 경찰 신고..택배기사-입주민 갈등 언제까지

강주희 2021. 4. 3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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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의 원한다"..'호소문' 붙이자 경찰 고발해
한달째 이어지는 '택배 갈등' 피로감
전문가 "정부, 지자체 중재 나서야"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아시아경제 강주희 기자] 택배차 지상출입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가 최근 '호소문'을 붙였다는 이유로 택배기사들을 경찰에 고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일부터 약 한 달째 이어져 온 입주민-택배기사 간 갈등이 적절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심화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일각에선 중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는 정부, 지자체에서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30일 언론 보도에 따르면, 서울 강동경찰서는 지난 13일 '택배 기사 2명이 무단으로 아파트 복도에 들어와 집 앞에 전단을 꽂아 뒀다'는 내용의 112신고를 아파트 측으로부터 접수해 수사 중이라고 28일 밝혔다.

아파트 입주민들은 호소문을 통해 "지상으로 출입하는 일반차량(탑차) 대신 저상차량이나 손수레로 집 앞까지 배송하면 택배기사들의 노동 시간·강도가 늘어나 건강과 안전이 위협받는다"며 "입주민과 협의해 대안을 마련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경찰은 택배기사들이 아파트 건물에 들어간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주거침입이나 경범죄처벌법상 광고물 무단 부착 혐의 등을 검토해 판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노조)은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기자회견을 열고 "후퇴하는 택배노동자의 노동 현실을 알리고 도움을 호소한 것이 과연 주거침입으로 고발당할 일인지 묻고 싶다"면서 "입주자대표회의와 대화를 나누고 싶고, 가능하면 현실적 대책을 마련해보고 싶다는 내용의 유인물 한 장을 건네고 싶었을 뿐"이라고 토로했다.

지난 8일 오전 서울 강동구 고덕동 한 아파트 앞에서 택배 기사들이 일반 택배 차량과 저상 택배 차량을 비교해 보이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택배기사와 아파트 측 갈등은 이 아파트가 택배차량의 지상 보도블록 출입 금지 조처를 내리면서 불거졌다. 아파트 측은 지난 1일 차량이 지상 보도를 통해 오가면서 시설물 훼손, 안전사고 등을 일으킬 수 있다며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지하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일반 택배차량(2.5~2.7m)은 지하 주차장 진입제한 높이(2.3m)보다 차체가 높아 진입이 불가하다.

이에 택배기사들은 반발해 한때 아파트 입구 앞 택배 물품을 쌓아 두며 개별 배송을 거부하는 '보이콧'을 하기도 했으나, 일부 입주민들로부터 폭언을 듣거나 '문자폭탄'에 시달리는 등 피해가 이어지자 다시 개별 배송을 재개했다.

해결 방안으로 탑차를 저상 차량으로 개조하거나 바꾸는 방안이 거론됐지만 택배기사는 특수고용직이어서 개조 비용을 모두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데다, 차체가 낮으면 물건을 옮길 시 수시로 허리를 깊이 숙여야 하는 등 건강상의 위험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현재 택배기사들은 아파트 입구 앞에 차량을 대고 손수레를 이용해 일일이 배달 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택배 기사들이 갈등을 빚고 있는 서울 강동구 고덕동 아파트에 배포한 호소문./사진제공=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

이에 대해 아파트 측은 1년 전부터 택배사와 협의를 거쳤으며, 택배 차량의 지상 진입 금지를 알리며 충분한 계도 기간을 거쳤다는 입장이다.

택배기사와 아파트 간 갈등이 봉합되지 못하면서 이를 바라보는 시민들도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직장인 임 모(29)씨는 "단지 아파트와 택배기사의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 때 택배기사들이 적정한 노동을 할 수 있도록 택배사나 지자체에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사람은 죽어나가는데 여러 사람이 고통을 겪고 있어도 택배사나 지자체는 뒷짐 지고 구경만 하고 있다. 무책임하다"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는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 지자체에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승택 한국노동연구원 부원장은 "당사자 간 얘기를 해서 서로 합의를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예를 들면 지상으로 다닐 수 있는 동선을 정한다거나, 시간을 정하는 등의 방법이 있을 수 있다. 택배사의 경우 저상차량을 택배기사에게 제공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는 양측 모두 양보하지 않는 상황이고 갈등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 부처에서 개입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회적으로 갈등이 발생했을 때 정부와 지자체가 합의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강주희 기자 kjh81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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