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1명 확진, 429만명 봉쇄

박성훈 2021. 1. 15.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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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훈 베이징특파원

시작은 단순했다. 우한 이후 다시 시작된 도시 봉쇄 현장을 보겠다는 것. 중국 허베이성 3개 도시 2300만 명의 발이 다시 묶였다. 13일 베이징에서 차로 불과 1시간 거리에 있는 봉쇄도시 랑팡시로 향했다. 도시 안까지 들어가면 갇혀서 나올 수 없으니 입구까지만 접근해 분위기를 취재한다는 심산이었다.

고속도로는 갈수록 차가 줄더니 10여㎞를 앞두고 빈 도로가 이어졌다. 랑팡시 톨게이트. 공안이나 방역차는 없었다. 봉쇄를 실감케 한 건 오히려 그 을씨년스런 분위기였다. 관리소 직원은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 어렵다. 도시가 이미 봉쇄됐다”고 했다.

베이징으로 돌아오기 위해 차를 돌렸다.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1㎞도 채 가지 않아 공안 검문에 막혔다. “핵산검사 결과 봅시다.” 베이징에서 왔고 랑팡시 안에 들어간 게 아니라고, 차를 돌려 나왔을 뿐이라고 설명했으나 소용없었다. 짜증 섞인 얼굴로 검사결과가 없으면 못 나간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봉쇄의 경계는 톨게이트가 아니었다. 결국 핵산검사를 받기 위해 랑팡시로 들어가야 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14일 중국 허베이성 랑팡시는 진출입은 물론 도심 통행도 전면 봉쇄했다. 박성훈 특파원

봉쇄된 우한의 황량한 풍경을 영상으로 봐 왔지만 실제 봉쇄지역에 들어간 건 처음이었다. 느낌은 전혀 달랐다. 차도 사람도 없는 거리. 텅 빈 도시의 세기말적 풍경은 ‘유령도시’란 말로는 부족했다. 반대로 핵산검사장엔 사람들이 있었다. 전수 검사였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터라 검사 결과는 이틀 뒤에나 나온다고 했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핵산검사 없이는 호텔도 들어갈 수 없고 건물이 모조리 문을 닫아 식당도, 심지어 화장실조차 찾기 어려웠다. 지난해 코로나가 심각했을 때 중국 각지의 도주범들이 잇따라 자수한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다. 그럴 수밖에 없겠다 싶었다. 본인이 감염자가 아니란 걸 증명하지 못하면 밥조차 못 먹으니 차라리 감옥이 나았을 터다.

안전이 최우선이라 비판할 순 없지만 도시를 정지시킨 기회비용은 엄청나다. 랑팡에 한국 기업 공장들도 물류 마비로 가동이 중단됐다. 베이징에서 출퇴근하던 직원들은 발이 묶였다. 당장 개인사업자, 택배 배달원, 운전기사 등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의 수입도 끊겼을 것이다.

인구 429만의 도시 랑팡의 2주 내 확진자는 14일 기준 단 1명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틀어막는 이유는 뭘까. 한 현지 매체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 시는 수도를 방어하는 ‘해자’이자 첨병이다.” 해자는 적을 막기 위해 성벽 주위에 파놓는 물길이다. 해자 앞에 예외는 없다. 현재 중국 방역의 실상이다.

박성훈 베이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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