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마을 얕봤던 '절도범'의 결말은?

송국회 입력 2021. 2. 23. 09:01 수정 2021. 2. 23.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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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낮, 시골 마을 노린 '절도' …"출소 2주 만에 또 범행"

32가구, 60여 명의 어르신이 모여 사는 충북 괴산군 사리면의 한 시골 마을에 수상한 남성이 몰래 들어왔습니다. 때는 지난 19일 오후 1시쯤이었습니다. 외출했다 집으로 돌아온 우춘식 씨는 건넛방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인기척을 느꼈습니다.

처음에는 아내인 줄 알았던 우 씨는 문틈 사이로 한 남성이 무언가 열심히 뒤지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자 '절도범'이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일단 잡아야겠다는 생각에 방문을 힘껏 밀어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미리 방문을 잠가뒀던 이 남성은 그 사이, 자신이 넘어들어왔던 창문을 통해 야산으로 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방 하나를 멘 평범한 복장 차림의 이 60대 남성은 경찰 조사 결과, 최근 충남의 한 교도소에서 출소한 절도 전과자였습니다.

주민들은 야산으로 도주한 A 씨를 2km가량 추격하면서 근처 마을로 포위망을 좁혀갔다.


■ 주민들, 산 능선 추격전… "육상선수 출신 어르신 덕에"

갑작스러운 상황에 다리에 힘이 풀렸다던 우 씨는 작정하고 야산으로 도주하는 A 씨를 곧장 추격할 힘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동네 곳곳, 야산 지형까지 훤히 꿰고 있었던 덕에 범인이 어디로 달아날지, 예상 도주로를 직감적으로 생각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 씨는 절도범 A 씨가 달아나던 방향 근처에 사는 이웃, 홍만표 씨에게 즉시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집에서 쉬고 있던 주민 홍 씨는 머뭇거릴 겨를도 없이 얇은 티셔츠 한 장만 걸친 상태로 뛰쳐나갔습니다. 우 씨는 112에 신고를 하고, 뒤따라 추격을 시작했습니다.

저 멀리 500m가량 떨어진 산 아래에서 뛰어 올라오는 홍 씨를 발견한 절도범 A 씨. 방향을 틀어 줄행랑을 쳤습니다. 이를 놓칠세라 더욱 추격 속도를 낸 홍 씨는 A 씨의 도주 방향을 예상해, 논을 가로질러가는 노련함도 보였습니다.

우 씨와 다른 주민 1명도 출동 중인 경찰에게 A 씨의 행방을 알리며 함께 포위망을 좁혀갔습니다. 바짝 추격해오는 홍 씨 탓에 지칠 대로 지친 A 씨는 결국 출동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될 수 있었습니다.

범인 검거에 큰 공을 세운 홍 씨는 초등학교 육상부 시절, 강원도민체전에서 2등까지 거머쥔 선수 출신이었습니다.

우 씨가 위험을 무릅쓰고 A 씨를 추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취재진에게 설명하고 있다.


■ "홀몸노인 집이었으면 더 위험"

경찰은 주거 침입 절도 미수 혐의로 구속된 A 씨를 검찰에 송치할 예정입니다. 경찰 조사에서 A 씨는 "여인숙을 떠돌다가 배가 고파서 범행을 시도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전과자 A 씨가 복역 이전에도 방방곡곡을 돌면서 상습적으로 절도 행각을 벌여왔다고 밝혔습니다.

A 씨의 가방에 흉기가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우 씨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왜 주민들과 합심해 추격전까지 벌였을까요?

우 씨는 "우리 마을, 홀몸노인이 사는 집에 침입했다면 상황은 더 위험했을 수 있다"면서 전혀 망설이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나마 젊은 자신의 집에 들어온 게 다행이었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 이웃 주민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잡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우 씨의 전화를 받고 자기 일처럼 선뜻 나섰던 홍 씨도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 다른 주민들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기 때문에 서로 도와야 한다"는 겁니다. 마을 주민들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문단속을 더욱 철저히 하게 됐다고 합니다.

경찰은 "대부분 절도범이 문을 잠그지 않고 집을 비우거나 노약자들이 많이 사는 농촌의 특성을 노린다"며,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CCTV가 부족해 범인 특정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잠시 집을 비울 땐 라디오를 켜고 외출하는 것이 좋고, 신문이나 우유는 문 앞에 놓아두지 않아야 절도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도 강조했습니다.

송국회 기자 (skh0927@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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