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차 개조 150만원" vs "애초 공원형 아파트"..'고덕 택배대란' 왜?[촉!]

2021. 4. 6. 11: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아파트 반대에 택배기사 "자비 150만원 들여 탑차 개조 돌입"
53개동·5000여세대..손수레 배송 어려움 호소
주민들 "보도블록 훼손막고 아이들 안전 위해 '지상 택배' 금지"
전문가들 "2018년 '다산 사태' 이후 선례 못 만들어 갈등 계속"
"서로 간 합의점 찾으려는 노력 지금이라도 해야"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 단지의 출입구 모습. 지난 1일부터 이 단지에서는 지상으로 택배 차량이 오가지 못하며 지하 통행만 허용된 상태다. 김지헌 기자/raw@heraldcorp.com

[헤럴드경제=김지헌 기자] “이 아파트 단지를 들어가려고 어떤 기사는 150만원을 들여 이미 택배 차량 높이를 낮추도록 수리를 맡긴 상태입니다. 다른 기사는 당장 돈이 없으니 낮은 높이의 다른 택배차를 빌려서 지금 배송을 하고 있고요. 당장 문제가 터졌는데 택배회사 본사나 대리점은 직접 책임이 없다며 지원도 일체 없어 답답합니다.”

최근 서울 강동구 고덕동에 위치한 한 대단지 아파트에서 발생한 ‘택배 대란’과 관련해, 인근 지역에서 배송을 하는 A씨는 6일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택배기사들 “언제까지 손수레로 배송 가능할지 의문”

이 단지에 가장 많은 인원(5~6명)이 투입되는 B택배회사 소속 한 택배기사도 “택배 차량의 높이를 60㎝ 가량 낮추기 위해 사비 150만원을 들여 차량 개조를 전날(5일) 맡긴 상태”라고 했다. 개조 작업으로 인해 3~4일은 맡긴 차량을 이용하지 못한다. 어떤 기사는 높이가 낮은 차량을 아예 다른 데에서 빌려 배송 중이고, 다른 기사는 손수레를 통해 배송을 하는 상황이다. 다른 택배회사 기사들도 손수레를 이용해 물품 배송을 하고 있다.

이 단지는 지난 1일부터 지상으로 택배 차량이 오가지 못하도록 한 뒤, 지하 통행만 허용하고 있다. 택배 차량이 지하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차량 높이가 2.3m보다 낮아야 하는데, 이를 맞추지 못한 택배 기사들이 이 아파트 단지 출입구 부근에 대량으로 배송 물품을 내려놓으면서 ‘택배 대란’이 발생했다.

2019년 1월부터 공원 아파트의 경우 지하주차장 입구부터 높이를 2.7m로 높이도록 했으나, 고덕동의 이 아파트 단지는 2016년 시공했기 때문에 이전 규정 하에서 2.3m 높이로 지하주차장이 지어진 상태다. 택배 물품이 과도하게 쌓이자 지난 5일부터 이 아파트는 택배기사들이 지상에도 물품을 내려놓지 못하게 했다.

택배기사들은 “‘택배 대란’에 따른 비용을 온전히 기사들이 부담해야 한다”며 고충을 호소하고 있다. 기사들은 택배사 본사에 직접 고용된 직원들이 아니다. 본사와 계약 맺은 대리점이 있고, 이 대리점이 다시 기사들과 계약을 맺었다. 이들은 개인사업자(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이다. 강민욱 택배노조 교육선전국장은 “본사와 대리점은 택배 수수료를 함께 나눠 수취하지만, 반대로 차량 개조나 배송 관련 비용이 기사들에게 필요할 경우 본사와 대리점은 부담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당장 손수레를 이용해 배송하는 기사들은 “언제까지 손수레를 통해 배송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지난 5일 해당 단지 근처에서 기자와 만난 A씨는 실제로 빠르게 배송을 하지 못해 애를 먹고 있었다.

A씨는 “조금만 속도를 내거나 코너를 돌면 손수레에 실린 물품이 떨어져 배송에 속도를 낼 수 없다”고 했다. 이어 “53개동, 약 5000가구에 달하는 대규모 단지라 더 시간이 걸린다”며 “할당된 물량을 오늘(5일) 안에 제대로 해내지 못하면 본사에서 안 좋은 평가도 받을 수 있어 우려스럽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택배기사 C씨는 “석수 등 물이 실린 차량이나 이삿짐 차량 등은 지하가 아닌 지상에서 운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봤다”며 “택배차량에 대한 통제만 강화하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지난 5일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 단지 내 택배 물품이 손수레에 쌓여 있는 모습. 당장 손수레를 이용해 배송하는 기사들은 “언제까지 손수레를 통해 배송할 수 있을 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김지헌 기자/raw@heraldcorp.com
입주민들 “다른 아파트에서도 사고날뻔…요구 정당”

해당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는 택배기사들에게 충분히 대비할 시간을 줬다는 입장이다. 단지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아파트 자체가 애초에 ‘공원용 아파트’로 설계돼 보도블록이 깔렸는데 실제로 지상 차량 통행으로 인해 보도블록이 파손되기도 해 재발을 막고자 이런 조치를 취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9월부터 택배회사들에게 지상 출입 통제 방침을 꾸준히 알려 왔다”며 “택배 회사들에게 내용증명까지 보내며 단지 내 통제를 알리기도 했고, 충분히 기간을 줬다고 판단해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됐다”고 덧붙였다.

상당수 입주민도 단지 내 안전을 위해서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인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둔 40대 임모 씨는 “이 단지에는 아이들이 많이 뛰어놀 수 있는 환경이 잘 조성돼 있다”며 “차량이 많이 다닐 경우 아이들과 부모가 오가는 공간이 위험해질 수 있어 택배 차량 지상 진입 금지는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입주민인 50대 김모 씨도 “과거에도 다른 아파트 안에서 차량 통행으로 인해 입주민들이 사고 날 뻔 했던 뉴스가 많이 나오지 않았냐”며 “택배기사들에게 정당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2018년 경기 남양주시 다산신도시의 ‘택배 대란’ 사태가 다시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당시에도 공원형 아파트라는 이유로 단지 입주민들이 택배차량의 지상 출입을 금지해 기사들이 항의하며 택배 물건을 쌓아둔 전례가 있다. 이에 항의하는 모습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사회적 논란도 촉발됐다. 현재에도 해당 신도시 단지에서는 택배 기사들이 손수레를 끌고 배송을 하고 있다.

갈등을 해결하는 선례가 만들어지지 못해 그 여파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애초에 2018년 당시 ‘택배 대란’이 터졌을 때 (사회적으로 인정할 만한)선례를 만들지 못해 이런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며 “양측의 일방적 요구보다는 입주민과 택배 기사가 서로 적정선에서 합의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야 이런 갈등이 재발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지적했다.

사회적으로 점점 안전에 대해 민감해지고 추세도 이런 갈등이 부추기는 원인으로 지목됐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사회적으로 안전에 대해 사람들이 점점 더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거주민 안전’과 ‘비대면 강화로 인한 택배 필요성’을 두고 어떤 식으로 봐야 할지를 좀 더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서로 조정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며 “거주민이나 아동이 많은 시간대에 택배기사들이 배송을 피하고 다른 시간대를 타협해 작업을 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2일 서울 강동구 고덕동의 한 아파트 단지 내 지상에 택배 물품들이 쌓여 있는 모습. 이 단지는 지난 5일부터 지상에 기사들이 택배 물품을 놓고 가지 못하도록 해 현재에는 깨끗하게 치워져 있는 상태다.[연합]

raw@heraldcorp.com

-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