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바닷가의 백건우..공허한 표정 단번에 잡았죠"

오수현 입력 2021. 6. 11. 17:21 수정 2021. 6. 11.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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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아티스트 전문 사진작가 노승환
클라라 주미강·강혜정 등
스타 음악가 사진촬영 도맡아
"연주자들은 섬세하고 예민
좋아하는 음악 틀어놓고 촬영
실황 촬영땐 몰입순간 포착"
[사진 제공 = 노승환]
"노 작가, 빨리 통영으로 내려와줘. 백 선생님이 오늘 음반 커버 사진을 촬영하자고 하시네."

사진작가 노승환(37)은 지난해 5월 피아니스트 백건우의 매니저에게서 급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백건우의 신보 '슈만' 녹음을 마친 직후였다. 촬영 장비를 서둘러 챙겨 서울에서 경남 통영으로 차를 몰았다. 도착하자마자 바닷가에 적당한 촬영 장소를 물색한 뒤 백건우를 찾았다. 백건우는 빨간 셔츠를 입고 나타났다. 백건우가 아내 윤정희 없이 사진 촬영에 나선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선생님 셔츠를 보면서 윤 선생님이 함께 오시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촬영 때 백 선생님 코디는 윤 선생님이 늘 전담하셨거든요. 바다와 어울릴 푸른색 셔츠를 골라드리고 곧바로 촬영에 임했어요."

지난 10일 서울 한남동 스튜디오에서 만난 노승환은 백건우의 앨범 커버 촬영 당시 상황을 상세히 풀어냈다. 클래식 아티스트의 촬영 작업은 통상 3~5시간 정도 소요된다. 하지만 당시 촬영은 딱 17분 만에 끝났다. "백 선생님은 피아노 연주도 대가이시지만, 사진 촬영에서도 프로페셔널이에요. 그날 선생님께선 슈만의 음악과 무척 어울리는 표정을 지으셨어요. 몇 장 찍고 보니 '더 찍을 것도 없겠다' 싶었죠." 백건우의 앨범에는 슈만의 유서로 불리는 작품 '유령변주곡(Geistervariationen)'이 담겼다. 정신병에 시달리던 슈만이 라인강에 투신하기 직전 완성한 작품이다. 바다 빛을 닮은 셔츠를 입은 백건우가 바닷가 바위에 걸터앉아 공허한 시선으로 어딘가를 응시하는 사진은 이렇게 탄생했다.

노승환은 클래식 아티스트 촬영을 전문으로 하는 사진작가다. 백건우를 비롯해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소프라노 강혜정, 성악 아이돌그룹 포르테 디 콰트로 등 유명 아티스트들의 사진 촬영을 도맡았다. 업계에선 "노승환과 작업을 함께한 아티스트는 다음에도 반드시 그를 찾는다"고 한다.

"클래식 촬영의 노하우요? 촬영 전 아티스트 측에 최근 녹음한 음원 몇 곡을 전달해달라고 요청해요. 연주에서 느껴지는 감정의 뉘앙스를 파악하면 촬영에 큰 도움이 되거든요. 또 아티스트 본인 음반이나 (아티스트가) 좋아하는 곡을 촬영 때 틀어놓으면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지죠. 연주자들은 섬세하고 예민해요. 사진작가가 공격적으로 주문하면 딱 굳어버리더라고요. 반면 아이돌그룹은 아무리 세게 주문해도 촬영엔 영향이 없죠."

정적인 프로필 사진과 달리 공연 실황 사진은 그야말로 순간 포착을 위한 긴장의 연속이다. 노승환은 2014년 오스트리아 빈의 유서 깊은 공연장 무지크페라인홀에서 클라라 주미 강의 연주 장면을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클라라 주미 강이 인스타그램 프로필 사진으로도 사용하는 사진이다.

"주미 강 씨는 연주에 몰입하면 미간을 살짝 찌푸리는 특유의 표정이 나와요. 연주 내내 이 표정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포착한 사진이에요. 클래식 공연장에선 촬영은 일절 금해요. 객석 맨 뒤나 무대가 보이는 백스테이지에서 촬영을 하는데 제약이 많아요. 최근엔 무음셔터가 나왔는데, 얼마 전만 해도 셔터를 누를 때마다 '찰칵찰칵' 소리가 났어요. 그래서 심벌즈나 팀파니 같은 타악기 소리에 맞춰 셔터를 눌러요. 셔터 소리가 묻히거든요.(웃음)"

피아니스트 백건우는 사진 촬영도 프로페셔널하다. 백건우는 작년 5월 경남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신보 `슈만` 녹음을 마친 직후 통영 앞바다에서 음반 커버 사진을 찍었다. 바다 빛을 닮은 셔츠를 입은 백건우가 바위에 걸터 앉아 공허한 시선으로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것이 슈만의 음악과 무척 닮았다. [사진 제공 = 노승환]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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