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서 멍들어 온 아이... CCTV 보려면 3000만원 내라고?

울산/김주영 기자 입력 2021. 1. 24. 22:33 수정 2023. 11. 14. 10:1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현행법상 ‘영상 모자이크’ 처리해야 가능, 비용은 학부모가 부담

울산 남구 한 국공립 어린이집 원장과 보육교사 2명이 아동 학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선고 직전인 지난 18일 아동학대 등 혐의가 추가로 드러나 검찰이 공소장 변경 여부를 검토 중이다. 학대받은 아동 엄마인 30대 A씨는 사건 발생 1년이 지난 최근에서야 재판부를 통해 어린이집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고 기겁을 했다. 30개월 아이에게 12분 동안 물 7컵을 강제로 먹여 토하게 하고, 아이들이 남긴 잔반을 먹게 하는 등 학대한 정황이 CCTV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A씨는 사건 직후에도 경찰에게 CCTV 화면을 보여달라고 요청했지만, “화면을 모자이크 처리하고 봐야 하는데 비용이 3000만원 든다”는 말을 듣고 포기했다. 대구에서 비슷한 일을 겪은 학부모 B씨도 “아이가 다니던 어린이집 원장이 영상 모자이크 비용으로 3600만원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최근 어린이집 아동 학대 사건이 잇따르면서 학대 정황을 의심하는 일부 학부모들이 어린이집 CCTV 화면을 확인하려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어린이집은 물론이고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도 초상권 보호를 위해 화면 속 등장인물을 모자이크 처리하는 게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거부하고 있다.

CCTV 화면 모자이크 비용 3000만~1억원

울산의 A씨가 아들 학대 장면이 담긴 CCTV 영상을 제대로 확인한 것은 지난 연말이었다. 그는 “2019년 11월 초 어린이집 원장과 CCTV 영상을 봤는데 학대 장면이 나오자 원장이 영상 장치를 자물쇠로 잠가 버렸다”고 말했다. A씨 신고를 받고 수사에 착수한 경찰이 CCTV 영상을 압수했지만, A씨에겐 보여주지 않았다. 경찰은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른 조치”라며 “영상 속 모든 인물의 동의를 받아야만 열람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동의를 받지 못하면 영상에 나오는 사람들 얼굴을 알아볼 수 없도록 모자이크 처리해야 한다”며 “35일치 화면을 처리하려면 시간당 10만원, 약 3000여만원이 든다”고 했다.

울산 남구 한 국공립 어린이집에서 교사가 30개월 원아에게 물을 강제로 먹여 토하게 하는 등 학대하는 장면이 담긴 CCTV 영상. /MBN

A씨는 결국 수사 과정에선 CCTV 화면을 확인하지 못하고 학대 교사가 재판에 넘겨진 뒤 법원에 열람 신청을 하고 나서야 허가를 받아 확인할 수 있었다. 모자이크 처리가 되지 않은 CCTV 화면을 받은 A씨는 20일간 영상을 샅샅이 뒤져 아동 학대 사례 83건을 추가로 확인했다. 애초 경찰은 28건만 검찰에 넘겼다. A씨는 경찰의 부실 수사를 지적하고 담당 경찰관 파면을 요구하는 국민 청원글을 올려, 24일 오후 현재 1만3000여명의 동의를 받았다.

대구 달서구 30대 학부모 B씨는 “세 살 딸을 학대한 혐의로 어린이집 원장과 교사가 현재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며 “어린이집 CCTV를 직접 보려고 했지만 어린이집에서 ‘하루 30분 분량만 볼 수 있다’고 해서 확인할 수 없었다”고 했다. B씨는 모자이크 비용으로 3600만원을 요구받았다. B씨는 “개인정보 보호도 좋지만, 아동 학대를 밝히기 너무 힘들다”고 답답해 했다. 지난해 9월 부산 기장경찰서를 찾은 한 아동 보호자는 CCTV 화면 모자이크 비용으로 1억원이 든다는 경찰 안내를 받았다고 했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이 개인정보보호법을 어기고 학부모에게 영상을 보여주면 원장이나 가해 교사로부터 소송당할 수 있다”고 했다.

“아동학대 증거 확인과 개인정보보호 충돌”

법률 전문가들은 CCTV 열람을 쉽게 허용할 경우 현행법상 다른 아동 초상권이나 개인정보 보호가 문제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 현직 법관은 “영유아보육법은 보호자가 요청하거나 범죄 수사, 재판 등 극히 한정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CCTV 열람을 금지하고 있어, 다른 아동에 대해 보호 처리를 하지 않고 보여줄 경우 다른 아동 부모가 손해배상 소송을 낼 수 있다”고 했다. 부모에게 열람을 허용하고 싶지 않은 보육기관 입장에서는 이 같은 규정이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사기관으로서는 ‘직무 유기’ 문제가 있어 더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 검사는 “수사기관이 CCTV를 열람했는데, 열람을 요청한 아동 외에 다른 아동의 피해 사실도 확인된다면 그 사건도 반드시 입건해야 한다”며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자칫 ‘직무 유기’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