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기술을 안전하고 깨끗하게 활용하는 지혜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입력 2021. 6. 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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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시 울주군 한수원 새울본부 신고리 5·6호기 건설현장

원자력발전은 위험하고, 석탄 화력은 더러워서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 사회를 심각하게 퇴화시키고 있다. 물론 단순히 위험하고 더럽기 때문에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은 비겁하고 패배주의적인 것이다. 오히려 기술을 안전하고 깨끗하게 활용하겠다는 지혜와 의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기술을 충분히 안전하고 깨끗하게 활용하기 위한 기술 혁신과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더욱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다. 실현가능한 대안을 찾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 과학적으로 안전성과 환경성이 증명된 기술에 대한 기대는 비현실적인 환상일 뿐이다.

모든 기술은 위험하고 더럽다

인간은 육체적으로 매우 연약한 동물이다. 그런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은 자연의 사물을 인간의 생존과 편익을 위해 활용하는 ‘기술’을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활용했기 때문이다. 기술은 자연이 우리에게 제공해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인간이 거칠고 위험한 야생에서의 생존을 위해 스스로의 노력으로 애써 개발한 것이다.

50만 년 전부터 사용하기 시작한 ‘불’이 인류가 최초로 개발한 기술이었다. 불은 화려한 인류 문명을 꽃피우도록 만들어준 가장 중요한 기술이기도 하다. 인류에게 맹수와 해충을 물리칠 수 있었고, 추위와 어둠을 극복할 수 있었다. 불을 이용한 음식의 조리 기술 덕분에 인간의 뇌가 본격적으로 커지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다. 인류의 생존과 편익을 위해서 사용하는 모든 기술에는 상당한 수준의 위험 요인이 포함되어 있다. 사냥과 채취도 사나운 짐승과 싸우는 과정에서의 부상이나 사망의 위험과 가파른 절벽에서의 추락 위험을 감수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불을 잘못 다루면 심각한 화재로 번져서 엄청난 재산상의 피해를 발생시키고,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인류가 개발한 기술은 환경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게 된다. 사실 인간의 생존 자체가 환경에 부담을 주는 일이다.

현대의 기술도 위험하고 더럽기는 마찬가지다. 가장 중요한 교통·운송의 수단인 자동차도 매우 위험하다. 매년 국내에서 자동차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3000명이 넘는다. 전국에서 매일 1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자동차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더욱이 자동차의 배기가스는 도시의 생활환경과 지구 환경을 망치는 주범이다.

20세기 초에 개발된 비행기는 훨씬 더 위험하다. 미국의 우정국이 1919년 항공우편을 위해 채용했던 조종사 40명 중 30명이 6년 이내에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초기 조종사들의 평균 직업 수명이 6년 수준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세계적으로 매년 300건 정도의 항공 사고가 일어났고, 20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2001년 9·11 테러에서는 알카에다가 납치한 민항기의 충돌로 2996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했다. 

탈원전의 논리에 따르면 자동차와 비행기는 오래 전에 포기했어야만 하는 위험하고 더러운 기술이다.

안전은 우리의 노력으로

원전 내 사용후핵연료 습식저장소(수조). 현재까지 누적된 사용후핵연료는 1만5000t 수준이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안전성과 환경성은 기술 자체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다. 안전한 기술과 위험한 기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깨끗한 기술과 더러운 기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기술의 위험은 우리가 감수해야 하는 사회적 노력과 비용에 따라 결정된다. 아무리 좋은 기술이라도 함부로 사용하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반대로 아무리 나쁜 기술이라도 조심스럽게 활용하면 충분히 안전하고 깨끗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기술의 안전성과 환경성을 향상시키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기술혁신’이다. 오늘날 비행기의 안전성이 놀랍게 향상된 것도 기술혁신의 결과다. 블랙박스를 비롯해서 자동운항, 레이더 관제, 이착륙 유도 등에 필요한 첨단 안전 기술이 개발되었다. 오늘날 항공사의 사고율은 승객 100만 명 중 39명으로 자동차 사고에 의한 사망률보다 훨씬 낮아졌다. 지난 10년 동안 항공기 사고는 매년 평균 133건으로 줄어들었고, 사망자도 860명으로 감소했다.

안전성과 환경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도 중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안전과 환경 관리는 대부분 정부가 관리하는 법과 제도를 통해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1947년 창립된 민간항공기구(IACO)를 정점으로 하는 민간 항공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민항기의 운항에는 복합적인 안전 매뉴얼이 강력하게 시행되고 있다. 항공기의 정비와 운항 관제는 물론이고, 승무원과 승객에 대한 매뉴얼도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엄격하다.

원전에서 중대 사고가 발생하면 대기 중 방사능 유출이 가장 먼저 영향을 준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연구원이 풍향 풍속 등에 따라 방사성 물질의 확산을 예측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 제공

법률에 따라 정해진 시설기준·허용기준·환경기준 등의 다양한 ‘기준’도 안전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다. 모든 자동차는 도로교통법에 따른 제한속도 이하로 운행해야 한다. 정부는 도로마다 제한속도를 규격에 따라 표시한 교통표지판을 설치해야 하고, 제한속도를 지키지 않고 과속으로 운행하는 자동차를 적발해서 운전자를 법률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

안전과 환경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는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의 사회적 투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교량과 경사면의 안전 점검을 위해 철제 구조물을 설치하고, 여객선에 구명정을 갖추고, 소화기를 비치해야 하고, 상시적으로 점검을 해야 한다. 상시적인 노력이 부족하면 애써 만들어놓은 안전시설이 오히려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원전과 석탄화력의 안전성과 환경성도 마찬가지다. 안전하고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투자와 노력이 필요하다. 거대 시설인 원전은 특히 더욱 적극적인 안전 대책을 요구한다. 실제로 원전 건설비 중에서 안전에 대한 투자는 30%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욱이 최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는 소형모듈형원전(SMR)이나 차세대 원전의 안전성은 크게 개선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전통적으로 사용하던 기술도 포기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의 포기는 실현가능한 대안이 있는 경우에만 가능한 것이다. 탄소중립을 위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해지고 있는 원전을 포기하는 것은 절대 감당할 수 없는 어리석을 일이다. 우리에게는 위험한 기술이 다른 나라에는 안전하기 때문에 수출하겠다는 정책도 윤리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경제·사회적인 여건 때문에 석탄화력이 아니면 전기를 사용할 수 없는 나라도 있다.

위험을 극복하고,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은 어떤 경우에도 절대 포기해서는 안 된다. 위험하고 더러운 기술을 포기하고 자연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다. 자연과의 조화로운 삶은 생각처럼 안전하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다. 1만2000년 전 농경목축을 시작하기 전에 지구상에 살고 있던 인구는 7000만 명 수준이었고, 평균 수명은 17세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무늬만의 ‘안전성·환경성’에 우리의 미래를 맡기겠다는 발상은 매우 위험한 것이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필자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대한화학회 탄소문화원 원장을 맡고 있다.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교육,에너지,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2500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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