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공공임대, 32만가구 중 85%가 정말 '짝퉁'일까

송진식 기자 입력 2021. 2. 28. 21:36 수정 2021. 3. 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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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실련 문제제기에 '와글'

[경향신문]

“공공이 직접 건립하고 소유해야”
영구·50년·국민·장기전세만 인정
경실련 “4만8000가구만 진짜”
“전세 포함해 공급 통계치 키워”
매입임대·행복주택 ‘고비용’ 지적
정부 “장기 거주 가능·저렴히 매입”
업계 “짓기 어려운 현실 반영해야”

지난해 말부터 부동산 정책기조를 완전히 수정해 ‘공급 확대’에 올인 중인 정부가 또 다른 난관에 부딪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문재인 정부가 공급해온 공공임대주택 10가구 중 8가구는 무늬만 공공인 가짜”라고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는 즉각 “사실과 다르다”며 해명에 나섰다. 공급 확대를 통해 도심에 ‘저렴한 아파트’를 공공이 직접 ‘분양’하겠다고 나선 정부 입장에서는 공공임대에 대한 비판이 내심 불편할 수밖에 없다.

공공임대 확충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자 정부 출범 당시 부동산정책의 주요 축이었고, 틈이 날 때마다 이를 치적으로 꼽아왔다. 경실련 주장대로 현 정부가 공급해온 공공임대가 질적으로 문제점을 안고 있다면 부동산시장 가격안정에 실패한 상황에서 정부가 내세울 수 있는 성과는 사실상 없는 것이 된다. 부동산 가격 ‘폭등’에 대한 ‘팩트’ 문제를 놓고 이미 한 차례 충돌한 바 있는 정부와 경실련 간 논쟁이 공공임대로 무대를 옮겨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 “20년 이상 거주 공공임대는 15%뿐”

양측 논쟁에서 우선 짚어야 할 점은 이른바 ‘진짜’ 공공임대를 구분하는 기준이 서로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현재 공공임대는 영구·국민임대부터 매입임대·행복주택·전세임대·10년임대후분양 등 다양한 유형이 존재한다. 유형별로 거주가능기간도, 입주가능자격 등도 차이가 있다. 경실련은 이 중 공공이 직접 건립해 소유한 공공임대를 진짜 공공임대로, 나머지 유형은 실질적인 공공임대 기능이 부족한 ‘가짜’ 공공임대로 봤다.

경실련은 이 같은 기준을 적용해 영구·50년·국민·장기전세 등 4개 유형만 공공임대로 인정했다. 그 결과 2019년 기준 158만4000가구인 공공임대주택 중 절반에 가까운 69만가구(43%)가 경실련 집계에서 제외됐다. 경실련은 “가짜 공공임대를 제외한 재고량은 89만6000가구로 재고율이 4.2%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경실련 주장대로라면 공공임대 재고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8%대에 크게 못 미칠뿐더러 높게는 10~15%의 재고율을 갖춘 선진국 수준을 따라가는 게 불가능해 보인다.

4개 유형을 제외한 나머지 주택들이 왜 가짜 공공임대인지에 대해서도 경실련은 설명했다. 전세임대의 경우 입주자가 선호하는 주택을 선택한 후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알려주면 LH가 집주인과 전세계약을 맺은 뒤 입주자에게 재임대하는 구조다. 전체 재고량은 26만6000가구로 경실련이 꼽은 가짜 공공임대 중 가장 많다. 경실련은 “본래 공공주택특별법이 2015년 12월 개정되기 전까진 공공주택이란 공공주택사업자가 건설 또는 매입한 주택을 의미했다”며 “법개정을 통해 ‘임차’도 공공주택에 들어가면서 (전세임대와 같은) 보증금 지원 주택도 공공임대에 들어가 숫자만 커진 것”이라고 밝혔다.

20만9000가구 규모인 매입임대·행복주택의 경우 그간 제기돼온 비판과 문제인식을 같이한다. 매입임대는 기존 다세대, 다가구 빌라 등을 재정이나 주택도시기금 지원을 받아 LH 등이 매입한 뒤 재임대하는 주택이다. 매입임대에도 세부 방식이 있지만 공공임대를 새로 짓기 어려운 도심권에서 주로 매입하다 보니 고비용 논란이 있어왔다. 경실련은 “공공주택은 짓지 않으면서 잔뜩 오른 기존 주택 등을 매입하는 것은 부패와 예산만 낭비하는 불필요한 행위”라며 “이런 매입행위는 집값을 오히려 자극하거나 상승을 부추길 수도 있다”고 밝혔다.

행복주택의 경우 일부 도심지역 주택의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너무 높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다. 경실련이 신혼부부 대상 공공임대의 임대료를 조사한 결과 SH가 공급하는 강남세곡 국민임대주택은 전용 39㎡(18평) 기준 보증금 2832만원에 월임대료 24만원인 반면, 은평구 녹번 행복주택은 같은 평형인데도 보증금 1억1228만원에 월 37만원으로 월등히 높게 나타났다.

경실련의 기준을 적용하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년간 늘어난 32만8000가구의 공공임대 중 진짜 공공임대는 4만8000가구로 전체의 14.6%에 그친다. 경실련은 “현 정부 들어 늘어난 물량의 85%는 가짜나 짝퉁 공공주택인 셈”이라며 “정부가 부풀리기식 거짓통계로 국민을 속이고 있다”고 밝혔다.

■ ‘오락가락’ 부동산정책이 문제

정부는 즉각 해명자료를 내고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행법상 공공임대에는 경실련이 제외한 행복주택·매입임대 등도 모두 포함된다”며 “지금 공급 중인 공공임대 모두 10년 이상 안정적으로 거주가 가능한 주택들”이라고 밝혔다. 공공임대가 법적으로도, 실질적 기능면에서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행복주택의 경우 시세의 60~80% 수준으로, 매입·전세임대의 경우 시세의 30~40% 수준으로 저렴하게 공급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부동산 업계에서 경실련의 지적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한 관계자는 “특히 수도권 도심 내 공공임대 수요가 높은데 현실적으로 임대를 새로 짓는 게 어렵다”며 “전세·매입임대 등은 그나마 수요자 요구에 맞게 현실적인 공급안으로 도입된 제도들이라 아예 공공임대에서 제외하는 건 과도해 보인다”고 말했다.

경실련의 지적이 공공임대를 둘러싼 다양한 그간의 문제제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정책적인 문제가 없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예컨대 문재인 정부는 공공임대 확충을 정권 초기 핵심과제로 꼽았지만 직전인 박근혜 정부는 공공임대에 큰 관심이 없었다. 뭐든지 ‘민간에 이양’을 주장했던 박근혜 정부에선 공공주택 역시 임대 후 분양방식으로 민간사업자들이 짓도록 길을 열어줬고, 이에 기댄 결과 공공주택 확충 등을 위해 필요한 공공택지 비축에도 적극적이지 않았다. 경실련 지적대로 현 정부의 공공임대 확충이 직접 건립·매입을 통한 보유보다는 말 그대로 ‘임대’ 쪽에 기울어있는 원인을 여기에서 찾는 시각도 있다.

한 주택관련기관 관계자는 “현 정부의 경우 주택 공급의 필요성에 대한 초기 인식이 부족했고, 공공택지 비축이 적다는 사실에도 큰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다”며 “뒤늦게 2·4대책 등으로 공급 확대에 나서고 있지만 실효성 측면에서 본다면 많이 늦은 감이 있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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