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혜련의 휴먼임팩트] 인간의 모방본능이 만든 '사회적 눈사태'

입력 2021. 1. 15. 00:27 수정 2021. 1. 15. 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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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흉내 내는 모방본능
부동산·주식 빚투 광풍 불러
국민 마음 읽지 못한 정책 실패
젊은이들 평생 빚쟁이 만들 수도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우리가 흔히 쓰는 속담에 ‘친구 따라 강남 간다’라는 표현이 있다. 3월에 왔던 제비가 9월이면 중국 창장(長江) 아래 강남으로 다시 날아가는 것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보통의 철새들이 다함께 무리지어 출발하는 것과 달리 제비는 특이하게 몇 마리씩 따로 출발했는데, 옛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제비가 친구 따라 길을 나서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사람의 일상에서도 크고 작은 선택이나 결정을 할 때 남을 따라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식당가 골목에서 어떤 식당에 들어갈지, 급할 때 잠깐 불법주차를 해도 되는지 판단할 때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했는지 살핀다. 썰렁한 식당보다는 손님들로 북적이는 식당에 들어가고, 불법지역이지만 주차된 다른 차들을 보면 왠지 안심이 되어 따라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들보다 뛰어난 것 중 하나는 세상에서 가장 흉내를 잘 내는 것인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오래전에 한 말이다. 타인을 흉내 내는 모방본능은 식당 선택이나 쇼핑과 같은 구매 행위뿐 아니라 아이 낳기와 같은 출산율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지난해부터 우리 사회에 ‘따라하기’ 광풍이 불고 있다. 2030세대를 중심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빚을 내어 부동산과 주식 매입에 몰입하는 이른바 ‘패닉 바잉’ 혹은 ‘포모(FOMO) 증후군’의 확산이다. 사회의 큰 흐름에서 자신만 소외되거나 낙오될 것이 두려워 필사적으로 남들을 따라 동조하는 것이지만 작은 충격에도 참담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에 필자는 이를 ‘사회적 눈사태’라 부르고 싶다.

휴먼임팩트 1/15

전통적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합리적 행위자다. 사람들은 직장을 바꾸거나 결혼을 하거나 심지어 범죄를 저지를 때조차도 그 선택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믿는다. 그렇다면 정말 사람들은 철저하게 합리적이며, 계산해서 모든 결정을 내리고 또한 다수의 선택은 항상 합리적인 것일까?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이며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인간의 합리성이 과대포장되었음을 지적했다. 인간의 마음에는 두 가지 시스템, 즉 합리성과 본성이 작동하는데 의식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주의를 계속 집중해야 하는 합리적 마음은 아주 일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즉각적이고 제어하기 힘든 본능적인 마음이 인간에게 더 크게 자리 잡고 있다.

경제학자들이 현실에서는 돈을 잘 벌지 못한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나타나는 인간의 행동이 경제학자들이 가정한 만큼 합리적이지 않아 예측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집값이 오를 것 같은 새로운 상황이 벌어지면 시간을 갖고 살피는 합리적 마음보다는 즉각적 반응을 담당하는 본능이 먼저 작동한다. 본능의 문턱값(역치)이 가장 낮은 몇몇 사람들이 서둘러 행동을 개시하고 이들보다 조금은 더 신중한 사람들이 참지 못하고 따라하는 사회적 패턴이 눈덩이같이 불어나 결국 집값 폭등으로 이어진다.

청년층이 ‘동학개미’의 주역이 된 것은 내 집 마련 욕구와 깊은 연관이 있다. 부동산 정책 실패로 내 집 마련 꿈이 어려워지자 청년세대는 주식시장을 거의 유일한 투자처로 삼고 있다. 2030세대에 물으니 돈을 벌려는 최우선 목표가 주택 매입을 위한 재원 마련이라고 답했다. 그래서 이들을 새로운 ‘투자인류의 출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는 ‘여기 들어오는 자여 모든 희망을 버려라’라는 구절이 있으니 희망이 없는 곳이 바로 지옥인 셈이다. 젊은이들이 희망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사고 빚을 내 주식에 투자하는 사회 분위기의 확산 속도가 무섭다. 부동산과 주식, 암호화폐에 이르기까지 평소 같으면 망설였을 초고위험 종목에 그것도 적금을 깨거나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뛰어든다. 이를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의 문턱도 덩달아 낮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가계부채는 눈덩이같이 불어나 이제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섰다. 지금의 과열된 자산시장은 미세한 충격에도 크게 요동쳐 자칫 젊은이들을 평생 빚쟁이로 만들 수 있다.

지난 3년간 정부가 각종 대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은 집값, 전셋값 폭등으로 반응했다. 어떤 변수를 보지 못해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해명이 필요하다. 재테크가 아닌 내 집 마련을 간절히 원한 소박한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데서 시작된 과오를 고백해야 할 것이다.

강혜련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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