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한국 늑대, 강아지로 만드는 이 남자.."눈빛만 봐도 통하죠"

천권필 2021. 4. 1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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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띵]'늑대 아빠' 맹수 사육사의 하루
대전 오월드에서 늑대가 사육사 박중상 씨의 등에 올라타면서 친근함을 표시하고 있다. 왕준열PD

매서운 눈빛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는 늑대들. 하지만 이 남자가 나타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 온순한 강아지로 변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아빠처럼 늑대들을 돌봐준 사육사이기 때문인데요. 맹수 사육사 박중상 씨의 하루를 따라가 봤습니다.

#자세한 스토리는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폭풍 성장한 늑대 형제들…서열도 정해져

대전 오월드에서 늑대가 고기를 먹고 있다. 왕준열PD

지난달 11일 대전에 있는 공영동물원 오월드. 사육사 박중상 씨가 닭고기와 소고기를 한가득 들고 오는데요. 오늘 맹수들에게 줄 먹이입니다. 그는 혹시라도 동물들이 급하게 먹다가 목에 걸릴까 봐 고기를 잘게 잘라줍니다.

박 사육사가 찾아간 곳은 지난해 4월에 이곳에서 태어난 여섯마리 늑대 형제들. 아직 첫 돌도 되지 않았는데도 성인 늑대 못지않게 체구도 크고 이빨도 날카로운데요. 그는 “늑대가 갯과이기 때문에 성장 속도가 빠르다”며 “지금은 80% 정도 자랐고, 1년이 조금 지나면 거의 다 자란다”고 설명했습니다.

같은 어미에게서 태어난 늑대들인데도 벌써 서열이 확실하게 정해졌다고 합니다.

“자기들끼리 성장하면서 장난치는 것처럼 하다가 조금씩 흥분을 하면 약간의 투쟁이 생겨요. 힘센 늑대가 위에서 누르고, 힘 약한 늑대는 강아지 발라당 까지듯이 그런 과정을 거쳐서 서열이 정해지죠.” - 박중상 사육사

대전 오월드에서 사육사 박중상씨가 늑대와 어울리는 모습. 왕준열PD

먹이를 들고 아무렇지 않게 늑대 소굴로 들어가는 박 사육사. 으르렁거리며 싸우던 늑대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육사에게 다가가 놀아달라며 반가움을 표시하는데요.

Q : 늑대들을 만날 때 두려움은 없나요?

A : “덩치만 컸지, 아직은 아기 때랑 습성이 거의 똑같아요. 중요한 것은 짝짓기할 시기가 와야 그만큼 성숙이 되고 본능이 자라나기 시작하는데 아직은 그 단계가 아니에요. 지금은 그냥 덩치만 컸지 새끼들이라고 보는 것이 맞아요.”

Q : 사육사에게 힘의 우위를 시험하는 경우는 없나요?

A : “아직은 없어요. 늑대들한테 저는 부모기 때문에 제가 조금만 큰 동작을 해도 바닥으로 몸을 깔죠.”


어렵게 복원한 한국 늑대, 알고 보면소통왕

대전 오월드에서 지난해 4월에 태어난 한국늑대 새끼들. 뉴스1

이 늑대들은 야생에선 오래전에 멸종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 늑대입니다. 한국늑대(Canis lupus coreanus)는 과거 한국에 살았던 늑대를 통칭하는 용어인데요. 일제 강점기에 해수구제(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을 제거하는 일)를 명분으로 내세운 대대적인 포획 작전에 늑대 1400여 마리가 희생됐다고 해요. 1960년대에는 쥐잡기 운동에 사용된 쥐약의 2차 독성으로 인해 멸종의 길을 걸었습니다. 1980년대 이후 야생에서는 더는 늑대의 흔적을 찾기 어려워졌습니다.

그러던 중 2008년 대전 오월드가 ‘한국늑대 복원’을 목표로 러시아에서 유전자형이 거의 같은 늑대 일곱마리를 데려왔고, 10년이 넘는 노력 끝에 비로소 3세대까지 번식에 성공했죠. 특히 지난해 태어난 여섯마리 늑대는 처음으로 국내에서 태어난 늑대가 낳은 한국늑대들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늑대들을 직접 키워온 박 사육사는 이제 눈빛만 봐도 늑대들의 감정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Q : 늑대가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A : “아무래도 갯과다 보니 애정표현이나 감정표현이 다른 동물들보다는 확실히 눈에 잘 띕니다. 늑대들도 눈빛이 다 있는데요. 눈빛을 통해 늑대가 많이 커서 도전을 하려고 하는구나 같은 것들을 알 수 있죠.”

Q : 늑대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한다고 하는데 정말인가요?

A : “꼬리를 늘어뜨리거나 뒤로 피거나 중간만 구부러뜨리거나 이런 식으로 의사 표현을 할 수 있고요. 귀나 어깨를 세운다거나 움츠린다거나 이런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서 소통하고 있어요.”
어렵게 태어난 생명인 만큼 지금처럼 건강하게만 자라줬으면 한다는 사육사 박 씨. 그의 바람대로 여섯마리 늑대들은 늠름한 어른 늑대로 성장해 한국 늑대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요?

천권필 기자·곽민재 인턴기자 feeling@joongang.co.kr
영상=왕준열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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