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별 철거 내용 없는데 '적합'..건물 해체계획서 부실했다

최종권.진창일.이가람 2021. 6. 12.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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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5층 빌딩 붕괴 참사
최상층 아닌 중간부터 철거도 문제
주민들 "4월 초 민원, 구청서 묵살"
경찰, 공사 관계자 7명 입건해 수사
11일 오전 광주광역시 동구청 주차장에 마련된 학동4구역 재개발 붕괴사고 피해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희생자를 추모하며 헌화하고 있다. 사고를 수사 중인 경찰은 철거업체 관계자 등 7명을 업무상 과실 치사상 등의 혐의를 적용해 입건하고 출국금지 조치했다. 장정필 객원기자
광주광역시 동구 참사와 관련 무너진 건물의 해체계획서가 하자투성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안전한 철거를 담보하기 위해 층별 철거 계획과 장비 투입·동선, 타격 및 철거 지점 등을 명시해야 하지만 해당 계획서엔 중요 요소가 빠져있었다. 부실한 계획서 탓에 현장 작업자가 임의적 판단으로 철거를 진행했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11일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이 확보한 ‘학동 4구역 철거 허가 건물 철거공사 계획’ 발췌본에 따르면 이번에 붕괴된 건물은 지난달 10일 A 건축사로부터 안전성과 철거 계획이 모두 ‘적합’한 것으로 기재됐다. 건물 도면과 벽면 강도, 외벽을 어떤 순서로 철거할 것인지도 기재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층별 해체 계획은 부실했다. 국토교통부의 건축물 해체계획서 지침에는 해체 순서별 안전성을 포함, 철거 진행 과정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최명기 대한민국 산업현장 교수는 “이번에 붕괴된 건물은 해체계획서부터가 잘못됐다”며 “굴착기가 적재물에 올라 상층부(3층~5층)를 철거하고, 나머지 하층부(1층~2층)를 해체한다는 일반적인 공법에 대한 설명만 있을 뿐 층별 철거계획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광주시 동구청 확인 결과 해당 업체는 철거 순서를 어긴 것으로 드러났다. 계획서상 철거 업체는 건물 5층 최상층부터 철거를 시작해 순차적으로 하향식 해체작업을 해야 했다. 하지만 붕괴 건물 인근 주민들의 증언과 현장 사진 등을 살펴보면 상층부가 아닌 건물 중간부터 철거작업이 진행된 정황이 확인되고 있다. 외벽 철거 순서도 계획서와 달랐다. 애초 건물을 정면에서 바라봤을 때 좌측→후면→정면→우측 순서로 철거해야 했지만 철거 업체는 후면 벽부터 철거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전면부가 무너지는 결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한편 사고 사흘째인 이날 광주 동구청 앞 광장에 마련된 ‘학동4구역 재개발 붕괴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에는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시민들은 희생자와 직접적인 인연이 없어도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무거운 표정으로 분향소를 찾았다. 동구청 인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일한다는 김모(56)씨는 “광주시민이라면 당연히 와야 하는 자리”라며 “공사 기간을 단축하기 위해, 공사비를 아끼기 위해 사람 목숨이 경시되는 일은 더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분향소를 찾은 일부 시민들은 사고가 발생한 원인으로 정부와 지자체의 미흡한 대처를 거론하며 분통을 터트렸다. 아내와 함께 분향소를 찾은 황모(83)씨는 “위험한 철거 현장에 대해 4월 초에 주민들이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고 동구청에도 민원을 접수했음에도 묵살됐다”며 “안전조치가 필요하다는 건의가 현장에서 즉각 반영됐다면 꿈도 펴지 못한 고등학생의 비극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건물 붕괴 원인을 규명하기 위한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광주경찰청 수사본부는 이날 공사 관계자 등 14명을 조사한 결과 일부 혐의가 확인된 공사관계자 등 7명을 과실치사상 혐의로 입건하고 출국 금지했다. 경찰 관계자는 “감식결과와 압수자료 분석 등을 통해 철거계획서에 따라 철거가 됐는지, 공사관계자들이 안전 관련 규정을 준수했는지 따져보겠다”고 했다.

광주=최종권·진창일·이가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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