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코로나 장기화로 인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재개봉의 행렬 속에서 최근 돋보이는 작품 하나가 있다. 왕자웨이의 ‘화양연화’(2000). 이 영화는 왕자웨이가 ‘시간의 시인’이었다는 걸 새삼 떠올리게 한다. 1960년대 홍콩을 중심으로 싱가포르와 캄보디아까지 아우르는 이 영화는 제목 그대로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간’이다. 그런 이유일까? 이 영화엔 시계의 이미지가 매우 과장된 모습으로 상징처럼 등장한다. 특히 수리첸(장만위)의 사무실에 걸려 있는 커다란 시계는, 화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마치 “이 영화의 주제는 시간”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왕자웨이가 시간에 집착했던 건 처음이 아니다. 〈아비정전〉(1990)에서 아비(장궈룽)는 수리첸(장만위)에게 1분 동안 함께 시계를 보자고 한다. “1960년 4월 16일 오후 3시. 우린 1분 동안 함께 했어. 난 잊지 않을 거야. 우리 둘만의 소중했던 1분을.” 〈중경삼림〉(1995)에서 경찰 223(진청우)는 “57시간 후에 나는 그녀를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한다. 여기서 그들은 모두 어떤 ‘순간’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이후 기억하게 될 ‘기억’의 대상이며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이기도 하다. 왕자웨이 감독은 영화를 통해 끊임없이 시간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그렇게 시간에 저항한다. 그런 점에서 ‘화양연화’는 과거를 가장 아련하면서도 마술처럼 떠올리는 영화인 셈이다.
김형석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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