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헹이 죽고 농장주는 과태료 30만원을 냈다

한겨레21 2021. 2. 3.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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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출신 속헹이 한파 속 비닐하우스에서 숨졌으나
노동부는 중대재해 조사 없이 사용자에 '직장 건강검진 미실시' 책임만 물어
경기도 포천에 있는 한 채소농장의 비닐하우스 숙소. 상당수 농업 이주노동자들은 비닐하우스 안에 지은 조립식 패널 숙소에서 지낸다. 류우종 기자

캄보디아 출신 여성노동자 누온 속헹(Nuon Sokkheng). 스물여섯 나이인 2016년 3월부터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먼 나라 한국에 들어와 농촌에서 일한 그녀. 하루 10시간 고된 노동은 농업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대개가 그러하듯이, 고향에 있는 부모님과 동생들을 부양하기 위해 감내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2018년 한 차례 사업장을 바꿔 경기도 포천의 한 비닐하우스에서 살며 채소를 재배했다. 일은 힘들었지만 캄보디아 동료 네 명과 함께 애환을 나누며 견딜 수 있었다. 고용허가제라 불리는 외국인력제도로 4년10개월 일하고 고용주가 재고용을 해주면 본국에 갔다가 다시 와서 4년10개월을 더 일할 수 있기에, 2021년 1월 초 출국할 비행기 티켓까지 사놓았다.

“괜찮다”며 마지막 동료를 떠나보낸 뒤

캄보디아 노동자들의 사랑방과 상담 창구 구실을 하는 경기도 안산에 있는 단체 ‘지구인의 정류장’ 활동가 김이찬이 누군가 사망했다는 소문이 돈다고 2020년 12월20일 밤 페이스북에 올렸다. 전화로 물어보니 정확히 확인된 건 아니고 자신도 더 알아봐야 한다고 했다. 다음날, 한국에서 일하고 캄보디아에 돌아간 한 노동자가 김이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숨진 사람이 누군지 안다고.

속헹과 같이 일했던 동료와도 연락이 닿아 12월23일 새벽까지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정황을 파악한 김이찬은, 평소 포천에서 비닐하우스 농장들을 많이 방문하는 포천이주노동자센터 김달성 대표(평안교회 목사)에게 관련 내용을 전달해 현장에 가달라고 부탁했다. 12월23일 김 대표는 연락 온 언론 기자들과 함께 그곳을 방문했고 이후 앞다퉈 보도가 나왔다. ‘비닐하우스에서 한파로 이주노동자 숨지다’라는 내용의 보도들은 한결같이 열악한 비닐하우스 숙소 사정과 한파경보가 내린 영하 18도의 추위 속에 이주노동자가 하룻밤 사이에 사망한 기막힌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냈다.

속헹의 동료가 ‘지구인의 정류장’에 전한 정황은 이렇다. 12월18일부터 20일까지 일을 쉬기로 했는데 너무 추워서 5명 중 3명은 18일부터 다른 곳에 가서 잤고, 19일 토요일 저녁에는 다른 한 명도 친구 집으로 갔다. 비닐하우스 내 조립식 패널 가건물은 바닥만 전기필름으로 난방을 하는데 추위 속에 누전차단기가 계속 내려갔다. 금요일 밤에는 속헹과 동료 한 명이 밤새 자지도 못하고 차단기를 번갈아 올려야 했다.

“너무 추워요. 전기가 없어요. 끊어져버렸어요. 나는 나가요. 당신도 내 친구 집에 가요. 여기 있지 말고. 전기가 없으니까… 너무 추우니까 있을 수가 없어요.” 토요일 저녁, 동료가 속헹에게 자신의 친구 집으로 같이 가기를 권했지만, 속헹은 자기는 괜찮다며 숙소에 남았다. 다음날 오후 4시께, 속헹은 숙소로 돌아온 동료에 의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매달 보험료와 숙소비도 냈는데

경찰은 2020년 12월24일 1차 부검 결과 소견으로, 간경화로 인한 식도정맥류 파열이라고 발표했다. 고용노동부 의정부지청은 이를 근거로 중대재해 조사를 생략했다. 수사 권한을 가진 누구도 왜 서른 살 젊은 노동자가 살을 에는 추위에 비닐하우스 안에서 하룻밤 새 목숨을 잃었는지 종합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직업환경의학 전문의들은 열악한 노동환경과 주거 조건 속에 건강관리가 안 되다가 한파로 혈관이 급속히 수축해 파열됐을 거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정부, 지방자치단체, 사업주가 이 죽음의 공범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용허가제도의 문제를 보자. 5년 가까이 일하면서 속헹은 직장 건강검진을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심지어 2019년 7월 이전에는 건강보험도 없었다. 사업자등록이 없는 5명 미만 농어촌 사업장에 외국인력을 고용할 수 있게 정부가 허가한 것부터가 문제였다. 그런 곳에선 직장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없었다. 2019년 7월부터 외국인 지역건강보험 의무가입이 실시돼 속헹도 건강보험 가입자가 되었지만, 하루 10시간 일하고 한 달에 하루이틀 쉬는 노동환경에선 병원에 갈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지역건강보험 평균 보험료를 내야 해서 2021년에는 월 13만원 넘게 납부한다. 뒤늦게 노동부는 직장건강검진 미실시로 사업주에게 과태료 30만원을 부과했다.

비닐하우스 내 조립식 패널 숙소는 추위도 더위도 폭우도 화재도 막아주지 못한다. 그런데도 노동부의 숙식비 징수 지침으로 인해, 사업주들은 이주노동자의 월급에서 수십만원을 떼간다. 초과노동 수당을 안 줘도 되는 농촌에서 노동시간 대비 최저임금도 못 받는 노동자가 숙식비에 건강보험료에 배보다 배꼽이 클 만큼 떼인다. 또한 사업장을 노동자 마음대로 바꿀 수도 없다.

원래 농지법, 건축법상 농지 위에 주거용 건물을 지을 수 없다. 돈을 아끼고 아무 때나 일을 시키려는 사업주들은 컨테이너나 가건물을 들판에 설치하고 적발되지 않으려 그 위에 비닐하우스로 위장해왔다. 이를 단속해야 할 지자체는 사실상 묵인했다. 노동부는 이런 장소에서도 숙소비를 받을 수 있게 제도를 운용해오다 이제야 미흡한 대책을 내놓았다.

이주노동자들이 편히 누울 곳은 어디에

노동부 조사를 봐도 농어업 분야 노동자 70%가 가설숙소에서 생활하고 있다. 비닐하우스 안이든 밖이든 이런 곳은 수년간 노동하며 살아갈 기숙사라 볼 수 없다. 특히 여성 이주노동자는 안전에 더 취약하다. 그래서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 불허, 농어업 주거시설 지도점검 강화, 농지 불법 전용 단속, 주거시설 기준표 개선, 사업주 노동·인권 교육 의무화 등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현실에서 개선으로 이어질지 물음표가 나온다. 이주노동자가 인간적인 주거환경에서 살아갈 권리 보장을 중심에 놓고 대책을 지속해서 마련해야 할 것이다.

우리 밥상에 오르는 여러 채소, 과일, 고기, 어류, 해산물 등은 이주노동자가 없으면 생산할 수 없고 그 의존도는 더 높아지는 것이 오늘 여기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농어업뿐만 아니라 제조업 공장, 건설현장 등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대부분 사업장의 상황이 별로 다르지 않다. 오랫동안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니다’라고 외쳐온 목소리가 속헹 사건을 계기로 더 크게 울려 다시 이주노동자 주거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지금, 과연 이 정부와 사회는 그만큼 화답하는 것일까. 고 속헹의 명복을 빈다.

정영섭 이주노동자평등연대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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