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직의 이코노믹스] 세계에서 유일한 전세, 산업화 촉진의 비밀병기였다

2021. 4. 13.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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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와 금융의 절묘한 교차 거래
내 집 마련 위한 사다리 역할하고
도시에 집 공급, 주거비 부담 줄여
늘어난 저축으로 경제성장 촉진


대한민국의 놀라운 발명품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금수저 물고 태어난 일부 국민을 제외하고는 평생 전셋집 한 번 살아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지금도 전체 임대 가구의 90%인 700만 가구가 보증금을 내고 전세에 살거나 보증금에 월세까지 내는 준전세에 살고 있다. 물론 자기 집이 있으면서 전세 사는 ‘부자 세입자’도 있지만, 평생 전세 사는 설움 속에 전셋집과 준전셋집 이사를 전전하다가 생을 마치는 ‘서민 세입자’도 많다.

그런데 최근 집값이 급등하면서, 집값 급등의 이유 중 하나로 우리 서민과 중산층의 애환이 담긴 전세도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갭 투자를 이용한 투기를 집값 과열의 주범으로 보는 사람들은 심지어 갭투자를 가능하게 한 전세 제도를 소멸시키는 것이 집값 상승을 막기 위한 방책이라고 착각까지 할 수 있다.

전세란 무엇인가? 전세는 사실 우리 민족의 놀라운 창의적 발명품이다. 필자가 국제통화기금(IMF)에 근무할 때 세계 각국에서 온 동료들에게 전세에 관해 이야기해주고, 너희 나라도 이런 제도가 있느냐고 물어보면 하나같이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였다.

한국에서만 발달한 제도인 만큼 외국 경제학자들에게 전세 제도를 설명해주면 그들은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1억원을 주고 전셋집에 들어가 살다가 나올 때 다시 1억원을 받는다고 하면 ‘공짜네!’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집을 사용했는데 공짜라면 말이 안 된다며 의아해한다.

외국 경제학자들도 금방 이해 못 하는 이 제도는 사실 1960년대 이후 우리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한 비밀 병기와 같다. 도대체 이 전세의 비밀스러운 본질이 무엇이기에 경제성장을 견인할 수 있었던 것일까?

금융으로 풀어낸 전세제도의 비밀

김세직의 이코노믹스 그래픽=신용호

이를 밝히기 위해 필자가 국제결제은행(BIS)의 신현송 박사와 쓴 논문에 따르면, 전세는 단순한 주택임대가 아니라 주택임대와 금융의 교묘한 교차 거래다. 집주인이 집을 빌려주는 반대급부로 세입자가 전세금을 집주인에게 빌려주는 계약이다. 한쪽은 집을 빌려주는 대신 돈을 빌려 받고, 다른 한쪽은 돈을 빌려주는 대신 집을 빌리는 것이다.

주택임대와 금융이 이렇게 교차 거래되면 경제에 효율성이 엄청나게 증가한다. 필자가 화폐금융론 수업에서 늘 강조하지만, 돈을 빌린 사람은 빌린 돈을 떼먹는 게 최적화된 행동이다. 그런데 빌린 사람이 돈 떼먹을 걸 알면 누구도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그 결과 돈을 서로 빌리고 빌려주면 모두의 효용이 증가하는데도, 금융거래가 발생하지 않는 딜레마 상황에 부닥칠 수 있다.

그래서 돈 떼먹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많은 금융제도가 생겨났는데 대표적인 것이 은행이다. 돈을 떼먹지 못하게 돈 빌려준 사람이 온종일 쫓아다니며 돈을 빌려 간 사람을 감시할 수도 없다. 그래서 모니터링을 대신해주는 기관이 등장했으니 그것이 은행이다. 은행도 모니터링을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비용 회수를 위해서는 대출금리를 예금금리보다 높게 부과할 수밖에 없다. 은행의 모니터링 비용이 실제로 매우 많이 들어서, 그에 따른 예대금리차가 개발도상국의 경우 평균 8%포인트나 된다.

그런데 전세제도는 이렇게 비용이 많이 드는 은행을 끼지 않고도 마술처럼 금융거래의 딜레마를 해결해버린다. 전세의 경우 돈을 빌려 간 집 주인이 돈을 갚지 않으면, 세입자는 그냥 그 집을 깔고 앉아서 살아버리면 된다. 반대로 만기가 됐는데도 세입자가 안 나가면 집주인은 전세금을 그냥 가지면 된다. 이렇게 보증 장치가 교차하고 있기 때문에 돈 떼먹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임대가구 중 전세 비중

더해서, 집주인은 집을 빌려줬으니 집세를 받아야 한다. 세입자는 돈을 빌려줬으니 이자를 받아야 한다. 월세제도 아래에서 집세를 안 내는 세입자에게 집세를 받기가 쉽지 않다. 누군가에게 큰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제때 꼬박꼬박 받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전세 제도는 집세와 이자가 자동으로 서로 상계되도록 만들어 놓음으로써 실제로 현금이 오갈 필요도 없게 만들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집세 못 받을 위험과 이자 못 받을 위험이 동시에 사라진다. 아무 모니터링을 안 해도 세입자는 매달 자기가 내야 할 집세만큼의 이자를 자동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똑같이 집주인은 매달 자기가 내야 할 이자만큼의 집세를 자동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모니터링 비용을 전혀 들이지 않고도 이자와 집세를 받는 것이다. 결국 전세는 모니터링 비용을 0으로 만들어주는 기가 막힌 제도가 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전세를 통해 돈을 빌린 집주인은 은행을 통해 빌리는 것보다 훨씬 싸게 돈을 빌리고, 빌려주는 세입자는 은행에 예금하는 것보다 훨씬 비싸게 돈을 빌려주는 셈이 된다. 따라서 빌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 낮은 이자율로 빌리기에 투자를 더 늘리게 되고, 빌려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더 높은 이자율로 빌려주기에 저축을 더 늘리게 된다.

금융 효율성 증진 효과를 통해, 전세제도는 자본 축적을 촉진함으로써 경제성장률을 상당 기간 증가시킬 수 있게 해주었다. 더해서 전세는 많은 서민과 중산층의 주거비용을 줄여주어 이들이 보다 많이 저축하여 내 집 마련을 위한 사다리로 이용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경제발전 초기에는 농촌 인구가 생산성이 높은 도시로의 대량 이주가 필요한데, 전세제도는 도시 주택 문제의 해결에도 커다란 도움을 줌으로써 원활한 산업화에 크게 기여했다.

전세, 집 없는 사람의 복지 수단

이렇게 놀라운 장점을 갖춘 전세가 최근 집값 급등과 투기의 원인으로 오해를 받고 있다. 전세제도 자체는 부동산 투기의 원인이 전혀 될 수가 없다. 투기는 저금리 정책 등으로 돈이 많이 풀리거나 주택공급이 부족할 때 사람들이 집값 상승을 예상하게 되고, 그 결과 시세 차익을 노리고 집을 사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동산 투기는 전세제도가 존재하느냐 여부와 관계가 없다. 만약 갭투자가 문제라고 생각하면 전세제도를 건드릴 것이 아니라, 갭투자를 통한 투기를 유발한 근본적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정도이다.

지금도 전세는 자기 집 없는 서민들과 중산층의 주거비 부담을 줄여주는 복지 수단이다. 전세를 통해 주거비용이 줄어든 만큼 늘어난 저축이 생산적인 경로로 투하되기에 성장을 촉진하는 성장 수단이기도 하다. 혹시라도 전세에 대한 몰이해로 인해 전세제도라는 귀중한 국가적 자산을 인위적으로 손상하는 교각살우의 정책은 없어야 할 것이다.

■ 전세제도 생명력 끈질겨

「 우리나라의 전세는 두 가지 형태가 있다. 하나는 순수 전세이고, 다른 하나는 준전세이다. 순수전세는 세입자가 입주 시 보증금만 내고 월세를 전혀 내지 않는 형태다. 준전세는 입주 시 상당한 액수의 보증금을 내고 이에 더해 월세도 낸다.

우리나라 고유의 준전세는 미국 등에서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월세제도와 전혀 달라, 몇 년 치 월세에 해당하는 큰돈을 집주인에게 빌려준다. 이러한 금융적 성격 때문에 김세직·신현송 (2011) 논문에서는 ‘quasi-jeonse’라고 표현하고, 언론 등에는 처음에 ‘반전세’라고 번역했다. 김세직·고제헌 (2018) 논문의 최근 계산에 따르면, 이러한 형태의 전세는 세입자가 내는 보증금이 순수전세일 때 내는 보증금의 30~40%에 그쳤다. 따라서 필자가 지금은 반전세보다는 준전세로 표현한다.

순수전세와 준전세를 더한 이러한 ‘광의의 전세’가 곧 사라질 것인가? 2000년대 이후 순수전세의 비중이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자, 일부 전문가들은 전세가 곧 소멸할 것이라는 성급한 진단까지 내놓았다.

그러나 전세가 가진 커다란 순기능들을 고려해 보면 광의의 전세가 쉽게 소멸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2010년에서 2015년 사이에 순수전세가 줄어들었지만 그만큼 준전세가 증가해, 세입가구 중 전세와 준전세를 합친 광의의 전세가구 비율은 1995년 이래 20년간 유지되던 90%에서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 비율은 2015년 이후 2019년까지도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이 기간에 순수전세 비율이 오히려 준전세 비율이 감소한 만큼 증가했다. 전세제도가 얼마나 생명력이 강한지를 나타내준다.

물론 향후 금융 발달, 전세금의 투자처 부재, 경제성장 둔화 등에 따라 전세의 장점이 줄어들면 광의의 전세 비중이 서서히 줄어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일시적 정책 충격 등에 의해 1~2년 내에 광의의 전세가 급격히 소멸할 가능성은 아직은 매우 낮아 보인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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