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 없는 오포족..중국 MZ세대도 드러누웠다
세 자녀 허용정책 발표 뒤 거세져
"노인 넷, 아이 셋 부양하란 말이냐"
공산당 불복종 운동 징후 보이자
중국 당국 '당평' 검색 금지어 지정
지난달 31일 중국 최고 권력기구인 중앙정치국이 셋째 출산 허용 정책을 발표한 뒤 젊은이들 사이에 당평(躺平, 중국어 발음은 탕핑)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평평하게 드러누워 살자’는 뜻의 당평은 올해 중국 최고의 유행어였는데, 중국 정부가 청년들의 힘든 삶은 외면한 채 애를 많이 낳으라고 주문하자 청년들의 소극적 저항운동이 거세진 것이다.
젊은 네티즌은 “한 자녀는 정말 행복하네, 위로 노인 네 명, 아래로는 아이 세 명을 부양할 수 있으니” “먼저 의료·취업·주택·교육·양로 문제부터 해결하고 셋째를 말하면 좋겠다” “먼저 기본적인 육아 복지, 출산 여성이 직장에서 당하는 불공정 문제부터 해결한 뒤 아이를 낳으라고 권하라”며 성토했다.
세 자녀 정책 발표 당일 관영 신화사는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 셋째 허용 정책에 대한 여론을 묻는 사지선다형 설문 조사를 올렸다. 순식간에 응답자 1만4000여 명의 93%에 해당하는 1만3000여 명이 “전혀 생각 없다”고 대답했다. “지체할 수 없다” “이미 날을 잡았다” “망설이는 중”이라는 나머지 응답자는 모두 합쳐 1200여 명에 불과했다. 신화사는 곧 설문 조사를 취소했다.
1989년 6월 4일 천안문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32주년과 7월 1일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앞두고 불복종 운동의 징후가 보이자 중국 당국은 긴급 대응에 나섰다. 우선 SNS 검색어인 해시태그 #당평#을 금지어로 지정했다. 당평 토론방은 폐쇄했다.
관영 환구시보는 지난 2일 “외국 청년이 말하는 ‘저욕망’과 분투”라는 전면 기획기사를 실었다. 해외 특파원을 동원해 영국의 니트(NEET,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족, 일본의 저욕망 사회 현상, 독일의 집단 불안 의식인 ‘저먼 앙스트’ 등을 소개했다. 중국의 당평 운동을 세계 보편적 현상으로 물타기 하려는 시도라는 해석이 나왔다.
중국판 네이버 지식인 격인 지호논단(知乎論壇)은 당평 현상을 “집 사지 말고, 차 사지 말고, 결혼하지 말고, 아이 낳지 않고, 소비하지 않는다. 최저 생존 기준만 유지한다, 타인의 돈벌이를 위한 기계나 착취당하는 노예가 되기를 거부한다”고 정의한다. 한국의 ‘5포 세대(취업·결혼·연애·출산·내집 포기)’ 현상을 방불케 하는 중국식 5포 세대다. 치솟는 집값과 교육 과열, 취업난에 시달리는 MZ세대(90년대생 밀레니얼 세대와 2000년대생 Z세대)의 애환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외신은 당평 현상을 강압적 공산당 일당통치에 맞서는 중국 MZ세대 특유의 소극적 저항으로 주목한다. “드러누운 부추는 베기 어렵다”는 밈(meme·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사진)은 당평 운동의 상징이 됐다.
중국에서 부추는 주식시장의 개미 투자자를 비유한다. 작전주에 개미 투자자가 돈을 넣으면 기관이 부추 자르듯 수익을 다 가져간다는 뜻이다. 여기에 공산당 상징인 망치와 낫이 부추를 자르는 도구라는 데 착안해 저항의 단어가 됐다.
하지만 부추는 베어도 베어도 금방 또 자라나는, 생명력이 끈질긴 식물이다. 이에 당평주의 젊은이들은 온라인 공간에서 “무릎 꿇기 싫고, 일어설 수 없으니 드러누울 뿐”이라는 말을 공유하고 있다.
문화대혁명 시기(66~76년) 홍위병 구호였던 조반유리(造反有理, 저항에는 정당한 도리가 있다)를 빗대 당평유리(躺平有理, 당평에는 정당한 도리가 있다)라는 말도 나왔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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