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 최초 문화도시 지정된 완주의 '주민 활용법'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2021. 4. 27.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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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복합문화시설 들어선 전북 완주군
'누구나' 참여 가능케 한 '주민 중심 도시재생'

(시사저널=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삼례문화예술촌 내의 창고 건물을 리모델링한 미술관 전경 ⓒ김지나

전북 완주군은 올해 지정된 2차 문화도시 중 하나다. 군(郡) 단위로는 처음이었다. 호남 지역에서도 최초라 한다. 완주군은 인근의 다른 전북지역 도시들에 비해 대단한 유명세가 있지는 않다. 그런 완주군이 문화체육관광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문화도시 선정사업의 혜택을 먼저 받게 된 연유가 궁금할 법도 할 것이다.

완주군에는 특별한 복합문화시설들이 있다. 삼례역 근처의 '삼례문화예술촌'과 용진읍에 위치한 '복합문화지구 누에'란 곳이다. 두 공간 모두 오래된 산업시설을 리모델링해 만든 문화공간이다. 삼례문화예술촌은 꽤 예전부터 유명한 사례였는데, 그 노하우 덕분인지 문체부의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에 선정돼 또 다른 공간재생을 이뤄낸 것이 복합문화지구 누에였다.

삼례문화예술촌 자리는 원래 맹꽁이 등 양서동물들의 서식지였던 곳으로, 주민참여를 통해 그 스토리를 반영한 공간이 조성돼있다. ⓒ김지나

일제 그림자 지운 주민들의 노력

삼례문화예술촌은 일제강점기 수탈의 상징이었던 양곡 창고가 시민들을 위한 미술관·공방·체험공간들로 바뀌었다는 스토리부터 드라마틱하다. 해방 이후에는 삼례농협에서 관리해오며 무려 2010년까지 창고로 사용됐다 한다. 색 바랜 농협의 심볼 마크와 녹슨 철문들이 언뜻 버려진 공간인 듯한 인상을 주었지만, 곳곳에 자리한 크고 작은 조형물들을 보며 이 공간에 또 다른 시간이 쌓여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코로나19와 시설재정비를 이유로 휴관 중인 와중에도, 완전히 폐쇄돼 있지는 않아 외부 공간은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었다. 동네 어린이들이 부모님과, 혹은 또래 친구들끼리 놀러 와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협동생산 공동판매'란 글자가 그대로 남아 있는 콘크리트 창고건물 옆에, 타일로 장식된 개구리와 달팽이 따위의 조각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 놓은 흔한 놀이터라 생각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맹꽁이 터줏대감 이야기'란 제목의 안내판이 붙어 있었다.

특이한 점은 이 공간을 만든 이들의 크레딧이었다. 글은 '맹꽁이'가 썼고, 방촌마을 최인기 할아버지의 협조를 받았으며, 시민행동21 한국 양서파충류보존네트워크가 자문을 했다고 돼있었다. 양곡 창고가 들어서기 전 이 일대는 인근의 만경강으로 이어지는 습지와 소류지가 있어 맹꽁이·개구리·두꺼비 등 양서동물들이 서식하기에 좋은 환경이었다고 한다. 놀이터라 생각했던 공간은 인공으로나마 만든 작은 연못이었다. 쌀 뿐만 아니라 고유한 생태환경도 앗아갔던 일제 식민지배의 그림자가 지역 주민들의 참여와 증언으로 조금씩 걷히는 듯해, 그 의미가 더 각별했다.

복합문화지구 누에는 전북 잠업시험장 단지를 전시실·공방·게스트하우스·캠핑장 등으로 재생시킨 공간이다. 약 5만2000m 면적에, 21개나 되는 건물들이 주민들의 문화예술 향유를 지원하는 시설들로 채워졌다. 누에가 제시하고 있는 슬로건은 '누구나 예술'이다. 완주군민 누구나 함께 문화예술을 구상하고 만들며 배울 수 있는 곳으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누에아트홀 전시의 한켠을 채우고 있는 시민참여 프로젝트, 완주지역공동체협의회에서 운영하는 커뮤니티 공간에서 그 의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 탓인지 날씨 탓인지 풍부한 인프라에 비해 활기는 부족했지만, 이 작은 도시에서도 서울 못지않은 문화기획의 고민이 느껴져 고무적이었다.

전시 및 공연장으로 쓰이는 누에아트홀에서는 시민참여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한 켠에 전시되어 있다. ⓒ김지나

'완주군민 누구나' 공간 운영에 참여 가능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에서는 다양한 주민참여 프로그램들과 공유 공간 운영으로 시민들이 문화도시 운영에 기여할 수 있는 창구들을 열어두고 있다. '문화현상 주민기획단', '대표 없는 회의', '시민문화배심원단'은 문화도시 완주를 움직이는 중심이다. 주민들이 직접 사업을 기획하고 실행해볼 수 있도록 한 이 거버넌스 시스템은 완주군이 문화도시로 선정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문화도시보다 주민 참여를 활발하게 실천하고 있는 완주군이지만, 대면모임이 어려워져 그 노력의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는 지금의 상황이 안타까웠다. 이제 시작된 문화도시 사업의 동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온라인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어보였다. 완주문화도시지원센터에서는 '대표 없는 회의'를 비대면으로 진행하고, '완주문화공유365'란 이름의 도시문화자원 공유 사이트를 운영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다. 오히려 이런 플랜B가 전북 시군들 중에 가장 넓은 면적과 많은 인구를 가진 완주군이 진정으로 '완주군민 누구나'를 실천할 수 있는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모두가 다 알고는 있지만 실행은 쉽지 않은 '주민 중심의 문화도시'를 완주군에서 계속 목격할 수 있기를 바라며, 그 도전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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