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H 신도시 사업단장도 투기 의혹..10억에 시흥 땅 샀다

김원 입력 2021. 3. 4. 00:04 수정 2021. 3. 4.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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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토지보상 업무 맡은 간부
2년 전 시흥 과림동 땅 10억에 사
직원 4명은 길 없는 맹지까지 매입
중개업자 "개발정보 없인 안살 땅"
토지 보상 때 묘목 포함규정 안 듯
"나무만 심어 놓고 한번도 안 왔다"
통장 "경작확인 도장 요구하기도"
대부분 전답..땅값 싼 지역 공략

“보상 방법 등 내부 정보를 확실히 아는 사람이 투기 목적으로 땅을 산 게 아니고선 이럴 순 없다.”

3일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일대 공인중개사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3기 신도시로 지정된 이 일대 토지를 집중적으로 매입한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에 앞서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지난 2일 “LH 직원 여러 명이 지분을 나눠 3기 신도시 지정 전 토지를 매입한 정황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3일에는 국토교통부가 자체 조사해 “LH 직원 13명이 신도시로 지정된 지역 12개 필지를 사들인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10여 명이 지난달 신규 공공택지로 발표된 경기도 광명·시흥 신도시 토지 7000평을 사전 매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 정부합동조사단이 4일 출범한다. 사진은 LH 직원들이 사놓은 시흥시 과림동 한 밭에 심어진 묘목들. 개발 시 묘목도 보상받게 된다. [뉴스1]

토지를 매입한 LH 직원 중에는 LH가 신도시를 조성할 때 토지 보상 업무를 담당하는 최고 책임자도 포함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책임자는 2019년 6월 시흥시 과림동의 토지 2739㎡를 10억3000만원에 매입했고, 광명·시흥지구는 올해 2월 3기 신도시로 지정됐다. 그는 2017년에도 사업단장으로 토지 보상 업무를 책임지는 등 토지 보상 업무를 주로 맡아왔다.

LH 직원의 땅 투기 의혹이 일면서 전국에 83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힌 2·4 부동산 대책에도 먹구름이 꼈다. 2·4 대책의 핵심은 공공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공공주도의 개발이다. 하지만 사업의 첫 삽도 뜨기 전에 공정하게 사업을 주도해야 할 공공 주체가 땅 투기 의혹에 휘말리면서 신뢰가 크게 떨어졌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이런 비위 문제를 일으킨 LH가 주도해 공공개발 사업을 하겠다니 공공주도 정책을 누가 믿고 자신의 땅을 LH 등에 팔겠느냐”고 지적했다.

LH 직원이 매입한 것으로 알려진 시흥시 일대를 3일 찾았다. LH 직원의 토지 매입이 시작된 건 2018년이다. 박모씨 등 4명이 시흥시 무지내동 경기자동차과학고 옆 밭(면적 5905㎡)을 사들였다. 당시 평당(3.3㎡) 108만원에 이 땅을 샀다. 이 땅은 길과 연결돼 있지 않고 진입로도 없어 토지 활용도가 크게 낮은 ‘맹지’다. 익명을 요구한 부동산 전문가는 “맹지의 경우 말 그대로 쓸모없는 땅이기 때문에 ‘강제 수용’ 등 개발 정보가 없으면 거래 자체가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시흥시 무지내동에서 공인중개사를 운영하는 이모씨는 “2018년 토지주가 당시 시세인 평당 130만~140만원대에 내놓았다”며 “토지주의 자금 사정이 나빠지면서 가격을 많이 내려 급하게 팔았다”고 전했다. 지금은 180만원대에 시세가 형성돼 있다. 평가이익이 투자금의 80%가량이다. 이 땅을 19억4000만원에 산 박씨 등은 현 시세 기준으로 13억원가량의 차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이 지역 공인중개사는 2019년 초부터 땅을 보러 오는 사람이 늘었다고 말했다. 광명시 가학동과 시흥시 논곡동·무지내동 일원을 개발하는 ‘광명·시흥 테크노밸리’ 토지주에 대한 보상이 진행되던 시기다.

주민들 “멀쩡한 논 갈아엎고 버드나무 묘목 빽빽이 심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광명·시흥 신도시 부지의 모습. 장진영 기자

공인중개사 송모씨는 “테크노밸리 토지 보상액이 공시지가의 180~200%까지 책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과림동 일대도 호가가 평당 30만~40만원씩 올랐던 시기”라고 설명했다. LH 직원의 토지 매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도 이때다.

LH 직원이 사들인 12필지는 모두 시흥시 땅이다. 이곳을 공략한 것은 상대적으로 땅값이 싸기 때문이다. 새 아파트 입주권을 보상받는 것은 1000㎡당 한 채로 똑같기 때문에 저렴한 땅을 전략적으로 골랐을 것이라고 전문가는 예상한다. 실제 광명시 노온사동은 공시지가 발표 시점인 지난해 5월 말 기준으로 3.3㎡당 150만원 안팎인데, LH 직원이 산 시흥시 무지내동의 공시지가는 3.3㎡당 84만원이다.

일각에서는 “광명·시흥 지역은 시기의 문제였지 개발이 확정적인 곳이라 LH 직원이 땅을 산 건 내부 정보를 활용한 투기라고는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 지역 원주민 민모씨도 “2015년 이곳을 특별관리구역으로 묶을 때부터 10년 안에 개발될 것이라는 건 예견됐던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투자금액과 비교하면 대출액이 크고, 임대수익을 기대할 수 없는 농지를 주로 매입했다는 점에서 “일반인이 접근하기 힘든 정보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참여연대와 민변 역시 “이들의 토지 매입 자금 중 약 58억원은 금융기관 대출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LH 직원이 산 것으로 알려진 땅 대부분은 전답(농지)으로 분류된다. 김모씨 등이 2019년 매입한 과림동 논(답) 2개 필지에는 버드나무 묘목이 빽빽하게 심겨 있었다. 인근에서 폐기물처리업체를 6년째 운영하는 우모씨는 “2년 전 멀쩡한 논을 갈아엎고 나무를 잔뜩 심어놨다”며 “이후에 주인이 찾아온 걸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말했다.

광명시 노온사동에서 식물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보통 경작을 중단한 농지에는 대추나무 등을 심는다”며 “버드나무 묘목을 간격도 두지 않고 이렇게 심어놓은 건 처음 본다”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땅을 산 LH 직원 중에 보상 담당자가 있다고 하던데, 어떤 나무를 얼마나 심어야 보상을 잘 받을 수 있을지 자세히 아는 사람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묘목이 심겨 있는 땅은 묘목에 대해 따로 감정해 토지보상가에 더한다.

과림동 통장 박모씨는 “무지내동 땅을 매입한 사람이 어느 날 나를 찾아와 농지원부를 받기 위해 경작확인서에 도장을 찍어달라더라. 분당에 살면서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라던데 어떻게 농사를 직접 짓느냐고 돌려보낸 적이 있다”며 “나중에 보니 그 땅에 나무를 심어놨더라”고 말했다.

참여연대와 민변은 “LH 내부 보상규정을 보면 1000㎡를 가진 지분권자는 대토보상 기준에 들어간다”며 “일부 필지는 사자마자 ‘지분 쪼개기’를 했는데 (지분권자가 각각) 1000㎡ 이상씩 갖게 하는 등 보상 방식을 알고 행동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있다”고 설명했다. 토지대장을 확인해 보니 지난해 2월 장모씨 등 7명이 매입한 과림동 4개 필지의 경우 원래 3개 필지를 매입한 뒤 공유자 7명이 ‘지분 쪼개기’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에서 15년째 금형 공장을 운영 중인 박모씨는 “공공기관에 있는 사람들이 내부 자료를 이용해 투기했다는 사실이 용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흥=김원 기자, 한은화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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