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번호 8·9번째 48~66은 안돼".. "페미NO" 사건으로 본 채용 차별 역사

여성국 2021. 4. 21.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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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가 아닌 자.’
지난 13일 온라인 구직 사이트. 서울의 한 편의점주가 아르바이트생을 모집하며 이런 지원 조건을 내걸었다. ‘소극적이고 오또케오또케(어떡해 어떡해)하는 분은 지원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도 있었다.

편의점 모집 공고.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개인의 신념을 배제하고 여성을 차별·비하한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편의점 본사 측은 “해당 점포 채용공고 관련 물의를 일으키게 된 점 사과드린다”는 입장을 냈다. “즉각 점주분께 연락해 공고 삭제 요청을 했다”고도 했다.


“법 위반 소지, 인권위 진정 대상인 차별”
직장갑질119 대표 권두섭 변호사는 “고용정책기본법 7조에 사상이 명시된 건 아니지만, 성별 등에 사상도 포함해서 해석할 여지가 있다. 내건 조건이 대부분 여성이 대상이라면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소지도 있다”면서 “국가인권위법에 따른 진정 대상이 될 수 있는 차별행위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채용 과정의 차별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성별, 출신 지역과 학교, 나이 등으로 인한 채용 차별 논란이 있었다. ‘페미NO’ 사례처럼 논란이 된 차별을 막기 위해 규정이 바뀌고, 법이 생겼다.


“전라도 출신 지원 불가” 법 위반
2014년 국내 굴지의 자동차회사의 1차 협력사인 기계업체는 채용 사이트에 모집 공고를 내며 지원 불가 항목에 ‘전라도 본적’을 명시했다. 논란이 일자 회사 측은 “사실과 다른 공고가 게재돼 기사화된 것에 유감스럽다”면서 “채용공고 내용은 사실이 아니고 거론된 지역 출신 다수가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고 밝혔다.

채용차별

2018년 경기도 부천의 한 편의점은 ‘본인 또는 가족의 주민등록번호 8·9번째 숫자가 48~66 사이에 해당하는 분은 채용이 어렵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 조건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전라도에서 태어난 사람들이었다.

구직자 모집과 채용에 있어서 이런 노골적인 차별을 막기 위해 다양한 법이 제정됐다. 2014년 제정된 채용절차법은 출신 지역 등 개인정보 요구를 금지한다. 직무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신체조건과 출신 지역, 결혼 여부, 부모의 직업 등을 수집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요구할 경우에는 법 위반에 해당한다. 고용정책기본법은 성별, 신앙, 연령, 출신학교 등을 이유로 차별해선 안 된다고 명시한다.


과거 대기업, 총장 추천제 논란 일자 '백지화'

[뉴스1]

대기업 공채에서도 대학별 총창 추천 제도가 서열화와 지역 차별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2014년 한 대기업은 전국 대학교에 총창 추천 채용 인원을 할당했다. 당시 여러 대학이 90~115명을 배정받았으나 호남 지역의 전남대(40명)와 전북대(30명)는 절반 이하의 인원이었다. 당시 대기업 측은 "입사 비율이 높은 학교 순서로 인원을 정했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차별 논란은 계속돼 결국 사과하고 총장 추천 제도는 사라졌다.

권혁 부산대 교수(법학)는 "사용자가 경영상 필요한 사람을 뽑는 자유가 있지만, 채용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과 헌법상 권리를 침해하면 안 된다"면서 "특정 지역 출신을 배제하는 것은 헌법상 평등의 원리에 반하고 지역 정보를 수집 못 하게 하는 채용절차법에도 어긋난다"고 말했다.


공무원 응시 연령 제한 규정도 사라져
과거에는 합리적인 차별로 여겨졌던 채용 기준이 시대가 바뀌면서 비합리적인 차별에 해당해 기준이 바뀐 경우도 있다. 2009년 이전에는 공무원 시험 응시 나이 제한이 있었다. 8·9급은 18~28세, 6·7급은 20~35세로 제한됐다. 하지만 헌법재판소가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공무원 연령 상한선은 사라졌고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공무원 시험에 응시할 수 있게 됐다.

헌법재판소 외경. [중앙포토]

소방관, 경찰관도 30세 이하 응시연령 제한이 있었다. 각 기관은 나이가 고유 업무에 영향을 준다면서 응시연령 제한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2012년에 헌법재판소는 이 규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경찰청과 소방청은 응시 연령을 40세로 상향 조정했다.

권 교수는 "과거에는 연령, 성, 신앙, 신분 등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해 차별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시대가 변하면서 채용 과정에서 차별을 막기 위한 다양한 법들이 만들어졌지만 한계가 있다"면서 "사용자의 자유는 폭넓게 인정하되 절차적 공정성을 담보하면서 헌법상 기본권에 반하지 않도록 채용절차법 등이 좀 더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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