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김윤식 서울대 교수 별세
문학사 현장비평 예술기행 등 다방면에 큰 자취 남겨
[한겨레]
국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가 25일 저녁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2.
1936년 경남 진영에서 태어난 김 교수는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국문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8년 서울대 교양과정부 전임강사로 임용되었으며 1975년 국문학과로 적을 옮긴 뒤 2001년 정년퇴직할 때까지 숱한 제자들을 길러냈다.
교육자로서 그의 관할이 대체로 서울대의 범위에 국한되었지만, 연구자로서 영향과 자극은 모교의 울타리를 가볍게 뛰어넘었다. 1973년 학위논문을 손보아 낸 첫 책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에서 시작해 200권을 훌쩍 넘는 저서를 낸 그의 연구 범위는 국문학의 거의 전 분야를 아우른다고 해도 좋았다. 국문학계에서는 어느 주제로 논문을 쓰더라도 ‘김윤식 교수를 피해 가기는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그의 학위논문 주제는 일제강점기 좌익 문인 단체인 카프(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유신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에 이념적 색채가 짙은 문학 운동을 논문 주제로 삼은 것은 그것이 근대의 완성과 극복이라는 민족사적 과제와 밀접하게 관련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일제의 강압과 식민사관의 지배로 인해 왜곡되거나 좌절된 주체적 근대를 향한 꿈은 그가 불문학자 김현과 함께 쓴 <한국문학사>(1973)에서 한국 근대문학의 기점을 영·정조 시대로 끌어올리는 시도로 나타나기도 했다.
카프를 대상으로 출발한 김 교수의 한국 문학 연구는 <임화 연구> <이광수와 그의 시대> <염상섭 연구> <백철 연구> 등의 작가론과 <한국현대문학비평사론> <일제말기 한국작가의 일본어 글쓰기론> <내가 읽고 만난 일본> 등 숱한 학술서들로 나아갔다.
이런 연구와 함께 김 교수의 글쓰기를 양분하는 다른 한 축이 1970년대 초부터 숨지기 직전까지 이어져 온 ‘현장비평’이었다. 반세기 가까이 문학 월간지와 계간지에 소설 평을 쓰느라 그는 ‘한국에서 발표되는 중단편 소설은 모두 읽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두툼한 저서 목록의 상당수가 이런 소설 평으로 채워졌다. 애초에 시를 쓰고자 대학에 갔지만, 창작이 아닌 연구와 비평으로 방향을 정한 뒤에는 주로 소설을 그 대상으로 삼았다. 시와 달리 소설은 당대 사회를 민감하게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그는 설명했는데, 소설 중에서도 장편이 아닌 단편과 중편이야말로 문학의 핵심이라고 그는 보았다. 장편은 아무래도 상업성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문학사 연구 및 현장비평과 함께 김윤식 글쓰기의 또 다른 축을 이루는 것이 예술기행이다. 그는 <환각을 찾아서> <설렘과 황홀의 순간> <낯선 신을 찾아서> 등의 예술기행집에서, 학자 및 비평가로서는 쉽지 않았던 ‘표현에의 욕구’를 채웠다. 그가 현장비평과 논문에서 종종 시도했던 ‘주’와 ‘객’ 또는 ‘비평가’와 ‘문학사가’ 사이의 대화체 형식 역시 딱딱하고 재미 없는 글쓰기에서 벗어나 글쓴이의 숨결과 체취를 담고자 하는 시도였다. 그는 또 짧은 칼럼 형식 글로 문학사의 단면을 날렵하게 포착해 보여주고는 했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햇수로 10년 동안 <한겨레>에 연재한 ‘김윤식의 문학산책’이 대표적이었다.
2001년 9월 서울대 박물관 강당에서 한 정년퇴임 기념 강연에서 그는 “연구자와 평론가로서 쓴 글들은 결국 ‘나만의 글’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며 “표현자로서 나는 실패했다”고 단언했다. 그럼에도 “인간으로 태어나서 다행이었고, 문학을 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영국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스의 시 한 대목을 인용하는 것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한때 그토록 휘황했던 빛이/ 영영 내 눈에서 사라졌을지라도/ 들판의 빛남, 꽃의 영화로움의 한때를/ 송두리째 되돌릴 수 없다 해도/ 우리는 슬퍼 말지니라. 그 뒤에 남아 있는/ 힘을 찾을 수 있기에”(‘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영생불멸을 깨닫는 노래’ 부분)
고인은 요산문학상, 대산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김환태문학평론상 등을 수상했으며, 이병주기념사업회 공동대표와 호암상 위원 등을 지냈다. 빈소는 서울대 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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