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설영의 일본속으로] 744만 명이 명함 2개, 공무원까지 투잡 권하는 일본

윤설영 2018. 8. 8.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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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손 모자라자 일하는 방식 개혁
낮엔 대기업, 밤엔 중소기업 출근
기업, 인력 확보 쉬워져 환영하지만
영업 비밀 누설, 구조조정 악용 우려
아오노 마코토(왼쪽)는 소프트웨어개발회사인 사이보즈의 인사부 부부장이면서 부업으로 아동복지 비영리법인 플로렌스에서도 인사관련 상담을 해주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소프트웨어 개발회사인 사이보즈에서 인사부 부(副)부장을 맡고 있는 아오노 마코토는 명함이 하나 더 있다. 아동복지 비영리법인인 플로렌스에서 ‘일하는 방식 개혁’ 사업의 어드바이저 명함이 그것이다.

사이보즈에서 10년째 인사 업무를 해오던 아오노는 2년전 문득 “내 능력이 사회에서 얼마나 쓸모가 있을까.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퇴직 후 새 직장을 찾는 대신 아오노는 부업이라는 선택지를 골랐다. 마침 사이보즈에선 직원들의 부업을 허용하기 시작했고 정책적으로 직원들에게 부업 찾기를 장려했다.

플로렌스에는 한달에 2번만 출근한다. 인사담당자와 회의를 하고 인사정책 관련 조언을 해주는 게 그의 일이다. 평소엔 온라인으로 업무를 한다. 플로렌스에서 받는 자문료 격의 월급은 본 직장의 월급에 비하면 쥐꼬리 수준이다.

하지만 아오노는 “사회적으로 공헌하는 단체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보람을 느낀다”면서 “할 수 있는 한 계속 부업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업이 생기고 나서 바빠진 것 사실이지만, 인맥이 다양해지고 시야가 넓어져 본업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아오노처럼 일본에선 최근 본업 이외에 부업을 갖는 직장인들이 크게 늘고 있다. 소프트뱅크, 코니카미놀타, 로토제약 등 대기업들도 정책적으로 사원들의 투잡을 허용하는 추세다. 인재파견회사인 란서스의 조사에선 최근 3년간 부업인구는 약 210만 명 늘어, 전국에서 약 744만 명이 본업 외에 부업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프트뱅크 사원인 기타야마 케이이치로는 주말마다 부업으로 간판제작회사로 출근한다. [사진 기타야마 케이이치]
일본 정부는 아예 기업들에 직원들이 ‘투잡’을 하도록 적극 권하고 있다. 아베 정부가 대대적으로 추진하는 ‘일하는 방식 개혁’의 일환으로, 아베 총리는 2018년을 ‘부업 원년’으로 선언했다. 후생노동성은 올 1월 기업들이 참고로 하는 ‘표준 취업규칙’에서 부업을 ‘원칙적 금지’에서 ‘허가제로 도입’으로 개정했다. 그동안은 겸업이나 부업을 하면 징계사유에 해당했지만 허가만 받으면 자유롭게 두번째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문턱을 낮췄다.

일본 정부가 나서서까지 부업을 부추기는 이유는 심각한 ‘일손 부족’ 문제 때문이다. 일본의 생산가능인구(만15세~만64세)는 1995년 8659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5년 7628만명까지 줄었다.

정부 조직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 정부는 국가공무원의 부업도 허용할 방침이다. 이미 나라현(奈良) 이코마시(生駒市)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는 지난해부터 지자체와 이해관계가 없는 한도에서 지방공무원의 부업을 허용하기 시작했다. 인구감소 속도가 도시지역보다 빠른 지방에선, 공무원의 손을 빌리지 않고서는 안될만큼 인력 부족 문제가 심각한 상황인 것이다.

기업은 사원들이 부업을 통해 얻은 경험으로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이끌어내겠다는 의도가 있다. 소프트뱅크 인사기획부 이시다 케이이치 과장은 “통신업계는 이미 성숙시장으로 진입했다. 계속해서 신규사업을 발굴해야 하고, 기존 사업은 더욱 활성화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를 위해선 사원들이 혁신을 일으킬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라고 말했다.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사이보즈는 부업이라는 다양한 근무형태를 통해 인재확보가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이보즈의 홍보담당 오카와 마사시는 “부업을 허용한 뒤로, 지금까지 채용하지 못했던 인재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실제 신입사원 중에는 ‘부업이 가능해서 지원했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기업들이 더이상 일본식 종신고용제도를 유지할 수 없게 되면서, 사원들을 부업시장으로 내모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사원들이 퇴직 후 제2의 길을 찾도록 하고, 기업은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으로 옮겨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부업을 허용하려면 고려할 사항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당장 ▶본업에 지장을 주거나 ▶영업 비밀의 누설 ▶인재유출 등이 우려된다.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과로사가 사회문제로 떠오른 마당에 본업 외에 부업까지 할 경우, 산업재해 시 누구의 책임이냐는 것도 문제다. 부업을 허가하지 않는 한 대기업 전자제품 회사의 간부는 “기술 유출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인재는 내보내지 않는 게 업계의 흐름”이라고 말했다.

부업을 하는 개인도 장시간 노동이나 본업과의 조율이 중요하다. 부업으로 간판 디자인을 하는 소프트뱅크의 기타야마 케이이치로는 “절대 돈을 벌기위해 부업을 시작해서 안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평소 취미로 간판디자인을 돕다가 본격적으로 부업으로 전환한 케이스다. 그는 “재밌으니까 더 하고싶고, 즐거우니까 더 잘하고 싶어지는 일을 부업으로 삼는게 좋다. 그렇지 않고 돈을 벌기 위해 밤에 경비원일을 하겠다거나 하면 실패할 확률이 높다”고 말했다.

■ “회사 밖으로 나가 혁신 배워라” 소프트뱅크의 ‘2중 근무’ 실험

소프트뱅크 인사기획부 이시다 케이이치 과장이 중앙일보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윤설영 특파원]
소프트뱅크는 작년 11월부터 사원들의 부업을 전격적으로 허용했다.

현재 300명 정도가 부업을 하고 있고 부업 신청자 수는 계속 늘고 있다. 소프트뱅크가 부업을 허용한 배경에는 “회사 밖으로 나가 혁신을 발견하라”는 뜻이 담겨있다. 소프트뱅크 인사기획부 이시다 케이이치(사진) 과장은 “부업 때문에 본업을 소홀히 하면 평가로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Q : 부업 허용 후 혁신의 효과가 있나.

A : “효과를 정량적으로 잴 수는 없다. 다만 실제 부업을 하는 사원들에게 물어보면 전문성의 폭이 넓어졌다는 등 긍정적인 얘기를 많이 듣고 있다.”

Q : 부업 할 시간에 본업에 더 충실하는 게 맞지 않나.

A : “기본적으로 부업은 휴일에만 허가하고 있다. 근무 외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본인의 자유다. 본업에 영향을 주어선 안되고 본인의 능력 계발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

Q : 아무래도 부업을 하다보면, 본업에 소홀해지지 않나.

A : “최종적으로는 업무 평가로 판단한다. 본업에 소홀해지면 평가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성선설’에 기반해 사원을 믿을 수 밖에 없다. 재택근무도 ‘집에서 놀고 있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면 불가능하지 않나.” 」

윤설영 도쿄 특파원 snow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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