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빠도 전 좀 부치시죠"..추석 때 당황한 중년 남성들

안채원 입력 2018. 9. 27. 15:2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거센 페미니즘 바람 일어난 뒤 맞은 첫 명절
차별 반대 주도 '영페미'들 각 가정서 목소리
"다같이 먹을 건데 모여서 왜 우리만 일하나"
"남자들은 치우기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처음 접하는 항의에 집안 남성 어른들 당혹
"순간 화도 나지만 부인할 수 없는 맞는 말"
"세상이 변했고 종래 풍속 바뀔 때도 됐다"
전문가 "성별 떠나 기성세대도 공감 필요"
【서울=뉴시스】 (뉴시스DB)

【서울=뉴시스】안채원 류병화 기자 = 큰형 집에서 명절을 쇠는 이모(50)씨는 이번 추석이 다소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부엌에서 명절 음식 일손을 거들고 있는 큰 조카에게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꺼냈다가 "작은 아빠도 전 좀 부치시죠"라는 말을 들은 것이다. 이씨는 "그 말에 순간 얼어붙었다"면서 "어쩔 줄 몰라하다가 형수님 등 주변 사람들이 민망해하며 만류해 자리로 돌아갔지만 내내 눈치가 보여 혼났다"고 전했다.

근래 한국 사회에서 페미니즘 기류를 주도하는 이른바 '영 페미니스트들(Young Feminist·젊은 페미니스트)'들이 이번 추석 때도 목소리를 냈다. 여성들만 일을 하는 명절 분위기에 '반기'를 든 것이다.

영페미들에게는 노도와 같던 미투 운동, 성 차별 수사 규탄 시위 등을 통해 페미니즘이 우리 사회의 큰 화두로 떠오른 뒤 처음 맞이하는 추석이라 여느 명절 때와 달랐다고 한다. 성차별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목소리를 낸 이들이 내부로 눈을 돌리고 보니 그토록 외쳤던 '성차별 타파'가 가정에도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은 것이다. 여성 차별과 혐오를 반대하며 온·오프라인 양측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주축이 바로 이들 세대다.

대학생 김민지(22)씨는 이번 추석에 '프로 불편러'를 자처했다고 했다. 언제나처럼 부엌에서 송편을 빚다가 친척들이 모여있는 거실을 향해 "다같이 먹을 건데 와서 왜 우리만 힘 빼는지 모르겠다"고 용기를 낸 것이다. 상을 치울 때도 "여자들이 음식을 했으면 남자들이 치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의견을 피력했다. 김씨는 "엄마나 큰엄마, 작은엄마가 하루 종일 음식을 하고 설거지까지 하는데 집안 어른들 눈치에 아무 말도 못하는 것 같아 내가 나서기로 했다"며 "결국 부모님에게 '왜 그렇게 버릇 없게 이야기하냐'고 핀잔을 들어 화가 나기도 했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관습이 잘못됐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중년 남성들은 조카나 딸들의 지적이 당황스럽다면서도 대체로 '맞는 말'이라는 반응이다. 종래의 풍속이 변화할 때도 됐다는 것이다.

자영업자인 이영민(52)씨는 "친척들 앞에서 어린 조카나 딸에게 지적을 받으면 순간 화가 나다가도 결국 명절에 '무임승차'를 해온 것은 부정할 수 없어 할 말이 없어진다"고 털어놨다.

딸이 있다는 이씨는 "보통 어머니와 아내, 처제가 음식을 하고 나는 뒷처리를 도와주거나 명절 후 기분을 풀어주는 방식으로 나름의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며 "우리 딸이 지금의 기성세대 여성들처럼 미래에 똑같은 고생을 한다고 생각하면 이제는 정말 바뀔 때라는 생각도 들었다"고 했다.

회사원인 이모(54)씨는 "한 방송사 뉴스에서 명절 성차별을 대대적으로 다루는 것을 보고 세상이 정말 변했구나 절감했다"며 "질책하는 듯한 발언이 순간적으로 기분이 나쁠 수는 있지만 이 또한 변화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아직 결혼 제도에 속하지 않은 1020대 여성들의 외침에 중장년 여성과 남성들도 동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김지영 건국대학교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명절에는 어머니, 며느리뿐만 아니라 10~20대 어린 여성들도 노동에 동원되지만 이들의 남동생, 오빠는 가만히 있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이 명절을 모두가 행복한 연휴로 인지하기보다는 성별에 따라 누군가는 힘들게 일하고 누구는 거실에서 해오는 음식을 먹으며 대우받는다는 점을 명확히 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혼, 비혼 여성은 완벽히 결혼제도 안에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명절노동에 대해) 문제제기하기가 쉽지만 그들이 사회적 서열이 낮은 10대 중후반, 20대 초반의 어린 여성이란 점에서 묵살되는 경우가 흔하다"며 "30~40대 여성들도 '맞아'라고 동조하거나 남성들 중에서도 같이 공감해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명절노동과 관련된 문제는 세대갈등, 젠더갈등이 교차하며 발생한다"고 봤다.

전 교수는 "노동분담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는 있다"면서도 "그보다 명절문화를 관념적으로 따르고 있는데 (과연 힘든 노동이 수반되는) 명절을 꼭 쇠어야 하나? 라는 문제의식도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newkid@newsis.com
hwahwa@newsis.com

Copyright ©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