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DJ·노무현·문재인의 독서

손진석 파리특파원 입력 2018. 8. 7. 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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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석 파리특파원

20세기 지식인 중 피터 드러커(1909 ~2005)만큼 폭넓은 경험과 활동을 한 이는 드물다.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 프로이트, 슘페터 등 당대 지식인과 교류했고 독일 함부르크에서 대학 생활을 보냈다. 나치를 피해 런던 금융가(街)에서 은행 실무를 익힌 다음 미국으로 건너가 영국 신문사 특파원과 정치학 교수, 기업 컨설턴트, 정부 자문관을 거쳐 경영학 교수로 90세 넘어까지 활동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런 드러커에게 흠뻑 빠졌다. 그는 1999년 여름휴가 때 드러커의 '지식자본주의 혁명'을 읽었고 드러커의 다른 저서 '단절의 시대'는 평생 읽어야 할 책으로 꼽았다. 미국 경제학자 존 갤브레이스의 '불확실성의 시대'도 즐겨 읽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서양 지식인의 통찰력을 흡수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그가 2003년 휴가 때 읽은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는 IBM을 회생시킨 미국 기업인 루이스 거스너의 경험담이다. 김대중의 외환위기 극복, 노무현의 한·미 FTA 추진은 이처럼 열린 독서 자세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라 믿는다.

우리는 대통령이 휴가 때 읽은 책에서 리더의 관심이 어디 있는지 엿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올여름 읽었다는 세 권의 책을 전해 듣고 적잖게 놀랐다. 그 3권의 책은 광주민주화운동, 북한, 구한말(舊韓末) 민중을 각각 소재로 한다. 그 책들이 다룬 대상의 역사적·정치적 의미를 결코 소홀히 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균형이다. 3권의 책에는 '세계'도 없고 '경제'도 없다.

프랑스 첫 좌파 대통령인 프랑수아 미테랑은 최저 임금 15% 인상, 5주간의 유급 휴가, 기업 국유화를 밀어붙였다. 지금 문재인 정부와 방향이 같았다. 하지만 역효과를 부른다는 지적이 쏟아지자 정권 출범 2년이 지나기도 전에 중도 노선으로 선회했다.

반면 문 대통령은 갖가지 경제 지표가 하향 곡선을 그리며 곤두박질치는 와중에도, 귀를 막고 민주화·북한·민중 같은 '지지세력의 가치'에만 매달리고 있다. 과거 재야 시민단체 대표가 읽었음 직한 그의 휴가 도서 목록에서 융통성 없는 거대한 벽이 느껴진다면 기자만의 호들갑일까.

세계는 폭풍 전야(前夜)이다. '나 홀로 호황'인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에 속도를 내자 신흥국은 물론 영·독·불(英獨佛)조차 긴장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금리 태풍 외에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한 거대한 파도의 충격까지 감내해야 하는 나라다.

문 대통령이 휴가 때 읽은 3권의 책은 우리를 휩쓸고 지나갈 폭풍우와 거리가 멀다. 한가로워 보이는 건 물론이고 '누가 뭐라든 내 길을 가겠다'는 외고집이 엿보인다. 앞으로도 무엇에 역점을 두겠다는 건지 분명하게 보여줘 섬뜩함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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