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인터넷은행 은산분리 완화 길 터.."공약 파기" 반발

2018. 8. 8.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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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
문 "대주주 사금고화 등 막되
IT기업 투자 확대할 수 있어야"
시민단체 "재벌·관료에 포획" 우려

[한겨레]

문재인 대통령이 7일 오후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 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 간담회를 마친 뒤 스마트폰을 이용한 계좌 개설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19세기 말 영국에 붉은 깃발법이 있었다. 자동차 속도를 마차 속도에 맞추려 자동차 앞에서 사람이 붉은 깃발을 흔들었다”며 “영국이 마차업자들을 보호하려다 자동차 산업이 독일·미국에 뒤처지고 말았다”며 규제 혁신을 강조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인터넷전문은행 활성화를 위해 ‘은산분리’ 규제 완화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히는 등 금융규제 완화에 나섰다. 정부가 혁신성장 추진을 위해 규제 완화에 한층 속도를 내는 모양새다. 하지만 시민단체·노조 등은 “은산분리 규제 완화는 공약 파기”라며, 정부가 사실상 재벌과 관료에 포획되는 길을 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문 대통령은 7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열린 ‘인터넷전문은행 규제혁신 현장방문’에서 “은산분리는 우리 금융의 기본원칙이지만 지금의 제도가 신산업의 성장을 억제한다면 새롭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은산분리라는 대원칙을 지키면서 인터넷전문은행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혀주어야 한다. 인터넷전문은행에 한정해 혁신 아이티(IT) 기업이 자본과 기술 투자를 확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산업자본의 은행지분 보유 제한을 최대 34~50%까지 늘리는 내용을 담은 인터넷전문은행 특례법 제정안 등을 국회가 통과시켜 은산분리 규제를 완화할 것을 주문한 것이다. 다만 문 대통령은 “대주주의 사금고화 등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주주의 자격을 제한하고 대주주와의 거래를 금지하는 등의 보완장치가 함께 강구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은산분리’는 산업자본(비금융주력자)의 은행 지분 소유를 제한하는 규제를 이른다. 현행 은행법은 산업자본이 의결권 있는 은행 지분의 4%를 초과해 보유하는 것을 제한하는데, 의결권을 포기하면 10%를 초과하지 않는 범위까지 보유가 가능하다. 이런 규제는 대출을 내어 위험을 감수하고 사업을 확장하려는 산업자본의 속성과, 예금자 돈을 받아서 대출을 내주기 때문에 돈을 떼일 신용위험을 관리해야 하는 은행자본의 속성이 근본적으로 다르므로 상호 견제를 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우리 경제구조는 재벌그룹의 영향력이 크고 이들이 제2금융권을 지배하고 있어서 은산분리 규제에 대한 지지가 단단했다. 재벌과 대기업이 은행업까지 진출할 경우, 경제력 집중 심화와 사금고화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이날 국회에선 정의당 추혜선 의원과 경실련·참여연대가 공동주최한 ‘은산분리 규제 완화의 문제점 토론회’가 열려, 시민단체·노조 쪽 전문가들이 “정부가 재벌과 관료에 포획되는 모습에 위기감을 느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령이 힘을 실은 은산분리 완화의 예외적 허용이 몰고 올 파장을 두고선 정부와 시민단체가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청와대와 금융위원회는 특례법에 규정한 대주주 자격 제한(개인총수가 있는 대기업집단 배제)과 대주주와 거래 금지 조항 등을 통해 은행의 재벌·대기업 사금고화 같은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 또 특례법은 예외적 형태여서 전반적인 은산분리 원칙 훼손과는 거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금융위 쪽은 “인터넷전문은행은 소매전문은행으로 사실상 기업대출이 불가능하므로 기업 부실화에 따른 위험 전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은산분리 완화 반대 진영에선 2013년 동양그룹 사태 때 재벌이 증권사 등 계열 금융사를 사금고로 삼는 걸 금융감독이 막아내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또 재벌이 아닌 정보통신기술(ICT) 기업 대주주도 은행을 사금고화할 유인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본다. 게다가 인터넷전문은행이 미국 사례같이 일부 지점 설치 허용을 요구하는 등 단계적으로 일반은행처럼 될 경우 자연스레 은산분리 완화 효과가 퍼지는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 전국금융산업노조 정명희 정책실장은 “인터넷전문은행이 일부 지점을 설치한 뒤 기업대출 업무 등으로 확장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드러낸 인터넷전문은행과 핀테크 산업 발전, 은산분리 규제 완화에 대한 인식은 그동안 금융위 관료들이 주장한 내용과 거의 유사하다. 인터넷전문은행이 4차 산업혁명 활성화와 핀테크의 구심점이며, 고용유발 효과가 크고, 진입장벽 아래서 안주하는 기존 금융권에 경쟁·혁신을 촉진하는 ‘메기 효과’를 낸다는 것이다. 카카오뱅크와 케이(K)뱅크가 금융소비자 접근 편의 개선, 공인인증서 철폐, 상담챗봇 고도화, 금리·수수료 인하 경쟁 등 성과를 거뒀으며, 연관 산업 고용유발 효과도 5천명이라고 추산했다. 이렇게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도 은산분리 규제에 발목이 잡혀서 어려움을 겪는다는 논리를 편다.

하지만 시민단체·노조 쪽 전문가들의 생각은 다르다. 일단 인터넷전문은행의 금리·수수료 경쟁 촉진 등은 ‘인터넷전문은행 등장’ 효과로만 볼 게 아니며 25년 만의 ‘새 은행 인가’ 효과가 상당히 작용한 것으로 여긴다. 산업자본이 지배하는 특례법 은행만이 경쟁촉진 수단이 아니란 얘기다. 게다가 카카오뱅크는 은산분리 규제 아래서도 현재 상장 추진 등 자본확충에 큰 문제가 없다. 결국 은산분리 완화로 실익을 보는 쪽은 시장 경쟁력이 떨어져 자본확충이 안 될 뿐인 케이뱅크와 이를 인가해준 부실심사 문제를 덮어야 하는 금융관료뿐이라는 게 이들의 시각이다. ‘핀테크’ ‘혁신’ 등은 이런 이해관계를 가리는 포장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경제학)는 “인터넷전문은행은 물론 핀테크 산업이 가장 많이 발전한 나라는 미국인데, 미국은 은산분리 대원칙을 제대로 지키는 나라”라고 짚었다.

정세라 성연철 기자 sera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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