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부모님이 널 낳은 걸 후회할 거야"..퀴어축제와 칼이 된 말들

김채린 입력 2018. 10. 25. 07:04 수정 2018. 10. 25.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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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부모님은 너희가 이러고 다니는 거 아시니?"
"부모님이 널 낳은 걸 후회하겠다."
"너희들이 태어난 거 자체가 재앙이다."

지난달 8일 인천에서 열린 '제1회 인천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이 축제 현장에서 들은 말입니다. 이날 축제에 나온 사람들은 경찰 추산 3백여 명. 이보다 3배 이상 많은 천여 명은 같은 장소에서 퀴어축제 반대 집회를 열었습니다. 이들은 축제 참가자가 들고 나온 깃발을 빼앗아 부러뜨리거나, 행사 차량을 에워싸며 진행을 막기도 했습니다.

인천퀴어문화축제에 반대하는 집회 참가자들이 퀴어축제 진행 차량을 에워싸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가장 주된 '반대'의 방식은 언어적 폭력이었습니다. 성소수자 건강 문제를 연구해온 김승섭 고려대 보건과학대 교수 연구팀이 이 축제 참가자 30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98%인 298명이 성소수자 비하 발언을 들었다고 답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떠나라!" "인천에서 꺼져라! 인천을 넘보지 마라! 인천은 안 된다!" "저것들 다 때려서 X치고 집에 보내버려야지!"와 같은 위협과 욕설부터, "소돔과 고모라 같은 재앙이 저들에게 일어나게 하소서" "동성애하면 지옥간다!" 등 저주 섞인 말들도 있었습니다. "너 같은 사람을 낳고도 부모가 후회하지 않느냐"와 같은 부모, 가족에 대한 모욕 역시 참가자들에게 큰 모멸감을 안겼습니다. 한 여성 참가자는 "내가 이성애자로 만들어줄 수 있다"라는 말과 함께 특정 신체 부위를 성추행 당했다고 연구팀에 밝혔습니다.


차별과 폭력의 말들은, 칼이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찔렀습니다. 연구팀이 관련 척도를 활용해 퀴어축제 이후 참가자들의 심리건강상태를 측정한 결과, 응답자 305명 중 84%(257명)가 '급성스트레스장애(acute stress disorder)'로 판정됐습니다. 축제 이후 최대 4주 동안 정서반응의 마비, 이인증, 비현실감, 해리성 기억상실 등의 장애가 나타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특히 응답자의 66%(202명)는 자연재해나 사고, 전쟁 등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뒤 나타나는 증상인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를 겪을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김승섭 교수는 "상태가 좋을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은 했었지만, 결과는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안좋았다"면서 "인천퀴어문화축제의 경험은 하루종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모욕하는 사람들로부터 계속 공격을 받는 상황이었다. 그 기억이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참가자들의 마음속에 남아 그들을 계속 힘들게 했던 것 같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참가자들이 연구팀에게 털어놓은 이야기들을 보면, 차별과 폭력의 경험이 그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토요일(축제 당일)에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먹은 것을 모두 토했다. 일요일에는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월요일에는 아침 6시에 일어났는데도 3시간 넘게 외출하지 못해서 회사에 지각했고, 출근해서도 업무에 집중하지 못했다. 화요일에서는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출근하다 압사의 공포를 순간적으로 느꼈다."

"폭력적인 장면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기억을 회상할 때마다 울음이 터져나온다. 사람이 많은 곳을 지날 때 숨이 막힌다. 모든 소리에 예민해졌다. 시끄러운 곳에 있으면 생각이 마구 엉키다가 정신이 멍해지고 현실감이 없어진다."

"마음 속에 독이 가득하다. 무기력해서 밥을 제대로 챙겨먹지 못했고, 계속 술을 마시고 싶다. 대중교통이나 길에서 누군가가 나를 유심히 보는 것 같고, 누군가 갑자기 나를 공격하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자기 전에 그날의 경험들이 자꾸 떠오른다. 길에서 그냥 지나가는 이성애자 커플이나 중장년층, 노년층을 보기만 해도 '혐오 세력'이 아닐까 두려움에 휩싸인다."

"얼마 전 우울증이 완치된 것 같다는 진단을 받고 약 복용을 중단했었는데 다시 정신과에 가게 됐다. 일주일에 서너번씩,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려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가능한 모든 퀴어 커뮤니티에 가입해 내가 잘못된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려 한다."

"나는 교회를 다니는 크리스천 퀴어이다. 그동안 성소수자를 정말로 미워하고 저주하는 사람은 '일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것 같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중 예수님의 사랑과 평등을 진정으로 말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지 믿을 수가 없어졌다. 찬송가에 트라우마가 생길 것 같아 그 이후 교회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찬송가를 들으면 하나님의 은혜보다 '혐오 세력'들의 눈빛이 떠올라서…"

- 연구팀이 응답자에게서 언론 공개 동의를 받은 서술형 답변 중

2018년 서울퀴어문화축제 때 서울광장에 설치됐던 ‘레인보우 드레스’. 네덜란드 예술가들이 만든 3.5미터의 대형 드레스로, 성소수자를 형사 처벌하는 75개 국가의 국기를 모아 만들었다. 어떤 나라에서 성소수자 처벌법이 폐지된다면, 해당 국가의 국기를 레인보우기로 바꾼다.


성소수자들의 건강과 그들이 겪는 차별·폭력의 연관성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닙니다. 미국의 공중보건학자 일란 메이어(Ilan Meyer)는 '소수자 스트레스(Minority stress)'라는 관련 개념을 제시하기도 했는데요. 성소수자들은 자신이 차별, 폭력, 편견에 노출되거나 배제될 우려를 예상하면서, 정체성을 애써 숨기는 등 소수자의 지위에서 오는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겁니다.

실제로 성소수자들이 겪는 부정적인 사회적 경험은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 사이에 건강불평등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다양한 국내외 연구들이 이를 뒷받침하는데, 2016년 김승섭 교수팀의 관련 연구에 따르면 한국의 동성애자·양성애자는 일반인구 집단보다 우울증상 유병률이 5~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하거나 실제 시도한 비율도 일반인구의 6~7배였고, 집단에 따라서는 일반인구의 최고 37.65배(양성애자 남성의 자살시도 유병률)를 기록했습니다.

이렇게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 사이에 극명한 차이가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요? 김승섭 교수는 '소수자 스트레스' 모형을 활용해 "성소수자에게 적대적인 한국의 사회 환경이 성소수자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주요한 원인일 수 있다"라고 분석합니다.

지난해 한국 정부가 5천 개의 표본 가구를 대상으로 수행한 '사회통합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7.2%가 동성애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사회적 관용도가 낮은 수준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봐도 마찬가지입니다. 60개국을 대상으로 한 제6차 세계가치조사(World Values Survey) 결과를 보면, "동성애자를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은 한국에서 77.6%로 매우 높게 나타났습니다. 이는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인 중국(52.7%), 대만(40.8%), 홍콩(33.5%)보다도 높은 수준이고(일본은 자료 없음), 폴란드(38.4%), 멕시코(23.3%), 미국(20.7%), 독일(19.2%), 네덜란드(6.9%), 스웨덴(3.7%) 등 다른 OECD 가입국과 비교하면 더 차이가 큽니다.

한국 정부가 5천 개의 표본 가구를 대상으로 수행한 2017년 사회통합실태조사 결과. 다른 소수자 집단 중 “받아들일 수 없다”는 답변의 비율이 동성애자보다 높았던 집단은 ‘전과자’(69.4%)뿐이다.


참가자들이 말하는 퀴어문화축제의 가장 큰 의미는 성소수자의 '가시화'입니다. 평소 잘 드러내지 않고 때로는 억압해왔던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을, 축제의 장을 통해 표현하고 해방시킨다는 것이지요.

"축제에 참여하시는 이유는, 얼마나 많은 기간 동안 자신을 억압하고 살았는가. 그 부분이 초점인 것 같아요. 어느 순간 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것. 평소에 느끼는 위협보다 조금 덜한, 덜 위협적인 순간에 자신을 한번 해방해보는 것." (강명진 서울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장, 2018년 7월 KBS 인터뷰 중)

하지만 올해 인천과 대구 등 일부 지역에서 나타났듯, 퀴어문화축제가 오히려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 혐오 표현이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장으로 변질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즐거워야 할 축제에서 되려 마음의 병을 얻고 돌아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는 김승섭 교수는, 인터뷰 말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소수자를 싫어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할 건 아니잖아요."

내년에 스무 번째 퀴어축제를 맞는 한국 사회의 모습, 조금은 달라질 수 있을까요?

<참고 문헌>
- 김승섭, <아픔이 길이 되려면>(2017)
- 이호림 외, 한국 동성애자·양성애자의 건강불평등: 레인보우 커넥션 프로젝트I(2017)

[연관 기사] 19년째 이어진 ‘편견·갈등’…퀴어문화축제 과제는?

김채린기자 (di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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