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하 '사랑하기 때문에' [노래의 탄생]

오광수 기획위원 2018. 11. 4.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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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대중음악계에서 11월은 괴담의 계절이었다. 유독 이 시기에 많은 가수들이 요절을 했다. 그중에서도 유재하는 채 피어나기도 전에 져버린 음악 천재였다.

1987년 그가 선보인 첫 앨범은 클래식에 기반을 두고 다양한 대중가요의 방법론을 제시한 걸작이었다. 앨범을 발표한 지 3개월 뒤인 11월1일에 교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지만 그는 단 한 장의 앨범으로 음악계의 판도를 바꿨다.

한양대 작곡과 3학년 때 그는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키보디스트로 음악계에 발을 내디뎠다. 훗날 김형석과 정재형 등 같은 과 후배들이 그의 뒤를 따랐지만 당시만 해도 클래식 학도가 대중음악을 하면 손가락질을 받는 시기였다. 유재하는 ‘위대한 탄생’의 베이시스트였던 송홍섭에게 자신의 곡을 조용필이 불러줬으면 좋겠다고 청했다. 송홍섭은 유재하의 집에서 받아온 노래들을 조용필에게 들려줬고, 1985년 발표한 7집 앨범에 ‘사랑하기 때문에’가 수록됐다. 졸업 후 유재하는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에서도 활동했다. 그는 조동진, 김민기, 이문세, 김현식, 김광민, 한영애 등 음악계 선배들과도 폭넓게 교류했다. 그와 친분이 깊던 한 가수는 그가 만든 노래 분위기와는 달리 상당히 사교적이고 활달한 성격이었다고 회고했다. 또 미소년 같은 외모 때문에 여성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았다고. 때로는 연습실 등에 여자친구를 데리고 나타나서 선배들로부터 눈총을 받기도 했다고.

유재하는 ‘위대한 탄생’과 ‘봄여름가을겨울’의 멤버로 안주하기엔 음악적 열망이 너무 컸다. 결국 800만원의 자비를 들여 서울음반에서 첫 앨범을 냈다. 신인가수는 방송 출연으로 인지도를 높여야 하는 시절이었지만 PD들은 가창력 미달을 이유로 출연시켜주지 않았다. 이 때문에 KBS <젊음의 행진>에 출연해 1집 수록곡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부른 게 거의 유일한 공연 영상이다.

어쨌든 그가 남긴 단 한 장의 앨범은 각종 조사에서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등 음악성을 인정받고 있다. 또 유재하음악경연대회를 통해 진정성 있는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후배들이 끊임없이 배출되고 있다. 그래서 더욱 그의 죽음이 아쉽다.

오광수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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