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직원들 셔틀 태워 '아현국사 인근서 밥 먹기'..자영업자들 '시큰둥'

입력 2018. 12. 6. 22:26 수정 2018. 12. 6.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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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오늘부터 '아현국사 관내서 밥 먹기' 행사
3주간 구내식당 문 닫고 직원들 셔틀버스로 실어
소상공인연합회 "보여주기식..진정성 없다"
6일 낮 12시께 케이티(KT) 혜화지사 직원들이 줄을 서서 아현국사 방향으로 가는 셔틀버스에 오르고 있다. 사진 박윤경 기자

“여기서 타는 거 맞아?”, “진짜 버스가 오긴 오나 보네.”

6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연건동 케이티(KT) 혜화지사 앞. 오전 11시50분께부터 모이기 시작한 직원들은 10분 만에 60여명으로 늘었다. 이들이 기다린 건 대형 고속버스. 케이티는 지난달 24일 발생한 아현국사 통신구 화재로 유선전화가 끊겨 예약 전화를 못 받는 등 피해를 본 아현국사 관내 자영업자들을 돕기 위해 이날부터 3주 동안 서울 광화문 사옥과 혜화지사 구내식당을 닫았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아현국사 인근으로 이동해 인근 식당에서 식사하도록 독려했다.

이에 두 곳 직원들은 대중교통 또는 회사에서 제공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아현국사 관내로 이동해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먹은 뒤 사무실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케이티는 직원들을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따로 회식하는 팀이나 부서에는 회식비를 지원하겠다고도 했다. 현재 케이티 광화문 사옥 근무자는 4천여명, 혜화지사는 300여명에 이른다.

이날 캠페인은 “진정으로 고객에게 사과하고 위로하는 자세를 갖자”는 한 직원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아현국사 통신구 화재로 피해를 본 자영업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동시에, 통신망 복구 사실을 고객 눈높이에서 직접 확인시켜주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황창규 케이티 회장도 이 캠페인에 동참하고 있다. 황 회장은 이번 주에만 아현국사 관내 식당에서 3차례 식사 약속을 잡았다. 한 임원은 “부서 송년회도 충정로 근처 식당으로 정해 메뉴까지 주문해놨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KT “오늘부터 점심·저녁식사 아현국사 관내 가서 하세요”)

이날 아현국사 앞에서 <한겨레>와 만난 케이티 직원들은 말을 아끼면서도 “행사 취지에는 공감한다”고 입을 모았다. “자발적으로 왔다”고 강조하는 직원도 있었다. 하지만 “점심시간은 똑같아 시간이 빠듯하다”, “늘 먹던 곳이 아니라서 어디를 가야 할 지 모르겠다”고 불편함을 토로하거나 “구내식당 문 닫는 걸 어제 알았다”고 말하는 직원도 있었다. 실제로 케이티는 전날 사내방송으로 직원들에게 구내식당 폐쇄를 알렸다. 이동 시간도 문제다. 이날 광화문에서 아현국사까지는 약 15분, 혜화지사에서 아현국사까지는 30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직장인 익명 앱 ‘블라인드’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올라왔다. 자신을 케이티 직원이라고 소개한 이는 이날 아침 글을 올려 “(회사가) 광 팔기는 좋겠지만 광화문 사옥 (구내) 식당을 닫아버리면 식대는 어쩔 것이며 식당들마다 사람 넘쳐나는 데 밥 먹는 일이 갑갑하다”고 적었다.

첫날이다 보니 식당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는 직원들도 눈에 띄었다. 버스에서 내리면서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서로 묻거나 회사에서 제공한 ‘식당 목록’을 손에 들고 거리에서 식당 이름을 연신 확인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 목록에 대해 한 직원은 “케이티 화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식당 목록이다. 그런 식당 위주로 이용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6일 서울 마포구 케이티(KT) 아현국사 앞 도로에 케이티에서 직원들에게 제공한 ‘셔틀버스’가 서 있다. 사진 이정규 기자

하지만 아현국사 주변 식당 가운데는 케이티의 행사 취지나 실효성에 의문을 드러내는 곳이 많았다. 통신 장애로 인한 소상공인 2차 피해 보상안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하는 이런 행사가 ‘불편하다’는 이야기다. ‘통돼지 두루치기 김치찌개’ 손현기(62) 사장은 “주변에 보험 회사들이 많아서 월말에 잔치하러 많이 왔다. 그런 전화 예약을 하나도 못 받았다”며 “케이티 직원들이 점심에 와서 팔아주면 조금 낫긴 하겠지만 그건 얼마 안 된다. 보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숯불백반, 생선구이 등을 파는 또 다른 가게 사장은 “10일 동안 장사를 못 하게 해놓고 4~5명이 와서 밥 한 끼 먹으면 3만5천원밖에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이 가게에는 케이티 직원이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이날 케이티 직원 20명의 단체 예약을 받은 한 부대찌개 가게 사장 조복연(65)씨는 “3일부터 ‘저 케이티입니다’라고 말하면서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면서도 “화재 뒤 열흘 동안 전화 예약을 못 받았고 4일에서야 전화가 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대한 구체적인 피해 보상액은 말을 안 해줘서 서운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27일부터 ‘케이티 불통사태 소상공인 피해접수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소상공인연합회는 “전형적인 보여주기식 행사”라고 비판했다. 연합회 한 관계자는 “케이티는 공동조사단 구성 등을 제안한 연합회에는 계속 묵묵부답”이라면서 “진정성이 없다”고 꼬집었다. 이 관계자는 “연합회에 접수된 피해 사례만 200건 정도다. 식당뿐 아니라 배달음식점, 피시(PC)방, 미용실 등 업종도 다양하다”고 지적했다.

이유진 이정규 박윤경 기자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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