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 비례 2명만" 한나라당 공천 '깨알' 관여한 이명박

이혜리 기자 입력 2018. 10. 9. 11:34 수정 2018. 10. 9.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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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명박 전 대통령(77)이 2008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명단에 친박 인사를 얼마나 넣을지를 두고 “4명은 너무 많고 2명만 포함하라”는 식으로 ‘깨알’ 간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내용은 비례대표 자리를 주는 대가로 김소남 전 한나라당 의원으로부터 4억원을 받은 이 전 대통령 혐의를 1심 재판부가 유죄로 판단하는 과정에서 판결문에 적시됐다.

9일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재판장 정계선 부장판사)의 판결문을 보면, 재판부는 2008년 4월 총선 때 자유한국당 전신인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공천에 이 전 대통령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이 전 대통령에게 비례대표 공천을 좌지우지할 힘이 있었기 때문에 김 전 의원이 그 대가로 뇌물을 줬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5월23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재판부가 확정한 사실관계에 따르면 2008년 1월20일 당시 이방호 한나라당 사무총장은 정두언 의원과 함께 당선인 이 전 대통령에게 공천 관련 보고를 했다. 총선이 열리기 약 3개월 전이다. 그해 2월13일에는 공천진행상황을 포함해 당내 전반적인 운영 등에 관해 상당히 오랜 시간 보고가 이뤄졌다.

이 사무총장은 최근 검찰 수사 과정에서 “공천에는 대통령이 관여하지 않을 수 없다”며 “특히 비례대표는 전리품 같은 성격이 있다”고 진술했다. 또 “2008년 4월 총선 때 청와대에서 비례대표 명단을 줬고 그 명단도 반영했다”며 “박재완(당시 정무수석)이 A4용지 한 장짜리 명단을 직접 준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당시는 밀실 공천 논란이 불거지는 등 친박계 의원들이 강하게 항의하며 이 사무총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정 의원을 겨냥하던 때다.

이 사무총장은 김 전 의원이 비례대표 명단에서 10번째 안에 들어있는 것을 보고 박 전 수석에게 김 전 의원을 낮은 번호로 조정해도 되는지 물었지만, 박 전 수석이 “위에 관심사항인데 그대로 하시지요”라고 말했다고 했다.

“집권당의 경우 공천 과정에 대통령의 의중이 상당히 많이 투영돼 비례대표 명단이 작성된다”는 박 전 수석 진술도 있었다. 박 전 수석은 “이 사무총장이 비례대표는 청와대에서 가닥을 잡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제안했고 친박 내 비례대표 추천 명단이 전달된 뒤 이 전 대통령을 독대해 비례대표 당선 안정권에 친박 인사를 어느 정도 포함할지 물어봤다”고 했다.

박 전 수석은 이어 “이 전 대통령이 ‘4명은 너무 많고 2명만 포함하라’고 지시했다”며 “얼마 지나지 않아 장다사로(전 청와대 비서관)가 초안에 친박 계열 비례대표 후보자 내역을 반영해 이 전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이 전 대통령이 결심했다”고 했다. 원칙적으로는 공천심사위원회 등 정당의 공식적인 선정절차와 기준에 따라 비례대표 명단을 결정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이 전 대통령 승인을 통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상득 의원이 개입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재판부는 “이 전 대통령이 김 전 의원을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공천하는 과정에 개입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이 전 대통령이 대선 당시부터 공여받은 금원의 대가로 김 전 의원을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공천하여 준 것은 그 자체로 부정한 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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