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 핵연료' 임시저장시설 포화 임박..35년째 해법 못 찾아 [핵 폐기물 처리,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이주영 기자 2018. 10. 16.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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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상 - 갈 곳 없는 ‘고준위 방폐물’
ㆍ중간저장·영구처분시설 없어 원전 내부에 1만5000톤 쌓아둬
ㆍ재처리도 안전 문제로 난항…2022년쯤 원전 가동 중단 예상
ㆍ정부 “처리비용 최소 64조”…환경단체 “가동 중단도 고려를”

중·저준위 핵폐기물이 담긴 드럼통이 경주 방폐장에 쌓여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원자력 발전으로 생기는 사용후 핵연료의 처리 문제는 한국 첫 중수로 원전인 월성 1호기가 1983년 상업운전을 시작한 후 현재까지 정치·사회적 갈등에 밀려 표류해온 국내 최장기 미해결 국책 사업이다. 사용후 핵연료는 현재의 문제인 동시에 미래의 문제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달 초 국회 대정부질문 답변에서 “연내 내부준비를 거쳐 내년부터는 공론화 과정에 들어가는 것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원전 선진국’ 한국은 사용후 핵연료 처리 방안을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3회에 걸쳐 짚어본다.』

“사용후 핵연료 처리시설 없이 원전을 계속 이용하는 게 가능한가”(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 “원자력정책 하면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부분이다”(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교수님 동네에 사용후 핵연료 처리시설 놓겠다면 환영하겠나? 제 지역구에는 절대 못 들어온다. 만에 하나 생길 수 있는 위험을 피하고 싶어서다”(박 의원), “자연재해의 위험성 있다는 것 인정한다”(이명박 정부 원자력안전위원장을 지낸 이은철 서울대 공대 명예교수).

지난 11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는 ‘뜨거운 감자’다. 의원들은 해법을 추궁하고, 정부는 공론화 과정을 거치겠다고 답한다. 매년 반복되는 풍경이다. 국감이 끝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가능성이 높다. 35년이 지나도록 사용후 핵연료 처리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지 못한 이유다.

한국은 전기의 26%가량을 원전에서 얻는다. 원전은 우라늄 핵분열 때 나오는 열을 사용해 물을 끓여 생긴 증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든다. 원료로 사용된 우라늄은 핵폐기물이 된다. ‘사용후 핵연료’, 즉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방사성 농도가 높다. 최소 10만년은 생태계에서 완전 격리해 보관해야 한다. 한국은 현재 원전 24개를 가동 중이다. 하지만 사용후 핵연료의 중간저장시설(처분 전 보관시설)도, 영구처분시설도 없다. 1만5000t이 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각 원전 내부의 건식 저장시설에 쌓여있다.

사용후 핵연료를 재처리(재활용)해 원전 연료로 재사용하는 방법도 있긴 하다. 하지만 핵보유국이 아닌 한국은 건식 재처리 기술의 일종인 ‘파이로 프로세싱 기술’에 대한 한·미 공동연구만 허용된다. 이 기술 역시 안전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용후 핵연료의 부피와 독성을 줄일 수는 있지만 재처리 과정에서 방사성물질이 누출될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데다, 재처리를 하더라도 방사능이 높은 핵폐기물은 계속 존재해 처분시설은 여전히 필요하다.

문제는 원전 내 임시 저장공간도 포화 시점이 머지않았다는 점이다. 사용후 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의 포화율은 월성 원전 88.3%, 한울 원전 77.4%, 고리 원전 76.6% 등에 달한다. 특히 월성 원전은 현 추세대로라면 2021년에는 완전 포화될 것으로 예측된다. 지난해 경주 지진에 따른 가동 중단, 월성 1호기 조기폐쇄 등으로 그나마 1~2년 늦춰진 것이다. 저장시설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2022년경부터는 월성 원전의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원전 확대를 주장하는 쪽에선 원전이 값싼 에너지원이라는 점을 내세운다. 탈원전 정책에 반대하는 주요 논리도 원전이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경제성이 높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한국산업조직학회 자료에 따르면 에너지원별 균등화 발전비용(생산전력당 평균 발전비용)은 지난해 기준으로 kWh당 원자력이 68.1~77.3원으로 태양광(109.0~137.1원), 육상풍력(130.5원), LNG(88.1~89.9원), 석탄(81.4~92.8원) 등 다른 에너지원에 비해 낮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발전단가는 기술 발전과 설비 확충에 따라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추세다. 미국 에너지정보청은 2022년,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는 2025년에 태양광 발전단가가 원자력보다 낮아질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도 2020년대 후반에는 태양광 발전 단가가 원전보다 낮아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임춘택 에너지기술평가원장은 “원전은 지난 15년간 매년 평균 15% 이상 단가가 상승했다. 체르노빌, 후쿠시마 등 대형 원전 사고를 겪으면서 안전성 규제가 강화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현재의 원전 단가에는 사용후 핵연료 처리와 관련된 천문학적인 비용은 전혀 반영돼 있지 않다. 가장 풀기 어려운 숙제인 사용후 핵연료 처리에 대해선 눈감은 채 원전이 값싼 에너지원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말이나 다름없다.

정부는 고준위 방폐물 처리에 최소 64조원 이상 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 전망한 액수로 건설비, 운영비 등 방폐장 운영과 관련한 직접적 비용만 반영한 것이다. 방폐장 입지 선정과정에서 발생하게 될 사회적 갈등 비용을 감안하면 고준위 방폐장 처리비용은 훨씬 늘어날 수밖에 없다.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처장은 “핵폐기물 보관은 전기를 만들기 위한 부차적인 문제가 아닌,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한 지상과제”라며 “원전이 중단되는 한이 있더라도 풀어야 한다는 쪽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주영 기자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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