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시간 첫 월급날.. 中企아빠 "여보, 애들 학원비 어쩌지"

장형태 기자 2018. 8. 14.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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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상]
제조업체 근로자들 지난달보다 야근·휴일수당 수십만원 줄어
대기업 급여는 큰 변화 없어.. 中企와 임금 격차 점점 벌어져

울산에 있는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11년 차 직원 김모씨는 월급날이었던 지난 10일 지난달보다 10% 정도 줄어든 278만7055원을 받았다.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가 적용되면서 휴일수당과 야근수당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주 40시간 기준 김씨의 기본급은 약 160만원, 이전까지는 매주 20시간 정도 초과 근무를 해 월 140만원가량을 수당으로 더 받았다. 하지만 근로시간이 줄면서 지난달 수당이 30만원 가까이 깎였다. 그는 "월급을 받아 고스란히 세 가족 생활비로 쓰느라 저축은 한 푼도 못했다"며 "술·담배 안 하고 용돈도 한 달에 10만원인데 이제 뭘 줄여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주 52시간' 실시 이후 처음으로 급여 명세서를 받아든 근로자들이 낙담하고 있다. 어느 정도 월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지만 막상 임금 감소가 현실화되자 체감하는 충격이 훨씬 큰 것이다. 이로 인해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과 지역·주부 커뮤니티 등에는 항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 취업 포털 인크루트가 지난달 말 직장인 557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주 52시간' 실시 이후 가장 달라진 점으로 '임금 감소'(18.1%)를 꼽은 답변이 가장 많았다. 비공식 야근(12.8%)과 부업 시작(5%), 근로시간 단축 안 하는 기업으로 이직(5%)을 꼽은 응답도 적지 않았다. 상당수 근로자가 임금 감소에 따른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어떻게 결혼할지 막막" 경기도의 한 기계 부품 제조업체에 다니는 18년 차 직원 김모(43)씨는 올 6월 382만2325원이던 월급이 지난달엔 316만9411원으로 17%가량 줄었다. 기본급은 210만원대로 같은 수준이지만 수당이 155만원에서 81만원으로 거의 반 토막 나면서 월급봉투가 얇아진 것이다.

경기 남부의 한 공공 기관에서 셔틀버스를 운전하는 유모(31)씨는 8월 월급날인 25일 지난달보다 70만원 줄어든 200만원을 받게 된다. 이 회사는 기본급을 제외한 수당을 다음 달로 이월해 지급한다. 유씨는 6월까지 하루 10시간씩 일주일에 평균 56시간 버스를 몰며 270만원을 받았지만 지난달부터 하루 8시간, 주당 평균 42시간으로 근무시간이 줄어 월급이 대폭 깎인다. 유씨는 "어떻게 돈을 모아 결혼할지 막막하다"고 말했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7월 초부터 8월 현재까지 모두 100여 건의 항의 글이 올라왔다. 공장 생산직, 회사 식당 근로자, 프랜차이즈 제빵기사, 사회복지 시설 생활지도원, 건설 근로자 등 다양한 직종에서 "투잡, 알바 늘려서 고용지표 올리는 게 정부 목표인가"라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인터넷 주부 커뮤니티에도 "아이 학원을 끊어야 되겠다"라는 글이 올라온다. 한 포항 지역 주부 커뮤니티에는 지난 6일 "7월 월급이 들어온 통장을 보고 울었다. 매주 토요일 출근하고 일요일도 격주로 일하며 300만원 벌었는데, 이제 200만원이 찍히더라"며 "월 60만원 대출금 메우고 카드 값 내면 십원 한 푼 남는 게 없다. 돈이 있어야 저녁이 있는 거 아니냐"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대기업 근로자와 양극화 심화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대기업 근로자와 중견·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가 더 벌어질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SK텔레콤 등 국내 대표 기업들은 노사 합의를 통해 주 52시간 실시로 근로시간이 줄더라도 기존 급여는 그대로 주기로 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중소기업 근로자의 임금이 대기업의 60% 수준"이라며 "앞으로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가 더 확대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자리 나누기를 위한 근로시간 단축이 오히려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경제연구원도 근로시간 단축으로 내년 10만3000개, 2020년 23만3000개의 일자리가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실제로 경기도에 있는 한 중소 식품 가공 업체는 2020년 근로시간 단축에 대비해 공장 자동화를 서두르고 있다. 이 업체 대표는 "공장 자동화와 함께 정년이 지난 직원들을 재계약하지 않고 내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기업이 신규 인력을 채용하면 근로자 1인당 월 최대 80만원, 줄어든 급여를 보전하는 데 근로자 1인당 월 40만원까지 지원해주는 2년짜리 한시적 지원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현장 반응은 싸늘하다. 경기 북부 지역 한 제조업체 대표는 "결국 한시적인 지원이고 나중에는 다 우리가 부담해야 하는 돈"이라며 "지금 근로자들이 근로시간 단축을 적용받지 않는 300명 미만 기업으로 빠져나가는데 어떡하라는 것이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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