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무차별 특검 때리기, 수사 외압 아닌가

정진황 2018. 8. 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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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검사제가 1999년 도입된 후 이번 허익범 특별검사까지 13차례 특검이 정치ㆍ사회적 의혹 사건을 수사했지만 각광을 받았던 경우는 드물다. 대다수 특검이 결과 발표와 함께 특검 무용론에 시달려야 했고, 면죄부, 봐주기 논란을 빚기도 했다. 부풀려진 의혹만큼 기대에 못 미친 수사결과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목적에서 특검이 출범한 원인도 크다. 국정농단 사건을 맡았던 박영수 특검은 누란지위에 있던 정권 환경 덕에 탄핵 당한 대통령을 구속시키는 등 빛나는 공을 세운 희귀 사례다. 정권 초기엔 성과를 낸 특검이 없는 것도 특징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 시작된 BBK 특검 수사 결과는 문재인 정부 들어 10년만의 검찰 재수사로 완전히 뒤집어졌다. 특검 수사 당시엔 핵심 관련자들이 죄다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라는데, 살아 있는 권력이 수사 성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얘기다. 이는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 특검 수사에 애초 기대가 크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이 검찰 수사를 건너뛰고, 경찰 수사 와중에 제기된 드루킹 특검은 경찰의 부실수사 시비와 별개로 지방선거를 겨냥한 야당의 정치적 목적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

허 특검은 형사ㆍ공안 전문으로 현직일 땐 검찰 내에서도 주목 받는 인사가 아니었다고 한다. 쾌도난마처럼 몰아쳤던 박영수 특검과 달리, 그는 신중한 선비스타일이란 평이 나온다. 의혹 수준이나 사건 범위에서 큰 차이가 있긴 하지만, 생산된 기사 양만 단순히 보더라도 드루킹 특검은 국정농단 특검과는 비교 불가다. 기본 정보 제공도 상대적으로 빈약했고, 국정농단 특검팀과 달리 오보 확인도 NCND(확인도 부인도 하지 않음)로 일관해 담당 기자들이 답답해 했다. 민감한 수사를 하느라 유난을 떨었다는 얘기다.

갑갑한 초반 흐름과 달리 수사 후반으로 접어든 지금 분위기는 다르다. 경찰 수사에서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았던 김경수 경남지사를 피의자로 입건해 집무실, 관사 압수수색에 이어 나흘 뒤 밤샘 소환조사를 했다. 김 지사를 댓글조작 공범으로 규정했고, 뜻밖에도 6ㆍ13지방선거와 관련한 선거법 위반 혐의까지 걸었다.

댓글조작의 핵심 인물인 드루킹 김동원씨는 블로거, 페이스북, 옥중편지 곳곳에서 정권 창출 과정에 자신의 기여를 과시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런 그가 댓글조작 사건의 최종 지시자이며 보고받은 자가 김 지사임을 주장하면서 함께 죄값을 치르자는 태도로 특검에 협조한 덕이 크다. 그러나 대선 승리 후 고위직 인사 문제에서 김 지사와 틀어진 뒤 그의 행적은 진실만을 말한다고 믿기 어렵다. 특검이 진술을 뒷받침할 물증과 정황증거를 필요로 하는 이유다.

김 지사는 드루킹의 일방적인 주장임을 강조하면서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고, 소환조사에서 “정치특검이 아닌 진실특검이 돼 달라”는 말로 특검의 수사방향에 불만을 표시했다. 댓글 조작이 정권 창출의 정통성에 흠집을 낼 판이고, 도지사 직위까지 위태로울 지경이면 사건 당사자로서 방어권 행사는 당연하다. 엮어도 너무 엮은 사건인지, 여권 실세가 개입한 선거문란 사건인지 사실과 추측이 혼재된 지금으로선 판단할 수 없다.

문제는 수사가 정점으로 치닫는 지금 더불어민주당 자세다. 경찰의 참고인 조사 때 여러 여당 의원이 호위하듯 몰려와 논란을 빚더니, 김 지사 소환조사에 맞춘 여당 수뇌부, 당권 후보들의 특검 때리기는 무슨 의도를 깔고 있는지 과하다. 특검이 김 지사 공모를 정해두고 수사를 하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느니, 짜맞추기ㆍ보여주기 식 수사는 혈세 낭비라는 등 근거 없는 비방도 난무한다. 여당 대표는 정치브로커의 일탈행위에 불과하다고 사건 성격 규정까지 하고 나섰다. 야당 입장이라면 모를까, 집권당의 십자포화는 현직 검사ㆍ공무원까지 참여한 특검에 대한 수사 외압으로 비칠 수 있다. 대놓고 특검 수사를 위축시킬 일이라면 야당이 무슨 압력을 넣더라도 특검을 받지 말았어야 했다. 과거 특검도 이 정도로 집권당 뭇매에 시달렸는지 궁금하다.

정진황 사회부장 jhchung@hankookilbo.com(mailto:jhchu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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