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아베는 한국을 '적대국가'로 보고 있나

박수찬 2018. 12. 2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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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지난 10월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판결과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의해 탄생한 화해치유재단이 지난달 21일 해산되면서 가속화된 한일 갈등은 안보 분야로 번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일 우리 해군 광개토대왕함이 동해상에서 조난당한 북한 선박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레이더를 가동한 것을 놓고 “자위대 P-1 해상초계기를 겨냥했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한일 양국은 24일 외교부 국장급 협의에서 상황을 관리하며 관계 악화 방지에 공감했으나, 일본 정부는 25일 입장자료를 내는 등 비난을 이어가 국내 여론을 자극했다.

아베 정권의 ‘한국 때리기’는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다는 지적이다. 게티이미지
◆증거 제시도 안하는 ‘적반하장’ 日

일본은 21일부터 방위성을 앞세워 여론몰이에 나섰다. 이와야 다케시(岩屋毅) 방위상이 21일 기자회견을 열어 우리 군을 비난했다. 22일에는 보도자료를 통해 “화기 관제(사격통제) 레이더는 공격 직전 목표의 방위와 거리를 정확하기 측정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수색에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우리 군도 반격에 나섰다. 탐색용으로 쓰이는 레이더(MW-08)는 가동했지만 실제 사격에서 표적을 조준하는 스티어(STIR-180) 레이더는 사용하지 않았으며, 근접비행하는 일본 P-1 초계기를 감시하기 위해 광학카메라를 가동했다는 것이다. 표적을 조준하는 스티어 레이더를 방사(放射) 하는 것은 함장 승인이 필요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해군 광개토대왕함이 127㎜ 함포를 사격하고 있다. 해군 제공
광개토대왕함은 MW-08을 통해 최대 100㎞ 떨어진 대함, 대공 위협을 식별한다. 항공기나 대함미사일이 접근하면 스티어 레이더가 표적을 추적, 30㎞ 범위 안에서 시 스패로 함대공미사일로 요격한다. 광개토대왕함이 P-1 초계기에 실질적인 적대 의도가 있었다면 스티어 레이더로 조준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군 당국은 스티어 레이더와 함께 움직이는 광학카메라만 사용했다고 밝혔다. 제작사인 탈레스는 스티어 레이더가 광학기능도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탐지레이더는 수면과 하늘을 360도로 탐지하는 장비다. 360도로 탐지하는 레이더 반경 안에 P-1 초계기가 진입, 초계기의 전자전 지원(ESM) 체계가 경보를 울린 상황에서 광학카메라 작동을 스티어 레이더 가동으로 오인했을 수 있다.

하지만 전자정보 수집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평가받는 일본 해상자위대가 두 레이더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할 가능성은 낮다. MW-08과 스티어(STIR-180) 레이더는 1980~1990년대부터 세계 각국 해군에서 쓰이는 장비다. 제작사인 프랑스 탈레스 홈페이지 소개에 따르면 MW-08의 전자파는 G밴드, 스티어는 I 또는 K 밴드다. 주파수가 다른 셈이다. 

P-1 초계기도 다른 정찰자산처럼 광개토대왕함의 레이더 전자파를 수신, 전자적 특성 등을 자동으로 기록해 저장했을 가능성이 높다. P-1 초계기가 MW-08과 스티어 레이더를 혼동했더라도 사령부로 복귀한 직후 해상자위대 전자정보 데이터베이스와 비교하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데이터에 의해 분석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제시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

하지만 일본은 “증거가 있다”는 말만 할 뿐, 공개하지는 않고 있다. 일본측 주장에 대해 군 관계자는 “우리측은 운용 기록 등 증거를 갖고 있다. 통신 녹음 내용을 여러 번 들어봤으나 ‘코리아 코스트’ 외에는 인지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P-1 초계기. 가와사키중공업이 개발한 일본제 초계기다. 위키피디아
P-1 초계기 근접비행도 논란이다. 합참측은 “군함 상공으로 초계기가 저고도로 접근, 통과하는 것은 이례적 비행”이라며 P-1 초계기 근접비행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시 P-1 초계기는 1000피트(300m) 이하의 고도로 접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방위성은 “저공비행은 없었다”고 반박했으나 해상자위대의 저공비행 기준은 밝히지 않았다.

초계기가 함정식별 목적으로 500피트(약 150m) 이하 고도로 비행하며 접근하는 경우도 있으나 항공기와 함정이 조우할 경우 함정이 느끼는 위협은 초계기보다 크다. 저고도로 빠르게 함정에 접근하는 등 위협적 비행을 했다면 함정에 대한 도발 행위로 간주될 수 있다.

실제로 2014년 4월 흑해를 항해하던 미 해군 구축함 도널드 쿡에 러시아 수호이(SU)-24 전투기 1대가 12차례에 걸쳐 90분간 근접비행했다. 도널드 쿡은 전투기가 고도 150m로 비행하며 900m 거리까지 근접하자 수차례 경고 메시지를 보냈으나, 러시아 전투기는 무시했다. 당시 미 국방부는 “러시아의 도발적이고 비전문적인 행동은 국제조약 및 양국 군대 사이에 체결한 협정에 맞지 않는다”고 비난했다.

◆일본, ‘파국의 레드라인’ 넘나

광개토대왕함 레이더 논란은 정치적 환경 변화에도 영향을 받지 않던 안보협력 분야에서도 파열음이 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1965년 수교 이래 한일 관계는 과거사 문제와 독도 영유권 등으로 충돌을 거듭해왔으나 안보 분야에서는 협력 기조가 유지됐다. 양국의 공통된 안보위협 때문이다.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 도발은 한국과 일본에 가장 큰 위협이다. 2016년 11월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GSOMIA)이 체결된 것도 북한 핵과 탄도미사일 위협 증대에 공동 대처해야한다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이 욱일기를 게양한 채 항구에 정박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중지를 선언하고, 문재인정부가 위안부 합의 등을 무력화하는 것과 맞물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을 ‘전쟁 가능한 국가’로 바꾸는 작업을 추진하자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안보 분야도 영향을 받게 됐다는 지적이다.

북한이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중지하면서 일본의 가장 큰 안보위협은 해소됐다. 그럼에도 아베 정권은 방위예산을 증액하면서 군비 증강에 한창이다. 내년도 방위예산은 5조2574억엔(약 53조원)으로 사상 최고 수준이다. 헬기 탑재 호위함 이즈모급 2척을 개조해 사실상의 항공모함으로 전환한다. 전투기 탑재 장거리 순항미사일과 사거리 1000km 수준의 고속활공탄 연구 등도 추진된다. 외부의 공격을 받을 때만 방위력을 행사한다는 전수(專守) 방위 원칙은 사실상 무력화됐다.

군비 증강 기조가 빠르게 진행되면, 군사력을 과시할 기회를 엿보게 된다.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군비 증강을 진행한 이유를 국민들에게 납득시키려는 것이다. 경제나 사회 복지를 희생하며 군대의 무장을 지원한 국민들은 자신들의 희생에 대한 대가를 정부와 군이 보여주기를 기대한다.

실제로 1930년대 재무장을 선언한 독일의 히틀러가 오스트리아를 시작으로 동유럽 국가들을 위협하는 등의 행동을 취했다. 같은 시기 군비 증강을 지속했던 일본도 상해 사변과 만주 사변을 일으켜 군사적 도발을 감행하기도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 육상자위대를 사열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아베 정권 입장에서 광개토대왕함 레이더 사건은 적절한 카드다. 위안부 합의 무력화와 강제징용 판결 등으로 한일 관계가 냉각된 상황에서 일본의 위협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지지층 결집을 통한 정권 기반 다지기 효과도 있다.

문제는 아베 정권이 ‘판도라의 상자’를 건드렸다는 점이다. 안보 분야는 냉각된 한일 관계를 지탱하는 마지막 보루다. 국가의 운명과 안전보장에 대한 협력은 상호 신뢰 없이는 지속될 수 없다. 미국이라는 변수 덕분에 완전한 파국은 피할 수 있겠지만 신뢰 훼손으로 인한 안보협력 동력 저하는 불가피하다.
사람이 손목 근육을 다쳤을 때, 시간이 지나면 겉으로는 완쾌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피부 밑의 내상(內傷)은 남는다. 내상이 있는 사람은 때때로 무거운 물건을 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내상에서 회복되지 않아 자칫하면 근육을 또다시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일 안보협력도 마찬가지다. 광개토대왕함 레이더 논란은 양국 외교당국에 의해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북한이라는 위협에 의해 유지되던 한일 안보협력의 새로운 틀이 만들어지기 전에 발생한 레이더 논란은 양국 군사관계에 보이지 않는 내상을 입혔다. 레이더 논란을 계기로 “일본과 안보협력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주장이 고개를 드는 상황에서 한번 틀어진 한일 군사관계가 향후 어떻게 전개될지 예의주시해야 할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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