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글징글 밥 안 먹는 딸에 폭발..전 나쁜 엄마인가요

박선영 입력 2016. 11. 28. 04:42 수정 2017. 1. 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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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의 화해]

Q.어떻게 딸을 만족시킬까요

임신 중 대상포진ㆍ요로결석 고생

아홉 달 만에 2.6㎏으로 태어난 딸

어린이집 친구들 물고 때리기도

입이 짧고 까다로운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는 밥 먹이기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게 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그렇게 틀어지기 시작한다. 일러스트 김경진 기자

“오늘도 딸 아이는 밥상 앞에서 입을 다무네요. ‘한 입만 먹어봐’, ‘정말 맛있고 몸에 좋은 거야’. 아무리 구슬려 봐야 소용 없습니다. TV 만화를 틀어주고, 스마트폰을 손에 쥐어줍니다. 그래 봐야 딱 한 입. 입에 물고 20분, 30분…, 하염없이 시간만 흘러갑니다. ‘삼켜’, ‘꿀떡 삼키라고’. 제 언성이 높아집니다. ‘먹으라고’, ‘빨리 먹으란 말야’, ‘해주는 밥도 왜 못 먹어’, ‘왜 안 먹냐고! 왜 엄마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 건데! 왜! 왜!’ 결국 저는 폭발합니다. 울고 불고 소리를 지르는 제 모습이 꼭 미친 사람 같아요.

이제 다섯 살인 우리 딸 은서. 아홉 달 만에 고작 2.68㎏으로 태어난 내 가녀린 딸. 열혈 커리어우먼이었던 저는 만삭까지 직장생활을 했지만, 임신 과정이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임신하자마자 불면증이 시작돼 잠도 못 자고 일을 했더니, 바로 대상포진이 오더군요. 임신 중이라 아무 약도 쓸 수 없어 매일을 울며 회사를 다녔고, 남편은 저를 돌보기 위해 다니던 직장까지 쉬어야 했습니다. 임신 33주쯤엔 요로결석으로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갔어요.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양수가 터져 36주 만에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받았습니다. 제 품에 안겨온 너무도 작고 가녀린 어린 새. 이 안쓰러운 아이 때문에 저는 8년이나 다녔고, 앞으로도 계속 다니리라 믿었던 직장을 포기했습니다.

남편 직장 근처로 이사한 후 시작된 독박육아는 너무 힘겨웠어요. 딸 아이는 아기 때부터 분유도 잘 안 먹었습니다. 입안이 예민해서 지금도 밥을 잘 안 먹죠. 작게 빨리 태어난 아이, 잘 먹여보려고 안 해본 것이 없습니다. 아무리 맛있는 것을 해줘도, 끼니마다 다른 반찬을 해줘도, 도통 먹지를 않습니다. 유명 육아상담가에게 찾아가 밥 잘 먹게 하는 방법을 묻기도 했지만, 선생님은 아이 발달 상태만 얘기하시더군요.

아무 해결책을 찾지 못한 저는 어느 날부터 아이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아이와의 관계가 틀어진 것 같아요. 어린아이한테 말도 막 하고 화도 많이 냈습니다. 저 스스로도 제 정신인가 싶을 정도로 밥 못 먹이는 스트레스가 심했어요. 집에서는 안 먹는 애들도 어린이집에 가면 잘 먹는다기에 17개월부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냈죠. 아이는 하루가 멀다 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맞고 오고, 얼굴에 상처가 나서 집에 왔습니다. 그래도 저는 계속 보냈습니다. 하루 한끼라도 밥과의 전쟁을 피하고 싶었거든요. 저도 알아요. 제 이기심 때문이란 걸.

지금 저희는 다른 곳으로 이사했고, 은서는 새로운 어린이집에 다닙니다. 그런데 이제는 저희 은서가 다른 아이들을 물고 때리고 꼬집는 싸움닭이 돼버렸어요. 전 늘 다른 엄마들한테 사과하고 상처에 붙일 메디폼을 사다 주느라 바쁩니다. 올해 7월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은서는 더 예민해졌어요. 동생이 울거나 젖을 먹을 때는 은서가 원하는 것을 다 해줄 수가 없어요. 은서는 날이 갈수록 더 화를 내고 떼를 쓰고 울고 때리고 던지고 점점 난폭해집니다. 어린이집도 간다고 나섰다가 문 앞에선 안 들어간다고 하고, 잘 때면 잠꼬대도 심하게 합니다. 매사 짜증에 소리 지르고, 때리고, 집에 오면 더 심해져요. 유독 엄마인 저한테 더 지독하게 굴죠. 하루하루 전쟁입니다.

저와 남편이 늘 친구에게 양보하라고 해서 그런 걸까요. 친구와 싸우면 은서만 혼내서 그런 걸까요. 왜 우리 은서는 매사에 화가 많이 차 있는 걸까요. 잠든 은서를 보며 밤마다 미안함에 눈물을 흘립니다. 오늘도 화를 냈구나, 내가 좀 더 참을 걸…. 은서와 저는 애착 형성이 잘 안 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은서의 화를 풀어주고 엄마가 진심으로 은서를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을까요. 제가 어떻게 해야 딸아이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요. 이제 만 세 살인 아이가 너무 힘든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 괴롭습니다. 제가 모자라고 나쁜 엄마인 것만 같아요.”

(한민정씨ㆍ가명, 33세, 주부)

A.아이의 기질적 특성 이해해야

불안ㆍ경계심 높은 디피컬트 차일드

구강자극 예민해 새로운 음식 거부

잘 먹으면 똑같은 음식 줘도 돼

책임감 몰두하기보다 편안한 사랑을

“인간에겐 기질적 특성이라는 게 있습니다. 산부인과 의사가 아기를 받자마자 입과 코 안의 양수를 고무 팁을 넣어 빼내죠. 석션용 고무 팁이 입 안으로 들어올 때, 이제 태어난 지 채 1분도 안 된 아기들이 보이는 반응이 신기하게도 모두 달라요. 잠깐 앵 하고 그치는 아기, 난리를 치며 도리질을 하는 아기. 이건 양육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생물학적으로 주어지는 기질입니다.

민정씨. 부모는 자녀의 기질적 특성을 잘 이해해야 해요. 기질이 성격으로 굳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자녀와 부모가 하모니를 이루는 데 있어서는 이 이해가 필수적이에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더라도 기질이 안 맞으면 키우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땐 부모가 아이에게 맞춰야 해요. 아이는 새빨간 색이고, 부모는 새파란색이다, 그렇다면 부모가 보라색으로 바꿔줘야 합니다. 아이한테 ‘너 왜 새빨간 거야?’ 이건 맞지 않습니다.

민정씨의 딸 은서는 디피컬트 베이비(difficult baby)입니다. 까다로운 아이죠. 성격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외부로부터 다양한 정보와 자극을 입력시켜줘야 하는데, 제일 먼저 거쳐가는 게 감각 체계입니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이 감각 체계가 과도하게 예민할 수 있습니다. 외부의 자극을 스윽 받아들이지 못하고, 새롭거나 강한 자극에는 특히나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익숙하거나 편안하지 않은 자극은 부정적 자극으로 해석하고요. 같은 말이어도 친절하지 않은 톤으로 말하면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고 혼내고 공격하는 걸로 받아들이죠.

민정씨. 혹시 은서를 잘 키우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잔소리를 많이 하고 있지 않나요? 문제행동을 교정하고 싶죠? 하지만 은서는 수긍하지 않을 겁니다. 공격을 받는다고 느끼니까요. 자극이 부정적으로 해석되고, 관계가 상호호혜에서 대립으로 바뀌는 순간, 엄마는 상징적으로 적군이 됩니다. 적이 하는 제안이나 조언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안타깝게도 은서는 엄마가 임신 중 겪은 통증들로 인해 태내 환경이 그다지 안정적이지 않았어요. 태교란 게 단순한 게 아닙니다. 엄마의 통증이 유발한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이 아이에게 그대로 다 전달됩니다. 엄마 탓이라는 게 아니에요. 아이가 왜 그런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이야깁니다.

까다로운 아이들은 점점 커가면서 불안과 긴장을 공격적 형태로 표출한다. 게티이미지뱅크

감각이 과민한 아이들은 구강 자극에도 예민합니다. 구강은 맛을 느끼는 미각과 재료의 질감을 느끼는 촉각이 동시에 관여하는 중요한 감각입니다. 그런데 은서처럼 까다로운 아이들은 새로운 음식에 이 감각들이 적응을 못해 익숙해질 때까지 일단 거부합니다. 그런데 엄마는 잘 먹이겠다고 끊임없이 안 먹는 음식을 먹이려고 시도하죠. 아이는 입에 물고 있고, 침으로 도포된 음식은 불어나고, 엄마는 한번에 많이 먹이려고 꾹꾹 눌러 담아 입에 또 넣어주고, 그러다 보면 아이는 구토가 유발되고, 엄마는 폭발하고, 악순환입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외부 자극에 대한 감각이 더욱 과민해지고 내적 불안과 긴장, 경계심이 높아집니다. 애가 어릴 때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 도망가고 위축되고 바들바들 떨지만, 조금 크면 자기를 지키기 위해 손톱을 세우고 선제적으로 공격적 대응을 하기도 합니다. 준비가 안 됐는데 누군가 다가온다, 그러면 경계심과 긴장감이 높아지거든요. 어린이집에서 맞고 오던 아이가 이제는 먼저 꼬집고 할퀴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예요. 은서의 행동이 문제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본질적인 건 은서 내면의 긴장, 불안, 경계심이 높다는 거예요.

민정씨는 왜 그렇게 은서 밥 먹이는 일에 집착하는 걸까요? 예전에 상담실을 찾아 온 분 중 세 살짜리 자녀가 아무래도 지능이 모자란 것 같다며 엉엉 울던 분이 있었어요. 제가 보기엔 멀쩡한 아이였는데 말이죠. 이유인즉 집에 영유아발달표를 붙여놓고 월령에 맞춰 비교하며 살펴보는데 아이가 제 월령대에 못하는 게 있더라는 겁니다. 가위질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 월령에 그걸 못하면 엄마가 일일이 아이를 붙잡고 가위질을 가르쳤다는 거예요. 가위질이라는 게 소근육 발달의 상징이고, 일상생활에서 소근육 사용에 문제가 없으면 되는 건데 말이죠.

이런 사회적 기준, 매뉴얼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블랙홀이 되고 있어요. ‘이건 나의 과업이다, 이 개월수에는 이걸 할 수 있어야 한다, 못하면 문제가 있는 거다, 내가 잘못 키운 거다’ 하며 불안해합니다. 한민족의 모성애는 흔히 죄책감의 형태로 나타나죠. 민정씨도 36주 만에 태어난 아이에 대한 미안함, 잘 안 먹어서 제대로 못 클 것 같은 걱정이 자꾸 죄책감을 자극할 거예요. 하지만 여기에 강박적으로 매달리게 되면 결국 관계가 더 나빠질 뿐입니다.

사람은 배고프면 먹게 돼 있어요. 안 먹으려고 하면 덜 먹이면 됩니다. 잘 먹는 게 분명히 있으니 그걸 먹이세요. 그럼 많은 엄마들이 영양의 불균형 때문에 안 된다고 해요. 하지만 밥을 즐겁게 먹고 포만감을 느껴서 다음에 또 맛있게 먹어야지 생각하게 만드는 게 1단계입니다. 그래야 부모가 주는 사랑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생겨요. 은서 같은 아이에게는 매끼 차려주는 5첩반상이 공격입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억울하고 슬픈 일이죠. 그렇지만 사실이에요. 똑같은 음식, 먹여도 괜찮습니다. 영양상태 망가지지 않아요. 요즘처럼 음식 종류가 많은 세상에 몇 가지 안 먹는다고 큰 문제 되지 않습니다. 먹이는 행위와 그것을 받아먹는 과정은 아이의 자율성과 자기주도성 발달에 너무나 중요해요. 아이가 싫어하는 음식은 리스트를 만들어서 당분간 해주지 마세요. 반드시 좋아하는 게 있습니다. 그걸 적어서 맛있게 만들어주면 됩니다. 먹이기 위한 행위에 몰두하지 마세요.

민정씨는 책임감도 강하고 성실한 사람이에요. 직장에서도 일을 잘하고 인정 받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아이를 키우면서도 사랑에 앞서 책임감이 먼저 발동하고 있는 것 아닌지 점검해 봤으면 좋겠어요. 어깨가 너무 무거운 나머지 아이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 사랑을 전달해줄 겨를이 없는 건 아닌지, 너무 불안한 나머지 ‘엄마는 이래야 한다’는 사회적 룰 속에서 도리어 안정감을 찾으려고 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 보세요.

민정씨. 은서를 좀 편안하게 해주세요. 따뜻하게 말해주고 다정하게 옆에 있어주세요. 그럼 아이 표정이 밝아지면서 활짝 웃는 걸 볼 수 있을 겁니다. 늘 똑같은 음식이지만 ‘와 맛있다’ 표현하는 걸 보면서 민정씨도 행복을 느끼고 정서적 편안함을 채워 나가세요. 부모와 자식은 서로가 서로의 애착 대상자입니다. 민정씨도 은서로부터 사랑을 받는 겁니다. 36주에 태어난 아기, 아무 문제 없습니다. 2.6㎏, 괜찮습니다. 거기에 너무 몰두돼 있지 마세요. 편안하게 키우는 것, 그게 은서뿐 아니라 민정씨에게도 너무나 중요하다는 걸 꼭 기억하세요.”

정리=박선영 기자 aurevoi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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