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가 뒷談] 누굴 위해 일했나?.. 공무원 '멘붕'

세종=서윤경 기자 입력 2016. 10. 27.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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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새워 정책 만들었어도 崔가 지우면 그만였던 셈"

25일 오후 4시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던 공무원들은 일제히 사무실의 TV를 켰다.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는 녹화 영상이 방송되고 있었다. 최순실씨의 대통령 연설문 수정 의혹을 시인하는 내용이었다. 방송을 지켜보던 공무원들의 입에선 깊은 한숨이 나왔다. 허탈한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었다.

하루가 지난 26일에도 공무원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쉽게 말해 ‘멘털 붕괴’(정신적 공황상태) 상태였다. 청사 복도에서 만난 한 사무관은 “그동안 누구를 위해 일했는지 모르겠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또 다른 서기관도 “밤을 새워가며 정책을 만들더라도 최순실씨의 검열을 거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던 지경 아니냐”며 “그동안 내가 만든 정책은 국민이 아니라 최순실씨를 위한 것이었던 셈”이라고 토로했다.

세종청사는 깊은 무력감에 빠져 있다. 공들여 정책을 만들어 봐야 최순실의 빨간펜에 지워지면 그만인 것 아니냐는 자조 섞인 얘기도 나왔다.

과거 청와대를 거치며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달라졌던 정책들도 하나둘 회자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게 2014년 박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아 발표한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이다. 초안은 당시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주도로 기재부가 마련했다. 발표를 1주일가량 앞두고 차관이었던 추경호 새누리당(대구 달성군) 의원은 기자들에게 자료를 배포하고 3시간에 걸쳐 백브리핑도 진행했다. 그러나 기재부는 기자들에게 배포했던 자료를 부랴부랴 회수했다. 청와대에서 무수히 첨삭, 삭제, 수정됐다.

발표 당일 내용은 달라져 있었다. 기재부에서 준비한 ‘15대 과제, 100대 실천과제’는 ‘9대 과제, 25개 실행과제’로 대폭 축소됐다. 기재부 관계자도 “이제 와서 보니 최순실씨의 영향력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더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세종=서윤경 기자 y27k@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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