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기 농민 유족 '단독' 인터뷰, "주치의 '정치적 사건' 소견서 발급 못한다"

입력 2016. 10. 7. 22:38 수정 2016. 10. 7.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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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서울대병원 공식 의무기록지 입수 분석…
응급 이송 직후 의료진 판단과 배치되는 행위 이어지고, 사망진단서 과학적 중립성 의심돼

<한겨레21>은 지난 10월4일, 2시간여에 걸쳐 고 백남기씨의 큰딸 백도라지씨와 단독 인터뷰했다. 900여 장 분량의 서울대병원 공식 의무기록지도 입수해 분석했다. 복수의 의학 전문가들로부터 인터뷰 내용과 각종 의료 기록에 대한 자문을 받았고, 관련 인물을 추가 취재했다.

백도라지씨는 백선하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교수가 아버지 백남기씨 사망 이틀 전에 “정치적 사건”이라는 이유로 가족이 요청한 의사소견서 발급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백남기씨를 치료했던 레지던트 ㄱ씨가 외부 압력을 받은 정황도 추가로 확인했다. 서울대병원·서울대의과대학 합동 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 보고서가 고 백남기씨의 병원 공식 의무기록지와 배치되는 상황에 백선하 교수와 함께 신찬수 서울대병원 부원장이 개입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도 취재됐다. 그 일부를 온라인으로 먼저 보도한다.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주에 발행되는 <한겨레21> 1132호에 싣는다. _편집자주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 한겨레 박승화 기자

“정치적 사건이라 소견서 못 써준다”

<한겨레21>과 단독 인터뷰를 가진 농민 백남기씨의 큰딸 백도라지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이틀 전인 9월23일 어머니와 손영준 가톨릭농민회 사무총장이 백선하 교수를 찾아가 소견서를 부탁했지만 그가 ‘정치적 사건’이라며 발급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당시 백도라지씨와 함께 백선하 교수를 만났던 손 사무총장은 <한겨레21>과의 전화 통화에서 “경찰 쪽에서 부검 얘기가 나오던 상황이었고, 변호인단이 법원에 ‘부검이 불필요하다’는 가족의 탄원서를 내는데 의사의 소견이 있으면 좋겠다고 판단해 백선하 교수를 만나러 갔다”며 “당시 백선하 교수가 ‘정치적 사건과 관련해서 내가 의견을 내는 것은 맞지 않다. 법원에서 쓰라고 하면 그때 쓰겠다’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손 사무총장은 이어 “사인에 대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환자의 몸 상태에 대해서만이라도 소견을 줄 수 없느냐고 물었지만, 백 교수는 ‘정치적 사건이다’라는 말을 반복했다”고 말했다. 백선하 교수가 백씨 가족의 소견서 발급 요청을 거부한 사실은 가족의 공개 질의 등을 통해 알려졌지만, 거부 이유로 ‘정치적 사건’이라는 구실을 내세웠다는 게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이와 관련해 이보라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사무국장은 “의학적이고 전문적인 내용만 써주면 되는 건데 내용과 상관없이 발급 자체를 거부했다는 것은 일반적인 의사의 태도로 보기 어렵다. 특히 정치적 이유를 들어 거부했다는 점에서 의학적 부분에서도 중립을 지켰는지 의심스럽다”고 짚었다.

의료법 제17조 3항은 “의사·치과의사 또는 한의사는 자신이 진찰하거나 검안한 자에 대한 진단서·검안서 또는 증명서 교부를 요구받은 때에는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의사소견서는 해당 조항의 ‘증명서’로 간주된다.

수술은 생명연장의 조처

병원 응급실 후송 직후부터 의료진이 “(백남기씨의) 소생 가능성이 없다”고 판정했다는 점도 드러났다. 백남기씨가 서울대병원 응급실에 후송된 것은 지난해 11월14일 저녁 7시30분께였다. 그런데 2시간 뒤인 밤 9시30분께 “응급의학과 레지던트가 뇌 사진을 보여주면서 ‘출혈이 심해서 수술 자체가 불가하다’고 했다. 엄마한테도 ‘심장은 뛰고 있어서 사망한 것은 아니지만 가망이 없다’고 전화로 얘기했다”고 백도라지씨는 말했다.

당시 의무기록지를 보면 뇌 CT 결과에 대해 “NS(신경외과 당직의사) 상의하였고, 환자의 신경학적 상태 및 뇌 CT 소견상 수술을 하여도 예후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함”이라고 기록돼 있으며, ‘퇴원계획’ 항목에는 “1주일 이내”라고 적혀 있다. 실제 응급실 후송 직후, 서울대병원 응급실 진료진은 백씨 가족에게 “수술은 어렵다. 주말 지나고 월~화요일께 집 근처 요양병원으로 옮기라”고 권했다고 백도라지씨는 말했다.

애초 ‘수술 불가’였던 의료진의 판정은 1시간여가 지난 밤 10시30분께 백선하 교수가 등장해 바뀌었다. 백도라지씨는 “10시30분쯤 응급중환자실로 들어오라고 해서 갔더니 백선하 교수가 의사 가운이 아닌 등산복 차림으로 아빠 침대 옆에 서 있었다. 나를 보더니 ‘꼬집으면 약간 움찔하는 게 있다. 수술해보자’고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백도라지씨는 백선하 교수의 수술 결정이 백씨의 소생이나 회복과는 무관하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했다. 그는 “신경외과 레지던트가 수술동의서를 받으면서 ‘환자가 이 정도 상태일 때 수술을 하느냐 마느냐는 교수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다’며 ‘이건 생명 연장 의미밖에 없다. 소생할 수 없다. 수술 중에 돌아가실 수도 있다’고 설명해줬다. 수술 자체가 연명시술이었던 것이다”라고 말했다.

백씨의 치명상에 대해 익명을 요청한 어느 신경과 전문의는 “당시 백남기 농민이 맞은 물대포 수압인 2800rpm은 시속 160km로 날아오는 야구공을 머리에 맞은 거랑 똑같은 충격이다. 높은 곳에서 거꾸로 머리부터 떨어진 것으로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백씨의 의무기록지 등을 검토한 바 있는 이 전문의는 “‘뇌 정중앙선이 밀렸을 때’와 ‘뇌탈출증이 있을 때’ 의사들은 대체로 수술해도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다. 백남기 농민은 뇌 정중앙선이 2cm 밀려 있었고, 뇌가 원래 있던 자리에 있지 못하고 다른 곳으로 밀리는 뇌탈출증 탓에 의식을 완전히 잃고 혼자 숨을 못 쉬는 소생 가능성이 희박한 상태였다. 대개는 이럴 때 보호자에게 이런 근거를 얘기한 뒤 수술 하지 않고 요양병원으로 보낸다. 병원 진단 이후에 신경외과 주임과장이 와서 직접 수술을 집도하신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의무기록지 내용과 배치되는 수술 근거

고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논란의 당사자인 주치의 백선하 교수가 굳은 표정으로 물을 마시고 있다. 이정아 기자

백선하 교수가 백남기씨 수술을 결정한 배경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최근 백남기 투쟁본부가 공개한 동영상이 있다. 지난해 11월14일 수술 직후, 백선하 교수가 수술 결정 배경과 수술 결과를 설명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여기서 백 교수는 ‘뇌뿌리 반사’를 수술의 근거로 들었다. 그는 “응급실에 오셨을 때는 아무런 뇌뿌리, 뇌뿌리라고 해서 우리가 숨을 쉬고 의식이 깨어 있게 하고 심장이 뛰게 하는 조절 중추가 있는데, 그쪽에서 살아 있다는 신호를 체크하는 게 있다. 그런데 (처음에는) 그게 전혀 없었다. 동공이 완전히 확대돼서 통증을 줘도 전혀 반응이 없었고, 그 상태는 거의 뇌사 상태였다. 그러다가 나중에 (뇌뿌리 반사가) 일부 나타나 수술하게 됐다”고 말한다.

최근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국가인권위원회의 ‘물포 피해 농민 사건 기초조사 보고’에서도 백 교수는 비슷한 설명을 하고 있다. 수술 이틀 뒤인 지난해 11월16일 인권위 조사관을 면담한 자리에서 백 교수는 “중환자실에서 환자 상태를 살펴본 바 ‘뇌뿌리 반사’가 일부 나타나 11시경 수술을 결정했다. 통상 ‘뇌뿌리 반사’가 없을 경우 수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런데 지난 10월3일 ‘병사’ 기재 논란에 대한 서울대병원 특위의 기자회견에 참석한 백선하 교수는 수술 근거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다른 설명을 내놓았다. “환자분의 급성경막하출혈은 보통 저희가 경험하는, 외상으로 인한 급성경막하출혈과는 달랐다. 응급실에서 CT에서 발견되는 급성경막하출혈 외에 만성경막하수종이 같이 동반돼 있었다. 보통의 외상으로 인한 급성경막하출혈과는 달라 수술을 했다.” ‘뇌뿌리 반사’ 등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만성경막하수종’을 근거로 수술했다는 것이었다.

백 교수의 이런 설명조차 의무기록지 내용과 배치된다. 당시 의무기록지에 남은 CT 판독 결과나 그 밖에 환자의 상태를 기술한 어떤 기록에도 ‘만성경막하수종’(chronic subdural hematoma)이라는 진단명은 등장하지 않는다. 당시 판독 결과에도 없고, 가족에게도 설명하지 않은 부분을 뒤늦게 수술 근거로 내세운 것이다.

급성신부전 진단명 올 7월에야 처음 언급

이철성 경찰청장은 백남기씨 사망 하루 뒤인 9월26일 경찰청 기자실에서 열린 정기 기자간담회에서 “백 농민이 애초에 병원에 입원했을 때는 두피 밑으로 출혈이 있었다고 되어 있었는데, 어제 주치의는 신부전으로 인한 심장 정지로 병사했다고 밝혔다. 사인이 불명확해 부검을 통해서 사인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청장의 말은 백남기씨의 급성신부전증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신장병’과 같은 질병일 수 있다는 오해를 낳았다. 하지만 백남기씨처럼 과도한 약물치료 과정에서 신장이 망가지는 ‘급성신부전’은 일반적인 신장병, 즉 신부전과는 다르다. 그럼에도 경찰과 새누리당 쪽에서는 급성신부전증을 ‘신부전’으로 요약해 부르며, 이를 빌미로 부검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오신환 새누리당 의원은 10월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와 “사망이라는 것에 이르기까지는 신부전증에 대한 부분들도 다 지금 주치의가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의 사망 원인이 한 가지로만 특정지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며 부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백씨 가족은 서울대병원 의료진들로부터 줄곧 백남기씨의 뇌를 제외한 다른 장기가 ‘건강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백도라지씨는 <한겨레21> 인터뷰에서 “레지던트들이 수차례 ‘장기가, 특히 신장이 나쁘면 약을 다 쓸 수가 없는데 아빠는 신장이 워낙 건강해서 제한 없이 약물을 쓸 수 있다’고 했다. 아버지 체력이 워낙 건강해서 10개월 넘게 버티신 것이라는 얘기도 들었다. 12월 뇌파검사를 할 때는 ‘아버지는 신장이랑 간이 워낙 건강하셔서 장기 기증도 가능하다’고 했다. 심장도 보통 사람들보다 크다고 했다”고 말했다.

실제 응급실 내원 당시 환자 간호 기록을 보면 ‘병력정보’(△고혈압 △결핵 △당뇨 △간염 △무(없음) △기타) 항목에 ‘무’로 체크하고 있다. 신장은 물론 전체적으로 특별한 병이 없었다는 것이다. <한겨레21>이 입수한 의무기록지를 보면, 급성신부전이라는 진단명이 처음 등장한 것은 응급실 후송 뒤 8개월이 지난 올해 7월이다.

사고 당시와 사망 시점을 최대한 멀리?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 한겨레 박승화 기자

신경외과 전문의이기도 한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김경일 전 서울시립동부병원장은 서울대병원 의료진의 ‘연명시술 의도’에 의문을 제기했다.

“응급실 이송 직후 진행된 수술은 외국에 있는 자식이 임종을 지키러 오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 하는 수술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후 317일 동안 그 상태를 유지시켰다. 제가 알기로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은 의사들이 의학적으로 연구할 게 없다고 판단되는 급성경막하출혈 환자는 내보낸다. 아마 서울대병원을 거쳐간 대다수 신경외과 의사들이라면 백남기 농민한테 보인 서울대병원의 진료 과정을 납득하지 못할 것이다.”

사망 원인을 백씨 가족에게 돌리는 백선하 교수 등에 대해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의학박사)는 이렇게 비판했다.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는 주체는 의사다. 의사가 근원적 회복 가능성이 없고 수개월 내에 사망할 것이라는 의학적 진단을 내려야 보호자에게 연명시술 결정권이 생기는 거다. 그런데 의료진 스스로 무의미한 연명시술을 거부할 수 있다고 보호자에게 알려주고서, 거기에 가족이 동의했다고 뒤늦게 가족 때문에 환자가 사망한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연명의료 지식이 없거나 나쁜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보라 사무국장도 비슷하게 분석했다. “오랜 연명시술 과정에서 생긴 게 분명한 급성신부전을 이유로 사망진단서에 병사로 기재하는 등의 태도를 보면, 사망 시점을 최대한 늦춰 가해자의 책임을 덜어주려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닐까 의심된다.”

이보라 사무국장은 백씨의 의무기록지를 검토한 바 있다. “마지막엔 환자가 비참한 모습이 되어 가족이 힘들어했다. 혈액검사를 너무 많이 해서 손목의 동맥혈이 부풀어올라 계속 피가 새나오고, 혈종이 생기고, 나중엔 혈액 채취를 위해 찌를 곳이 없을 정도가 됐다. 단백질의 일종인 알부민을 하루에 네 번 준 기록도 있는데, 내가 의사를 12년간 하면서 알부민을 하루에 네 번 주는 치료를 본 적이 없다.”

부검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전문가들은 회의적이었다. 익명을 요청한 어느 신경과 의사는 “건강해서 약물치료를 잘 견디실 것 같다 했던 신장이 8개월여 만에 급성신부전이 오고 투석이 필요할 정도였다면, 연명시술 과정에서 그만큼 약물을 많이 썼다는 것을 입증한다. 수술 이후 한 번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는데 다른 사인을 찾는 것은 의학적으로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보라 사무국장은 이미 필요 이상의 검사가 이뤄졌다는 점을 지적했다. “부검은 보통 시신으로 발견돼 부검이 아니면 사망 원인을 알 수 없을 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백남기 농민은 사망하기 전에 응급실에 도착했고, 심장과 맥박이 뛰고 혈액이 순환할 때 CT 촬영을 하고 초음파를 해서 신체의 상태를 완벽하게 기록해놓은 게 있다. 의학적 검사를 통해 사고 직후 이미 신체 상태와 이후에도 매일매일 백남기 농민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단 하루도 빼놓지 않고 기록한 의무기록지가 있는데, 사고 발생에서 317일이나 지나 사망한 주검을 두고 머리뼈를 자르고 뇌를 꺼내고 가슴부터 배를 갈라 심장과 기타 장기를 다 꺼내 자르고 세포를 채취해 살피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부검으로 사인에 대해 더 얻을 정보는 없다.”

“부검으로 더 얻을 정보 없다”

의무기록지를 보면 서울대병원은 2015년 11월14일 사고 당일 백남기씨의 머리, 흉부, 복부 CT를 찍었다. 이후 모두 13번의 머리 CT, 4번의 복부 CT·초음파, 1번의 흉부 CT를 찍었다. 흉부부터 다리까지 전체 혈관 CT를 진행한 일도 있다.

김경일 전 서울시립동부병원장은 기자에게 물었다. “백남기 농민은 절대 사망하게 내버려둬서는 안 되는 VIP였던 것이다. 그런데 누구의 VIP였을까.”

백남기씨  사망진단서  작성  레지턴트
“두 분이 협의한 내용대로 써야 한다”
고 백남기씨의 사망 원인을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기재한 사망진단서에 서명한 이는 백선하 교수가 아니었다. 2014년부터 서울대병원 신경외과 레지던트로 일해온 ㄱ씨였다. 이 때문에 사망진단서의 적절성 여부가 논란이 되자 언론의 관심은 ㄱ씨에게로 쏠렸다.

하지만 지난 9월29일 백씨의 장녀 백도라지씨가 <한겨레21>을 통해 ㄱ씨가 “(사망진단서 작성과 관련해) 나는 권한이 없다. 신찬수 서울대병원 부원장과 백선하 신경외과 교수 두 분이 협의한 내용대로 써야 한다”고 말했다는 사실을 전하면서 사망진단서 작성의 진짜 주체가 드러났다.

특히 서울대병원과 서울대의과대학이 합동 특별조사위원회(특위)까지 구성해 ‘병사’로 기재한 사망진단서의 작성 경위를 조사하게 된 데는 ㄱ씨가 남긴 의무기록지가 결정적 단서가 됐다. ㄱ씨는 의무기록지에 “진료부원장 신찬수 교수님, 지정의 백선하 교수님과 상의하여 사망진단서 작성함”이라고 적었다.

ㄱ씨가 그동안 백씨의 가족과 나눈 대화 곳곳에는 진료 및 진단 과정에 의학적 판단을 넘어서는 요소가 작용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등장한다. 백도라지씨는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청문회 준비를 하는 것을 알고 ‘나라면 소견서를 적을 때 물대포라고 적어 낼 텐데 위에서 바뀔 것 같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ㄱ씨가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내 의견은 힘이 하나도 없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위 권력의 힘이 너무 세다. 도와드릴 것은 없지만, 혹시 의학적으로 청문회 전에 질문할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와서 질문하시라”는 이야기를 했다고도 전했다.

이때문에 백씨의 가족들은 ㄱ씨에 대해 “양심적인 의사”라고 생각했다고 백도라지씨는 말했다. 백도라지씨는 “지난 9월 초, 아빠가 수혈받으시는 것을 보고 가족들이 힘들어하자 ㄱ씨도 마음 아파하더라. ‘피검사를 (너무) 자주 한다. 아버님한테 죄송하다’고도 했다”고 전했다.

실제 8월 말께 백씨를 맡게 된 ㄱ씨가 작성한 9월7일 의무기록지에는 “채혈 가능한 혈관(vein) 찾아보았으나 마땅한 혈관 없음. PICC(심장 근처에 삽입한 인공혈관) 통한 채혈 시도하였으나 regurge(바늘이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는 일) 잘되지 않”는다고 적혀 있다.

또 ㄱ씨는 의무기록지를 통해 피검사, 수혈, 승압제 등의 연명치료와 관련해 가족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소견을 구체적으로 적었다. <한겨레21>이 입수한 9월7일 의무기록지를 보면, “뇌단층촬영에서 뇌 전반에 걸쳐 저음영을 보이며 의식 호전 기대할 수 없는 현재의 상황에서, 환자의 사고 전 가치관을 충분히 고려하여 환자의 신체와 존엄이 훼손되지 않는 방향에 대해 고민해나가겠음에 대해 약속함”이라고 적었다.

백도라지씨를 비롯한 가족들은 ㄱ씨가 사망진단서 논란으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 탓에 결국 전화번호를 바꾸고 ‘잠적했다’는 보도까지 나온 것에 안타까워했다. 백도라지씨는 인터뷰 과정에서 나온 ㄱ씨의 이야기에 대해 “최대한 보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괴롭히고 싶지 않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백도라지씨는 “마지막 가시는 길에 그 의사를 만난 것도 아빠의 마지막 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ㄱ씨는 현재 전화번호를 바꾼 뒤 정상적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주현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병원에서 정상적 진료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의협 내 서울대 출신 의사들을 통해 확인했다. ‘잠적했다’는 보도가 나와서 확인해봤는데, 서울대병원이 ㄱ씨가 출근을 정상적으로 한다는 확인을 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병원 쪽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밝혔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성연철 sychee@hani.co.kr·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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