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간 겨눠진 총구.."5월 아파 달력서 사라졌으면"|한민용의 오픈마이크
[앵커]
40년 전, 군부가 쏜 총은 그 총에 맞고 숨진 사람, 총에 맞고도 살아가는 사람, 당사자는 물론이고 가족들까지도 정도는 다를 수 있어도 어떻게든 모두의 인생을 뒤흔들어놨습니다.
40년 전 군부가 이들을 향해 겨눴던 그 총구는 이제 거둬졌을지 오픈마이크에서 그날 그 피해자들을 만나봤습니다.
[기자]
20살 수자의 꿈은 미용실 원장, 그날도 미용실에 가고 있었습니다.
[박수자/5·18민주화운동 피해자 : 딱 나온뒤 바로 맞은 거야, 그때 총을. 배, 복부에…]
총에 맞아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지만, 필사적으로 도망갔습니다.
[박수자/5·18민주화운동 피해자 : (다리) 신경이 죽어버리니까 이놈을 밀고 도망을 가는데 갈 수가 없어. 손바닥 다 껍데기 벗겨져…]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땐 한 달이 지난 뒤였습니다.
[박수자/5·18민주화운동 피해자 : 눈 떠서 보니까 창자가 바깥에 있더라고. 창자가 나무처럼 새파래. 두어달 지나니까 불그스름해지니까 집어넣고.]
재활 끝에 걸을 순 있게 됐지만, 오래 서 있을 수 없어 꿈은 접었습니다.
[박수자/5·18민주화운동 피해자 : 미장원은 못하고, 서서 하니까. 주방 설거지 같은 거 하다가…]
대신 그날 이후, 다른 꿈에 시달립니다.
[박수자/5·18민주화운동 피해자 : 지금도 쫓기는 꿈을 꾼다니까, 수면제 먹고 자도. 자기가 무서워.]
국가가 무서워 숨어 산 지난 40년, 몸은 다 망가졌습니다.
[박수자/5·18민주화운동 피해자 : 행여나 해코지 할까봐 숨어 살다시피하고 여기도 다 수술했어. 안한 데가 없어. 40년간.]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날이 없었다면' 곱씹는 잔인한 세월이었습니다.
[박수자/5·18민주화운동 피해자 : (지금쯤) 원장 되어가지고 이렇게 한스럽게는 안 살았겠지. 내 삶을 바닥을 만들어놨다고 봐야지. 5·18이…]
그저 남편에게 저녁 먹으라고 말하던 5남매 엄마의 삶도 그렇게 바뀌었습니다.
[곽성호/5·18민주화운동 피해자 : 주방에서 맞은 거예요. 주방에서. (저는) 앉아있고, 집사람은 서서 얘기를 한 거예요. 이렇게 어른어른하니까 높은 데서 딱 보고 조준해갖고 쏴버린 거죠.]
총알에서 퍼진 파편 수십 개는 영원히 빼내지 못했고, 다시는 오른팔로 5남매를 안아줄 수 없었습니다.
[곽성호/5·18민주화운동 피해자 : (총알) 빼버려야지 손가락을 넣으니까 뼈가 다 깨져버렸더라고. 작살 나버렸어.]
병상에 누워 기억을 잃어가는 와중에도 아픈 어깨를 어루만지는 건 잊지 않았습니다.
[곽성호/5·18민주화운동 피해자 : 억울하죠. 억울해. 이러지 않았더라면… 어떨 때는 나도 모르는 순간에 눈물이 고여있기도 하고 그럴 때가 많아요.]
오빠가 도청에 가보겠다고 나간 이후 12살 문희는 엄마 없는 시간에도 익숙해져야 했습니다.
오빠가 머리에 총 두 발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되자 엄마는 식당을 접고, 머리를 밀었습니다.
눈 감기 전까지 아들 죽음을 밝히는 자리라면 어디든 앞장섰습니다.
[김문희/고 김완봉 군 동생 : 전두환이나 누가 내려온다 하면 2, 3일 전에 딱 엄마를 어디로 데리고 가버려요. (시위를) 미리 차단시켜버리는 거죠. 그럼 저는 그때 혼자 있어야 되는…]
명절은 가장 싫은 날이 됐고,
[김문희/고 김완봉 군 동생 : 명절이면 아침에 우시고, 망월동 가셨다가 또 거기서 우시고. 그런 삶이 계속 연속이 되다보니까 옆에서 보는 저도 힘들더라고요.]
슬픔과 외로움이 짙게 드리웠습니다.
[김문희/고 김완봉 군 동생 : 오빠가 만약에 살아 있었다면 이제까지 살아왔던 삶 자체에서 즐거움이 훨씬 더 많았겠다. 슬픔보다는. 외로움보다는, 아픔보다는.]
40년 전 국가가 당긴 방아쇠는 오늘까지도 거둬지지 않고 있습니다.
[박수자/5·18민주화운동 피해자 : 5월달이면 안 아픈 통증도 와. 그 달을 좀 없애줬으면 좋겠어. 안 그러면 18일이라도 없애버리던가. 무서워서 싫어. 이렇게 만든 사람은 밥 먹고 따뜻하니 잘살고 있잖아. 우리 가슴에 있는 고름 좀 터뜨려줬으면.]
(영상그래픽 : 이정신, PD : 홍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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