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생은 틀렸다' 생각 지배하면..그들은 또 태어난다 [커버스토리]

전현진 기자 2020. 4. 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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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ㆍ박지선 범죄심리학자가 본 장대호·조주빈

박지선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

유영철·장대호·조주빈

자신을 악마라 부른 범죄자들

그 기저에는 열등감 가득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범죄심리학자 박지선 숙명여대 사회심리학과 교수는 장대호의 회고록과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의 유서 등을 분석하면서 둘 사이에 많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모텔 종업원인 장대호는 요금 시비가 붙었다는 주장을 하며 자고 있던 손님을 잔인하게 살해했고, 조주빈은 텔레그램 메신저를 통해 미성년자들을 포함한 여성을 성착취 대상으로 삼아 돈을 챙겼다. 범죄 행태는 다르지만, 그들이 말하는 방식과 관점은 분명 닮았다. 박 교수의 분석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 장대호와 조주빈은 어떤 점이 가장 비슷한가.

“우선 장대호와 조주빈 두 사람 모두 실생활에서 인간관계를 맺지 않고 주로 온라인상에서만 활동했다는 점이 닮았다. 조주빈과 장대호는 모두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존재감이 없는 삶이었지만, 온라인에서는 관심을 모으기 위해 여러 활동을 했다. 장대호는 관상카페를 운영하거나 댄스 동영상을 올리고 자신의 범행이 담긴 세세한 기록을 공개했다. 조주빈은 ‘박사’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텔레그램방을 통해 성착취 범행을 저지르면서 절대적인 우위에 서 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 조주빈의 유서에서 그가 인간관계를 제대로 맺지 못했다는 점이 드러나는 부분은 어떤 것인가.

“조주빈은 유서에 ‘범죄인 조두순의 응징에 나의 돈을 모두 뱉어내었습니다. 의뢰인이 죽을 것이기에 이 약속이 지켜질지는 미지수이나 믿을 만한 행위자에게 부탁을 해놓았습니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이는 자신을 마치 정의로운 인물처럼 포장하려는 의도가 담긴 표현인데, 장대호의 회고록과 유사한 점이 있다. 그가 말한 행위자는 소위 ‘직원’이라 불리던 텔레그램 속 인물들인 것으로 보이는데, 서로 본 적도 없는 이들과의 추상적인 관계를 ‘행위자’라는 그럴듯한 단어로 표현하는 것은 현실에서 대인관계가 피상적이고 겉멋만 잔뜩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장대호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며 관심을 끌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조주빈도 이런 특성이 있나.

“조주빈은 ‘법의 영역보다 신의 영역으로서 나는 죽어야 한다는 것도 인정합니다’라며 자신의 행위를 포장하기도 했다. 경찰 포토라인에 섰을 때는 ‘악마의 삶을 멈춰줘서 고맙다’고 하기도 했다. 이는 2003~2004년 20여명을 살해한 유영철의 변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유영철은 법당에 들러 ‘살인을 멈추게 해달라’고 빌거나 교회 인근에서 범행을 저지르며 ‘신이 나를 버렸다’는 식의 행동을 보였다. 이런 과도한 자존감은 조주빈이 ‘박사방’을 운영하며 온라인상에서 타인의 목숨을 쥐고 흔들고 체포가 이뤄지지 않자 자신이 ‘신의 영역’에 와 있다는 착각을 했던 대목에서 드러난 것이기도 하다. 또 이렇게 자신을 ‘악마화’하는 범죄자들의 심리에는 ‘나의 행동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으니 책임도 없다’는 의도가 담겨 있다. 하지만 그 기저에는 열등감이 가득하다.”

- 조주빈이 쓴 ‘유서’는 어떤 특징 있나.

“조주빈은 이 유서를 ‘소설’처럼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자신을 극화하는 식으로 썼는데, 이런 태도는 수사의 방향을 돌리려는 의도도 읽히지만 본질적으로는 장대호의 회고록처럼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주장하기 위한 목적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장대호는 비교적 직설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썼지만 조주빈은 현실 속의 모습과 글 속에서 표현한 자신의 모습이 큰 차이를 보인다. 표현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두 사람 모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지나치게 신경 쓴다.”

조주빈

실생활에서 인간관계 맺지 않고

온라인상 ‘우위적 존재감’ 확인

자신을 정의로운 인물로 포장하고

피해자에게 사과 않는 모습 같아

- 피해자에게 사과하지 않으려는 모습도 공통점이다.

“장대호는 ‘또 그러면 또 죽어’라며 자신이 살해한 피해자를 모욕했다. 조주빈은 유서에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사과는 불필요합니다’라고 했다. 또 조주빈은 검찰 송치 과정에서 포토라인에 섰을 때도 피해자에 대한 사과가 아닌 유명 방송인과 전 광주시장 등을 거론하며 ‘물타기’를 했다. 피해자에게 미안하지 않으냐는 질문에도 고집스럽게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은 그게 자신의 잘못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끝까지 인정하지 않는데, 이는 죄책감이 없다기보다는 피해자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사과하는 순간 자신이 인간 이하의 존재라는 것을 직면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 장대호에게 열광하는 사람들이나 조주빈으로 인한 피해자들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놀랍다.

“태어나면서부터 계층이 정해지고, 아이들의 꿈이 ‘건물주’가 되는 사회다. 자신을 수양하는 것이나 인성을 키운다는 것, 자아실현을 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인식이 확대되고 있다. 이런 사회에선 언제 범죄가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구조가 된다. 상상이나 온라인에서 존재하는 잠재적 범죄가 현실에 나타난다. 끔찍한 살인 사건이나 피해자를 잔혹하게 착취하는 범죄, 엽기적인 사건이 벌어졌을 경우 범인을 묘사하면서 악마·일베회원·사이코패스·조현병 환자 등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규정은 범죄자가 우리와 다른 특이한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실제로 장대호나 조주빈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 많은 이들이 온라인상에서 범죄자에게 공감하고 피해자를 조롱하는 것은, 우리 주위의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고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미래 계획 예측할 수 없는 사회

상상 속 범죄, 현실로 나타나게 돼

신상 공개 목소리 높아지는 건

적절한 처벌에 대한 사회적 갈증

- 이런 범죄자들이 등장하는 원인은 무엇인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게 무의미한 사회가 되어 갈수록 ‘권선징악’이라는 도덕 개념이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당장 앞날이 불안하고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강해질수록 사회에서 가장 고립된 상황에서 지내는 이들이 범죄를 선택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가장 무서운 사고방식이 ‘이번 생은 틀렸다’는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참아야 하는데, 어차피 이번 생은 틀렸다고 생각하게 되면 이 행동을 멈출 이유가 없는 것이다.”

- 온라인을 통해서 확대·재생산되는 범죄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까.

“박사방 같은 범죄에 해당될 텐데, 성범죄는 여러 사람이 공범으로 가담해 더욱 폭력적으로 변할 수 있다. 가담자들이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죄책감을 나타내지 않고 더 과격해지는 것이다. 텔레그램 등에서 벌어지는 성범죄를 처벌하는 모습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이런 행동은 그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범죄라는 사실을 가시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텔레그램을 이용한 범죄는 못 잡는다고 했는데 결국 검거됐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더욱 절실한 것은 합당한 처벌이다. 각종 범죄에 대해 범인의 ‘신상 공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는데, 이는 ‘적절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으니 사회적인 차원에서의 징벌이라도 필요하다’는 것일 수 있다. 또한 박사방 같은 범죄의 경우 사이버 공간에서의 일탈 행위나 카메라가 장착된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파생한 범죄에 대해 발 빠른 입법과 엄중한 처벌이 시급하고, 발전된 기술에 따른 윤리규범을 교육하고 논의할 필요가 있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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