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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의 심장 쐈다던 김재규..10·26, 반역인가 혁명인가

이정국 기자 입력 2020. 06. 26. 21:09 수정 2020. 06. 26.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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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유족, 40년 만에 재심 청구

<앵커>

10·26 사건으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던 김재규가 사형당한 지 올해로 40년이 됐습니다. 유족들은 10·26 사건은 반역이 아닌 혁명이었다며 최근 재심을 청구했는데, 재심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정국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기자>

1979년 10월 26일 저녁.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궁정동 안가에서 총성이 울렸습니다.

[김재규/당시 중앙정보부장 : 각하, 대국적으로 좀 정치하십시오.]

김재규가 쏜 권총 두 발을 맞은 박 전 대통령은 숨을 거뒀습니다.

[전두환/당시 합동수사본부장 (1979년 10월 28일) : 과대망상증에 사로잡혀 대통령이 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허욕이 빚은 내란 목적의 살인 사건이다.]

당시 전두환이 이끄는 합동수사본부는 이렇게 결론짓고 범행 직후 내려진 비상계엄령에 따라서 김재규를 군법회의에 넘겼습니다.

[김재규/법정 진술 :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혁명을 한 것입니다. 대통령 각하께서 계시는 한 자유민주주의는 회복되지 않습니다. 각하가 계시는 한 유신 체제는 계속됩니다.]

군사 법정에서 내란을 일으킬 생각이 없었다고 거듭 진술했지만 김재규는 1심과 2심에서 내란 목적 살인죄로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곧 이은 대법원 확정판결 뒤 이례적으로 3일 만에 사형이 집행됐습니다.

[강신옥/당시 김재규 변호인 : 완전히 억울한 재판을 받은 거지. 군법회의 받을 이유가 없는데 민간 재판을 받아야 되는데, 비상 군법회의를 통해서 재판받았고….]

당시 대법원은 내란죄 여부를 놓고 8대 6으로 의견이 엇갈렸습니다.

소수 의견을 낸 대법관들은 신군부에 끌려가 고초를 겪고 법복을 벗기도 했습니다.

신군부가 정권 장악을 위해 단순 살인을 내란죄로 과장하려고 재판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나옵니다.

[조영선/재심청구 변호사 : 보안 사령관인 당시 전두환, 기획실장이었던 이학봉이 계속 왔다 갔다, 거기(법정) 뒷방에 와서 격려하고 지침을 내렸다는 증언들이 있거든요.]

숨죽이며 살아오던 유족들이 40년 만에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조영선/재심청구 변호사 : 내란 목적을 무죄로 하려는 것이거든요. 살인죄를 무죄로 한다는 것은 아니고요.]

민간인에 대한 군사 재판과 신군부의 재판 개입 등이 문제였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한상희/건국대 법학과 교수 : 지금의 법리로 보면 잘못 적용된 그런 부분들이 상당히 많다. 결론을 정해놓고 결론에 맞춰서 조합된 이런 느낌들을 강하게 주는 사건들이거든요.]

당시 수사와 재판 과정 모두 다시 봐야 할 부분이 많다며 일부 전문가들은 재심 개시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재심에 따라 김재규와 10·26 사건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VJ : 윤 택) 

이정국 기자jungkook@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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