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 받을 권리, 돌봄 줄 권리 [아침을 열며]

2021. 10. 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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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조금 잔인한 동화를 읽으며, 특히 나무가 미안해하며 남은 밑동을 의자로 내어주는 마지막 장면에서 어머니가 그리워지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평생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기만 하다 아주 짧게나마 어머니를 옆에서 돌보아 드릴 수 있었던 그 시간이, 어머니께는 병으로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어머니를 온전히 인간으로 조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던 더없이 소중하고 애틋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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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조금 잔인한 동화를 읽으며, 특히 나무가 미안해하며 남은 밑동을 의자로 내어주는 마지막 장면에서 어머니가 그리워지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2019년 돌아가신 어머니 2주기가 곧 다가온다. 아직 철이 없을 때 유학길에 올랐고 그 뒤로 어머니를 가까이서 모실 기회가 많지 않았다. 가끔 한국을 방문할 때도 내 일을 보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어머니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어머니께서 늘 건강하신 편이어서 언젠가 어머니와 같이할 시간이 많이 남아 있을 거라는 착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 같다.

그러다 어머니께서 갑자기 중병 진단을 받으셨는데, 마침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시점이어서 급히 귀국해 어머니를 옆에서 모시며 간병을 하게 되었다. 평생 어머니가 해주시는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기만 했는데, 더 요리할 힘이 없는 어머니에게 엉성한 음식이나마 대접해 드릴 수 있었고, 살림 프로인 어머니 보시기에 한참 못마땅하셨겠지만 빨래랑 청소 같은 집안일도 그럭저럭 해냈다. 그렇게 두 달 좀 넘는 시간을 어머니 곁에서 보내고 학회 참석과 개강 준비를 핑계로 형과 동생들에게 어머니를 부탁하고 미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두어 달이 정신없이 지나고 가을이 깊어 가던 어느 일요일, 저녁식사 준비를 하다가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았다.

날이 차가워지고 나뭇잎 색깔이 바뀌는 이때가 되면 특히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어머니에 대한 다른 좋은 기억도 많은데 유독 어머니랑 같이 보낸 그 마지막 여름을 자주 떠올린다. 평생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기만 하다 아주 짧게나마 어머니를 옆에서 돌보아 드릴 수 있었던 그 시간이, 어머니께는 병으로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어머니를 온전히 인간으로 조금 더 깊게 이해할 수 있었던 더없이 소중하고 애틋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해 어머니 돌아가시기 며칠 전, 반려동물이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의 오랜 소원을 더 외면하지 못하고 아기 고양이를 입양했다. 평생 처음 반려동물과 살아보는 것이라 모든 게 낯설었지만, 어느새 이 예쁜 고양이 없는 생활을 상상하기 힘들 만큼 한 식구가 되었다. 반려동물이 주는 여러 가지 즐거움이 있지만 그중 가장 큰 것은 돌봄의 노동에서 오는 게 아닌가 싶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고양이가 나를 필요로 하고 내 보살핌으로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고 있다는 데서 오는 행복감이 내 아이를 돌보고 키우는 기쁨만큼은 아닐지 몰라도 상당히 크고 깊다.

우리 삶을 의미 있고 살 만한 것으로 만드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누군가를 돌보고 보살필 수 있는 것도 그중 하나라는 생각이다. 아툴 가완디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책에서 미국 요양원에 있는 노인들이 반려동물을 돌보면서 건강이 더 좋아졌다는 사례를 보고하고 있는데 동물을 보살피면서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해 본다. 돌봄노동이 이렇게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사는데 중요하다면, 요할 때 누군가의 돌봄을 받을 권리뿐 아니라 돌봄을 줄 수 있는 권리도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시민들에게 보장해 주어야 하는 건 아닐까? 그리고 그 권리를 진정으로 보장하려면 그것이 특정 집단에 의무로 강요되거나 삶의 중요한 다른 선택지의 희생을 대가로 요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임채윤 미국 위스콘신대학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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