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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은 위험, 돌봄은 안전?.. 성별 편견에 가려진 여성 산재

최윤아 입력 2021. 07. 13. 05:06 수정 2021. 07. 13.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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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데이터, 빈칸을 채우자]젠더 데이터, 빈칸을 채우자 ② '산재=건설=남성'이 지운 것들
가사·간병·특수고용..보험 없는 분야 일하고
한해 산재 판정 보니 남 81%-여 19% '4배차
데이터는 권력이다. 데이터는 현실을 압축해 보여주고, 단박에 상대를 설득한다. 그래서 데이터는 때로 기만이 된다. 데이터가 없으면 명백히 존재하는 현실도 지워진다. 데이터가 투박하면 현실의 날카로운 불평등도 뭉개진다. <한겨레>는 다섯차례에 걸쳐 치안, 산재, 채용, 출산 영역 등에서 지워진 젠더 데이터를 찾아내 바로잡으려 한다. 여성의 삶이 나아지고 있는지를 측정하기 위해 꼭 필요한데도 여전히 빈칸으로 남아 있는 통계, 성별 분리가 되어 있지 않아 여성 현실을 읽어내는 데 무용한 반쪽짜리 데이터를 추적한다.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에서 쏟아내는 여성가족부 폐지 주장은 이런 반쪽 현실을 아예 모르거나 애써 외면한 결과다. 남성이 기본값인 각종 데이터에 젠더 데이터 복원을 요구한다.
① ‘성별 분류’조차 않는 112신고 통계
② ‘산재=건설=남성’이 지운 것들
③ 합격자 성비 5 대 5? 사라진 면접자
④ 출산휴가 시행 68년, 통계가 없다
⑤ “이게 왜 문제죠?” 담당자가 물었다
“하나 둘 셋, 아악!” 2019년 가을 요양보호사 ㄴ(60)씨는 환자를 침대로 옮기다가 비명을 질렀다. 무언가 끊어졌다는 직감이 들 만큼 날카로운 고통이었다. 바닥에서 데굴데굴 구를 정도로 아팠지만 의사는 주사 한 대만 처방했다. 고통은 옅어지지 않았다. 자신보다 큰 노인을 목욕시킬 때, 목욕을 끝내고 다시 침대로 옮길 때, 하다못해 식사 보조를 할 때도 찌르는 듯한 고통이 왔다. 사고 발생 5개월 만에 ㄴ씨는 다시 병원을 찾았다. 엠아르아이(MRI)를 찍었더니 어깨회전근개 파열이었다. ㄴ씨는 병원 원무과를 통해 산재를 신청했다. 4개월 뒤 근로복지공단에서 서류가 왔다. ‘업무상 질병 불승인’ 통보였다. 업무상 질병 여부를 판단하는 질병판정위원회는 ㄴ씨 근로기간이 짧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했다. ㄴ씨가 해당 요양원에서 근무한 기간은 1년10개월 정도다. ㄴ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어르신을 옮기다 사고로 다쳤는데도 근무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업무상 질병 승인을 받지 못한 게 두고두고 억울하다. 사고 이후 팔이 올라가질 않아 결국 요양병원도 퇴사했다”고 말했다.

일하다 질병을 얻으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단,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고,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은 경우에만 그렇다. 우리나라 경제활동인구(5월 기준)는 남성 1629만8천명, 여성 1240만명이다. 2019년 산업재해(사망·부상·질병)가 인정된 노동자는 모두 10만9242명이다. 남성(8만3824명, 76.7%)이 여성(2만5418명, 23.3%)보다 3.3배 많다.

산재 인정 노동자 남 81%-여 19% ‘4배차’

보통 여성 노동자 재해율은 남성 노동자보다 낮고, 사망에 이르는 재해율은 현저히 낮다. 여성이 남성보다 덜 위험한 일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런 통계와 해석이 노동조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남성 노동자도 그렇지만 여성 노동자 산재도 현실보다 과소 반영되기 마련인데, 여성에게는 다른 구조적 요인들이 겹쳐진다.

산재가 인정되려면 먼저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어야 한다. 여성 노동자는 남성보다 산재보험 적용 예외 폭이 넓은 가사노동자·간병인 등 비공식 부문, 무급 가족 종사자, 특수고용직 등에서 일하는 경우가 더 많다. 게다가 산업안전·산재 관련 연구와 정책 설계는 건설업 등 중대재해 발생 업종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서비스업 등 여성 노동자가 집중된 업종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거나 정책 밀도가 떨어진다. 산재 관련 정책과 판정 등을 맡은 각종 위원회는 남초 조직이기 마련이다. 여성 위원 비율은 절대적으로 낮다.

산재보험에 가입한 여성 노동자로 대상을 좁혀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근로복지공단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질병판정위)는 노동자가 호소하는 질병이 업무로 인한 것인지 아닌지를 심의하고 판정한다. 고용노동부 집계(이전 신청분 포함)로는, 2019년 업무상 질병 요양 판정을 받은 사람은 1만4030명이다. 남성(1만1392명, 81.2%)이 여성(2638명, 18.8%)에 견줘 4.3배 많다.

여성 노동자가 처한 노동조건과 현실에서 겪는 산업재해를 더욱 정확히 파악하려면 성별로 따로 집계된 업무상 질병 ‘인정률’ 통계가 필요하다. 질병판정위로부터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받기 전 단계, 그러니까 얼마나 많은 여성 노동자가 산재를 신청해서 얼마나 승인받았는지를 함께 봐야 여성이 겪는 산재 실태를 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판단기준부터 남성 중심…정책도 건설업 등 위주

근로복지공단 산재보상국 업무상질병부는 △질병 △지역 △업종 △사업장 규모 △근속기간 등에 따른 업무상 질병 인정률을 집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난해의 경우 “근골격계 질병 인정률은 서울·대구·경인을 제외하고 모두 하락” “대구는 30인 미만, 광주는 5인 사업장 업무상 질병 인정률이 가장 높음” 등의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이는 산업재해 예방정책 수립을 위한 기초 자료로 쓰인다.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여성 보건의료 노동자의 인정률이 높아져 성별 인정률 격차가 줄어들었음. 자료 근로복지공단

그런데 ‘성별’ 업무상 질병 인정률 분석은 보이지 않는다. 성별 분리 통계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요구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2017년 여성가족부는 산재보험에 대한 특정성별영향평가를 실시한 뒤 이 문제를 짚었다. 여가부가 고용노동부로부터 2015년 자료를 제출받아 성별 업무상 질병 인정률을 자체적으로 확인했더니, 여성의 업무상 질병 인정률(36.5%)이 남성(46.8%)에 비해 10%포인트가량 낮았다. 여가부는 이를 근거로 “업무상 질병 판정에 있어 성별 격차가 확인됐다. 산재보험 업무상재해 승인 등에 대해 성별 분리통계를 매년 발간하라”고 지적했다. 당시 특정성별영향평가 연구책임자였던 이현주 우송대 간호학과 교수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2018년 4월 여가부가 작성한 중앙성별영향평가위원회 개선 권고안에 성별을 분리해 업무상 질병 인정률 통계를 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고용노동부) 담당 과장도 이를 수용했다. 그런데도 아직 개선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이 성별 업무상 질병 인정률을 공개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주민등록번호가 있기 때문에 성별 분리 통계를 (제작)하려면 할 수 있다. 그러나 특별하게 의미가 있다고 보이지 않아서 아직은 하지 않았다. 성별이 업무상 질병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산재에 노출되는 건 보통 남성 아니냐”고 했다.

‘성별’ 인정률 통계 부재… 2015년 여가부 조사서 여 36%-남 46%

세계보건기구(WHO)는 바로 이 ‘산재=남성’이라는 인식 때문에 성별 분리 통계가 더욱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산업재해는 보통 제조업, 건설업에서 일하는 남성에게 발생한다는 통념 때문에 여성의 산업재해가 상대적으로 가볍게 취급된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는 무려 15년 전인 2006년 “여성 노동자는 비교적 안전한 환경에 근무한다는 고정관념 탓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산업재해 승인율이 남성 노동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다”고 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성별로 구분된 산업안전 통계 생산을 필수적으로 포함하라”고 권고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산재=남성’이라는 인식이 강해질수록 여성이 겪는 일터에서의 위험은 가려지게 된다. 성별 분리 통계를 통해 이를 가시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업무상 질병 판정을 받으려면 노동자가 유해·위해 요인에 노출되어야 하고, 이 때문에 질병이 발생했다는 인과관계가 입증돼야 한다. 법에 정해진 유해·위해 기준은 남성을 고정값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기준에도 젠더 편견이 작용하는 셈이다.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논문 ‘성인지적 산업보건정책 연구’에서 “남성과 여성이 종사하는 산업·업종·직종이 사실상 구분되어 있어서 남성 집중 분야를 기준으로 산업안전 정책을 수립할 경우 여성이 소외되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예컨대 “고열작업에 용광로·가열로·갱내 등의 작업은 들어가 있는데, 급식 조리실에서 고온으로 대규모 음식을 가열하는 작업은 없다”는 것이다. 유해·위험인자 종류나 기준치에 미용실·네일숍·식당주방 같은 여성 집중 업종에서 노출되는 화학물질 실태 등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성별 통계 유의미한데, 복지공단은 “의미있나?”

이렇게 남성을 전제로 만들어진 기준을 가지고, 남성 위원이 대부분인 질병판정위가, 여성 노동자의 업무상 질병을 판단한다. 서울·부산·대구·경인·광주·대전에 603명(6월 기준)의 질병판정위원이 있다. 531명이 남성, 72명이 여성이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규칙은 의사·변호사·노무사·산재전문가 등으로 질병판정위를 구성하라고 했지만, 따로 성비를 맞추라는 규정은 없다. 질병판정위원 대다수가 남성으로 채워지다 보니 여성 노동자가 많은 돌봄·서비스 노동이 얼마나 신체에 부담을 주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간과되기 쉽다.

예를 들어 근골격질환의 경우 여성 노동자 유병률이 남성 노동자보다 높지만, 산재로 인정되는 비율은 남성이 더 높다. 여성 질병판정위원인 조애진 변호사는 “건설업은 힘든 일, 위험한 일이라고 단박에 인식되는 반면 돌봄노동, 서비스노동처럼 여성이 주로 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일이라는 편견이 강하다. 이 때문에 그 작업이 여성 노동자의 손목·어깨·허리·무릎에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증명하기 위해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하고, 상대적으로 (질병으로) 승인받기도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여성 노동자는 자식 다 키우고 50·60대에 재취업하는 사례가 많다. 박혜영 노동건강연대 노무사는 “여성 노동자 질병은 업무가 아니라 가사로 인한 것, 질병이 아니라 노화로 인한 퇴행성 질환으로 여겨지곤 한다”고 말했다. 2007년 대법원은 “업무와 질병과의 인과관계 유무는 보통 평균인이 아니라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고 판결했지만, 5060 여성의 신체 취약성은 판단 과정에서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고용노동부는 해마다 산재보험 적용 업체에서 발생한 산재 가운데 사고·질병으로 인정된 재해를 △업종 △성별 △사업장 규모 △연령 △근속기간 △재해 정도 △재해 발생 시기 △지역 △원인 △질병 종류 등에 따라 분류한 통계를 만든다. 이현주 교수는 “통계상으로는 여성의 산재가 적은데 여성 산재가 정말 없는 것인지, 아니면 산재 판정 기준이 남성 위주여서 여성이 소외된 것인지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성별 분리 통계를 통해 여성이 많이 호소하는 질병은 무엇인지, 여성이 주로 일하는 업종에서는 어떤 유해·위험요소가 있는지를 찾아내고, 그걸 반영한 새로운 기준을 만들어 여성을 산업안전정책 제도 안으로 끌고 들어와야 한다”고 말했다.

젠더 편향을 보정한 통계 생산은 남성 노동자 위주로 설계된 산업안전·산재 정책 변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여성 노동자가 겪는 산업재해를 가시화해야 하는 이유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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