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갯마을 차차차' 속 서울 깍쟁이 길들이기 서사가 불편한 이유 [이진송의 아니 근데]

이진송 | 계간 홀로 발행인 2021. 10. 15.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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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침해·허위사실 유포를 눈 감아 주는 게 '사람 냄새' 나는 일?

[경향신문]

<갯마을 차차차>는 신민아(윤혜진 역), 김선호(홍반장 역) 주연의 tvN 드라마다. 2004년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을 원작으로 한다. “현실주의 치과의사 윤혜진과 만능 백수 홍반장이 짠내 사람 내음 가득한 바닷마을 ‘공진’에서 벌이는 티키타카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라는 공식 설명처럼, 힐링과 로맨스가 잘 어우러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신민아는 사랑스럽고 김선호는 훈훈하다. 그러나 이쯤에서 고개를 들어 코너의 이름을 확인하자. ‘아니 근데’. 삐빅삐빅. 레이더가 작동한다. 이 드라마, ‘착하고 순한 맛’을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은 꽤 문제적이다. 2021년 포브스가 선정하진 않았으나 위험한 4글자 중 하나, ‘사람 냄새’. 아니 근데… 아니 근데?!

바닷마을 공진에서 벌어지는 로맨스를 그린 드라마 <갯마을 차차차>에서 오지랖 넓은 이웃들이 남녀 주인공이 식사하는 모습을 엿보고 있다. 지난 10일 방송분으로 자체 최고 시청률(11.6%·닐슨코리아)을 경신한 이 드라마는 종영까지 2회를 남겨두고 있다. tvN 제공

<갯마을 차차차> 속 세계는 ‘끈끈하고 선량한 공동체’를 전제로 한다. 이를 바탕으로 윤혜진이라는 서울깍쟁이 길들이기의 서사가 작동한다. 서울에서 양심 진료를 추구하다 미운털이 박혀 취업이 힘들어진 혜진은 부모님과의 추억이 있는 지역 공진에서 치과를 개원한다. 그곳에서 못하는 게 없는 홍반장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드라마 초반은 혜진의 좌충우돌 공진 적응기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서로 다른 문화를 누리던 이들이 공존하면 자연스럽게 충돌이 발생한다. 그런데 유독 혜진의 성격이 깍쟁이, 도시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것, 야멸차고 이기적인 것 정도로 그려진다. 처음 공진에 온 혜진은 레깅스 차림으로 입방아에 오른다. 내복만 입고 뛴다며 들썩이는 마을 사람들의 반응에 윤혜진은 운동복이라고 응수하지만 홍반장은 어르신들에게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설득한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누구도 타인의 옷차림에 이러쿵저러쿵 말을 얹는 것은 무례하다는 현대적 예의를 요구하지 않는다. 교정 대상은 언제나 혜진이다.

레깅스 입은 여주인공에
쏟아진 마을 사람들의 ‘무례한’ 지적들
‘현대적 예의’ 부족은 도외시된 채
외지인인 주인공이 교정 대상 돼
순박하고 평화롭게 그려진 주민
범죄·나쁜 것은 모두 ‘외부의 것’
결국 은폐된 건 범죄의 구조·실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살짝만 들춰보면, 공진은 불법촬영과 소문이 난무하는 곳이다. 마을 사람들끼리의 단톡방이 있고, 남숙은 툭하면 마을 사람들을 몰래 찍어 단톡방에 사진을 뿌린다. 혜진은 홍반장과 아무 사이가 아닐 때도, 지 PD가 등장했을 때도 스캔들의 주인공이 된다. 여성에게 ‘평판’, 특히 성적인 소문은 치명적이다. 혜진이 불쾌함을 표시하면서 두 사람은 충돌한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개입해 남숙의 아픈 과거를 늘어놓는다. 남숙은 어린 딸을 병으로 잃었다. 마을 사람들은 그 뒤로 남숙이 더 기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남숙이 아무리 마을을 헤집고 다녀도 관대하게 군다. 그 사실은 남숙의 불법촬영과 사생활 침해, 허위사실 유포와 무관하다. 정당화할 수도 없다. 그러나 혜진은 이 이야기를 들은 이상, 다른 사람들‘처럼’ 남숙을 대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 냄새 나는 공진 주민이다. 가스라이팅이 별건가? 이런 게 가스라이팅이다.

마을 사람들과 혜진의 관계는 상호작용이 아니며 평등하지 않다. 지역 장사는 다 그렇다는 명목으로, 혜진은 마을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떡을 돌리고 반상회에 간식을 제공한다. 혜진은 의사로서 능력보다 ‘싹싹한’ 여성으로 인정받을 때 공동체에 편입할 수 있다. 혜진과 사랑을 확인한 후 홍반장은 “네가 많이 변했다”고 말한다. 이 대사는 외부인이었던 혜진이 성공적으로 ‘공진화’되었다는 평가이기도 하다. 공진 사람들은 변하지 않는다. 유일하게 외부인으로 인해 바뀐 것이 있다면, 그들을 극진하게 대접한 지 PD가 세련되게 바꿔놓은 입맛 정도? (이것도 매우 시혜적인 느낌이 있다. 지 PD는 시골 할머니들에게 ‘도시의 신문물’을 전파하는 존재처럼 그려진다.)

<갯마을 차차차>에서 공진은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 삼아 ‘힐링 공간’으로 낭만화된다. 공진은 평화로우며 사람들은 마냥 순박하다. 전형적으로 지역과 주변을 타자화하는 방식이다. 범죄, 나쁜 것, 낯선 것은 언제나 ‘외부의 것’으로 구성된다. 하물며 성소수자조차 외부인이다!

스토리 전개상 두 번의 중요한 범죄가 일어나는데, 범인은 모두 외부인이다. 한 명은 선량한 마을 사람들과 구별되는 지역 유지의 아들, 한 명은 출소 후 이곳저곳 떠돌다가 우연히 공진으로 흘러든 전과자. 마을 사람들은 범죄에 경악하고 그를 즉시 축출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혜진은 밤길에 뒤에서 인기척을 느끼고 달아나는데, 상대가 마을 주민이라는 점이 드러나자 이 장면은 혜진이 과민하게 반응한 ‘해프닝’ 정도로 처리된다. 성범죄는 아는 사이에서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현실은 공진이라는 지역을 성역으로 지키고자 지워진다.

이러한 재현은 지역에서 벌어지는 범죄의 구조적 특수성과 실체를 은폐한다. 사실 현실에서 제일 위험한 것은 홍반장 같은 인물이다. 토착민이고, 모두가 그를 믿는다. 혜진과 홍반장이 싸우면 금방 소문이 퍼지고, 마을 사람들은 홍반장 편을 든다. 홍반장은 폭행 사건에 휘말려 유치장에 들어가도, 아는 경찰에게 옷을 빌려 입는다는 구실로 유치장에서 나갈 수 있는 사람이다. 만약 이런 사람이 가해자라면? 사람은 다면적이고 입체적이며 관계는 각도에 따라 바뀐다. 일부에게는 지극히 선량하고 필요한 존재가 누구에게나 그렇다는 보장은 어디 있을까? 성범죄는 권력의 문제다. 친밀함 또한 권력으로 작동한다. 영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에서는 고립된 섬에서 일어나는 마을 사람들의 조직적인 성폭력과, 경찰에 신고해도 ‘다 아는 사람들’끼리라서 ‘좋게 좋게’ 넘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복남은 외부인 여성에게도 성범죄를 저지르려는 남자에게 “서울 여자는 그런 거 안 참아”라고 말한다. 이 대사에서 ‘서울 여자’는 ‘끈끈하게’ 정으로 얽히지 않은, 결탁하지 않은 공권력을 경험했기에 폭력을 고발할 수 있는 존재다. 웹툰이자 동명의 영화로도 각색된 <이끼>(2010) 역시 폐쇄적인 공동체가 어떻게 폭력을 조장하고 은폐하는지 섬뜩하게 묘사했다.

혜진과 홍반장의 감정선은 여성 대상 성범죄를 통해 강화된다. 생존과 직결되는 범죄는 사랑을 강화하는 ‘이벤트’로 배치되고, 친밀한 남성이 있는 여성만이 적극적으로 보호받는다. 첫 번째 성추행 사건에서 홍반장이 가해자를 응징한다. 피해자인 미선에게는 경찰 은철이 명함을 주며 다음부터 그런 일이 있을 때 절대 혼자 참지 말라고 조언한다. 둘은 ‘썸 타는’ 사이다. 두 번째 가택침입 사건에서 홍반장은 혜진 대신 칼을 맞는다. 혜진에게 고백하러 달려오던 지 PD는 뒤늦게 현장에 도착함으로써, 혜진을 구할 기회를 놓침으로써 삼각관계에서의 패배가 확정된다. 여성 대상 범죄는 ‘자격 있는’ 남자친구, 즉 여성을 지킬 수 있는 남성을 가리는 심사로 기능한다. 홍반장은 혜진을 위해 적극적으로 통장에게 어필해서 고장 난 가로등을 고친다. 공진의 여성은 홍반장 같은 남성의 보호가 있어야 밤길의 가로등이라는 보편적 행정복지를 제대로 누릴 수 있다. 남성 보호자가 없는 초희가 우연히 마을 사람에게 구조된 후 별다른 조치 없이 방치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진송 | 계간 홀로 발행인

여성 대상 범죄는 당사자가 아닌 인물들에게도 철저하게 타자화된다.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미선과 혜진은 서로 얼싸안고 운다. 여성들은 친구들과 헤어지며 조심히 들어가라, 집에 들어가면 연락해라 같은 인사를 나눈다. 서로가 얼마나 쉽게 위험에 노출되는지 알고, 그런 일이 일어났을 때 자기 일처럼 공감하며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선과 혜진이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곁에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자책할 때 은철과 홍반장은 이를 이상한 행동, 유난스러운 과장 정도로 여기는 태도를 유지한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이다. 상호작용과 배려, 오지랖과 완벽하게 분리 불가능한 관심은 어느 정도 필수적이다. 그래서 <갯마을 차차차>는 공동체의 순기능과 ‘정’이라는 키워드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공기 좋고 물 좋은 ‘시골’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며 욕망과 갈등, 범죄와 권모술수가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간과한다. 세상 어디에도, ‘무해하고’ ‘안전하기만 한’ 곳은 없다. 무작정 현재를 비판하고 과거나 지역을 낭만화하기보다, 멀리서 바라볼 때 아름다운 평화가 과연 누구의 것인지, 무엇을 은폐함으로써 획득되는지, 누구를 해치고 무엇을 배제하는지,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공동체의 미덕은 누구의 기억인지 등을 섬세하게 헤아려볼 때이다.

이진송 | 계간 홀로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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